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제분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영남제분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G 빨간마스크 0 4,097 2021.04.13 19:24

2003년 유명했던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인데 세상에는 정말 인간이 아닌 악마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01
2003년 10월 28일 오전 11시경이었다. 삼십대 말쯤의 초라한 모습을 한 여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튀어나온 볼 위에 파묻힌 듯한 작은 눈에서는 만만치 않은 삶의 곡절과 강인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사건을 의뢰하러 온 게 아니라 잠시 상담만 하러 왔습니다. 되나요?”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뭔가 자신이 닥친 현실에 대해 정밀한 재 감정을 시도하려는 태도였다.


“어떻게 저를 알고 찾아오셨죠?”
나 역시 그녀의 경로를 탐색 했다. 단순한 지식검색기계가 되기 싫었다.


“저도 이런 말 하는 게 어떤지 모르는데 감옥 안에 있는 다른 살인범들이 가보라고 소개를 해서 왔어요.”
다른 살인범이란 말을 쓰는 걸 보면 그녀가 살인에 관련됐다는 얘기다. 그리고 살인범이 다른 살인범에게 변호사인 나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따져 보니까 이럭저럭 살인사건을 많이도 맡았다. 사건마다 수면 밑의 빙산 같은 내용들이 많기도 많았다. 그 여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살인범이 소개한 게 찝찝하지만 그냥 한번 와 본 겁니다. 미안합니다.”
그 정도면 나를 선임할 의사는 없지만 솔직한 태도였다.


“알겠습니다. 상담은 정확히 해 드리겠습니다. 유리하던 불리하던 제3자의 입장에서 판단 한 걸 정직하게 말씀드리죠. 아마 먼 훗날 실질적인 도움이 된 걸 아실 겁니다.”
어느 분야건 일단 정확한 진단이 중요했다. 브로커들의 사기가 법조계에도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비로소 그 여자는 소파 끝에 엉덩이를 걸치듯 조심스럽게 앉았다. 긴장한 그녀의 얼굴에서 초조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저 혹시 지난해 재벌부인이 판사사위하고 사귄다는 여대생을 청부살인한 사건 아세요? 여대생이 공기총에 맞아 죽었는데요. 텔레비전하고 신문에 많이 났는데... 그 범인중의 한 사람이 제 남편입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간신히 입을 열었다가는 말끝을 흐렸다. 며칠 전 뉴스와 2580 시사프로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두 사내가 누런 점퍼를 푹 뒤집어 쓴 채 봉고차에서 내려 허리를 구부리고 경찰서문을 향해 다급히 가고 있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쉬가 그들의 등짝에 가시같이 가서 박히고 있었다. 그들 두 명은 한 재벌부인으로부터 청부를 받고 여대생을 살해한 후 해외로 도주했었다. 재벌과 판사, 치정과 청부살인이란 우리사회 상부 층의 정신적 빈혈 증세를 반영한 사건이었다. 시사프로인 2580에서 재벌부인에게 전화로 묻는 장면이 나왔다. 회장부인은 침착한 어조로 담당 피디를 타이르면서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말도 안 되죠. 제가 어떻게 살인을 교사할 수 있겠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입니다.”
잔잔한 어조와 내세우는 논리에서 난 완전범죄를 시도한다는 냄새를 느꼈다. 음지의 세계에서 살인도 하나의 독특한 돈벌이였다. 의뢰인 중에는 악덕기업인이나 사이비교주, 부패 정치인들이 많았다. 걸리면 사후처리 방법도 일정했다. 변호사를 사고 관료들을 매수했다. 감옥 사는 값을 충분히 치르면 범인도 입을 닫았다. 그러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졌다. 앞에서 잠시 침묵하던 그 여자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도 초등학생하고 중학생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그 죽은 여대생 집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남편이지만 극형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조금만 더 절제를 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여튼 모든 게 남편의 잘못입니다.”


그녀는 간단히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보험회사 직원이던 그녀는 한 고객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과 선을 보고 바로 결혼했다. 남편 집안의 고모부는 재벌이라고 했다. 여러 계열회사와 호텔을 가지고 있고 제주도 등 곳곳에 땅도 많았다. IMF 외환위기의 파도는 그녀 가족을 단숨에 쓸어버렸다. 지하 셋방에서 그녀는 녹즙배달을 하고 남편은 가방공장에 나갔다. 나중에는 고모인 회장부인의 운전기사를 했다.


회장부인의 기사를 하는 남편의 얼굴은 항상 수심이 가득했다. 곤란한 일들만 시킨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판사 사위를 미행하는 게 남편의 일이라고 했다. 아침에 판사 뒤를 따라 같이 출근하고 하루 종일 법원 앞에서 죽치다가 저녁에 돌아가 보고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회장부인은 매번 화를 벌컥 냈다고 했다. 회장부인은 한번 누구를 의심하면 그걸 푸는 법이 없었다. 회장부인은 병적으로 사위를 의심했다. 심지어 딸 내외의 방에 도청장치까지 하고 감시했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마담뚜의 소개로 딸을 결혼시킬 때 괴 전화가 왔었다. 누군가 판사사위의 과거를 제보했다는 것이다.


