크리스마스에 꾼 꿈

크리스마스에 꾼 꿈

G いたいけ 0 4,216 2021.05.14 22:51

내가 어렸을 때, 삼년여에 걸쳐서 성탄절마다 꾸는 꿈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광장 한 가운데서 털장갑을 낀 채로 서있는 내게 낯선 노인이 다가오는 꿈.

노인은 내 한쪽 털장갑을 벗겨 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갔었다. 노인은 그다지 빠른 걸음이 아니었지만 꼬마인 나는 장갑을 가지고 가버린 노인을 뒤쫓아 갔었고,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시야에 노인이 들어와 다시 따라 갈 수밖에 없게끔 했었다.

노인과의 숨바꼭질이 계속 되다가 내가 지쳐서 주저 앉을 때쯤, 기골이 장대한 스님이 나타나서 나를 번쩍 안아 올리고는 바람같이 광장을 가로 질러 빠져나갔다.
스님은 나를 내려놓으시며 꾸짖듯 타일렀다.
「이 놈아! 저 노인은 따라가면 안된다!」

시간이 흘러 필자의 초등학교 저학년이 끝날 무렵에 가족들과 봄소풍겸 가까운 산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야산과도 같았기 때문에 동네 주민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물었다. 산 중턱에서 점심을 먹고나서 부모님은 담소를 나누고 계셨고, 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초딩답게 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쁜 털장갑 한 짝이 눈에 띄었다. 등산로에서 많이 벗어난 곳에 놓여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미끄럼틀 타듯 완만한 경사를 타고 내려가보니 누군가 일부러 살포시 얹어놓은 것처럼 털장갑이 놓여져 있었다.

「너 뭐하니? 어서 올라와.」

어머니가 금세 발견하시고는 날 불렀다. 그리고 털장갑 한 짝을 낀 채로 봄소풍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낯익은 노인을 보았다. 아,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성탄절에 항상 꾸던 꿈. 비록 꿈과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털장갑과 노인은 일치했다. 노인은 우리 가족보다 앞서서 등산로를 내려가고 있었다. 호기심에 어쩔줄 몰랐던 나는 노인의 얼굴을 보기위해 앞질러서 내려갔고, 뒤돌아서서 노인의 얼굴을 보는순간 놀라고 말았다. 꿈에서 본, 유일하게 기억나는 얼굴.
나를 업고 바람같이 달리던 스님의 얼굴이 노인의 얼굴이
었다. 노인은 놀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 번에는 따라오지 말거라.」

난 그 자리에 얼어 붙었고, 노인은 유유히 산 밑으로 내려갔다. 그 이후로 나는 길에서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앞질러 가거나하지 않았고, 설령 앞질렀더라도 뒤를 돌아서 그 사람을 확인하지 않는 버릇을 들였다.

노인은 왜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게 했을까, 더 이상 꿈에서 나타나지 않는 노인이지만 언젠가 만나게되면 물어보고싶다.

그 일이 있은 후 십수년이 지났지만 매해 성탄절이 찾아오면 노인의 얼굴과 충고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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