회장부인은 현직형사, 심부름 센터 등 수십 명을 고용하고 다시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로 그녀의 남편을 부렸다. 그리고 회장부인은 다시 종종 현장에 나타나 남편을 감시하는 이중, 삼중의 망을 구축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잠도 못 잤다. 회장부인한테서 수시로 지시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은 아내에게까지 비밀로 전화를 받곤 했다. 그녀가 마당에서 김장을 하던 어느 날 오후 남편은 통장 하나를 그녀에게 던져 주고는 황급하게 출국했다. 그 직후 검단산 기슭에 묻혀있는 여대생 시체를 한 등산객이 발견했다는 뉴스가 터졌다.


2003년 11월 25일.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회장부인과 주눅 든 두 명의 남자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부인은 오십대 말의 나이인데도 아직 아름다움이 남아있었다. 계란형의 얼굴에 검은 눈동자였다. 그녀는 베이지색의 고급 쟈켓을 입고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회장 측의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대형 로펌에서 나온 거물급 변호사들이 회장부인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 옆에 곱슬머리의 남자가 안경 뒤로 눈을 질끈 감은 채 뭔가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그 옆은 살인청부를 맡았던 킬러였다. 짧은 머리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삼십대 말의 남자였다. 그의 눈에서 알지 못할 섬뜩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진공상태 같은 법정분위기였다. 돋보기를 코에 걸친 재판장이 기록을 읽다가 킬러를 내려다보면서 담담하게 물었다.


“여기 기록을 보니까 총알이 네발이나 귀밑의 같은 곳을 관통했네?”
프로급 살인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재판장이 말을 계속했다.


“이 정도면 총구를 머리통에 들이대고 계속 갈겨 확인사살을 한 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하나?”
재판장이 킬러를 쏘아봤다.


“아, 아닙니다. 일 미터 이상 물러서서 고개를 돌리고 쐈습니다.”
킬러도 뭔가 감지한 듯 완연히 당황해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안보고 쐈는데도 그렇게 잘 쏘나?”
재판장이 다시 물었다. 그 어조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처음에 그 여대생 얼굴을 보고 한번은 총구를 겨냥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두발 째부터는 보지 않고 쐈습니다.”
첫발은 이마를 관통해서 총알이 뇌에 박혀 있었다. 그 말을 듣던 방청석 구석의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는 얼굴이 백짓장 같이 창백해 있었다. 죽은 딸의 복수를 위해 그는 직장까지 팽개치고 혼자 범인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고 했다. 그 앞으로는 만약에 대비해 교도관들로 벽이 쳐져 있었다.


“죽은 여대생의 팔뼈가 세 동강이 나 있던데 왜 그랬지?”
재판장이 물었다. 여대생은 죽기 직전에 극도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킬러가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가다가 집어 던졌나? 그래서 팔뼈가 부러졌나?”
재판장이 다그쳤다.


“아닙니다. 죽이기 전 땅에 내려놓을 때조차 안 듯이 내려놨습니다요.”
킬러가 안절부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안 듯이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때 움직였어? 이미 죽어있었어?”
재판장은 짐승몰이를 하듯 킬러를 여유 있게 쫓고 있었다.


“그 여대생을 푸대 자루 속에 넣어 산으로 메고 올라가는데 힘이 들어 잠시 내려놓고 쉬었습니다. 그때 발이 꼼지락거리는 걸 봤습니다요.”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습디까?”
재판장이 물었다.


“입에 청 테이프를 붙여 놔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죽여주는데 얼마를 받기로 했지?”
“저는 2억원을 달라고 하고 사모님은 1억5천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그 중간금액인 1억7천5백만 원에 낙찰이 됐습니다요.”
“살인을 청부받은 게 그거 하난가?”
“아닙니다. 그 전에 두 건을 더 청부 받았었는데 실패해서 사례비를 못 받았습니다.”
회장부인의 섬뜩한 다른 살인청부가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재판장님 먼저 이쪽에서 모두진술을 해야겠습니다.”
그때 회장 부인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모두진술은 국민의 권리였다. 그런데 변호사를 이십년 해오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직대통령 재판 때 보고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법정에서 그 절차는 생략됐다.


“하시죠.”
재판장이 허락했다. 경력을 나타내는 듯 점잖은 은발의 변호사가 준비해 온 글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는 회장부인의 법정변호사중 대표였다.


“이 사건에서 명백한 건 여대생이 살해됐다는 사실 뿐입니다. 회장부인은 살인을 해 달라고 교사를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또 잃을 것이 많은 대기업 회장의 부인이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부탁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변호사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여유 있게 계속했다.


“회장부인이 했다는 살인교사의 증거는 실제로 살인을 한 두 사람의 증언 밖에는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회장부인이 살인을 지시했다고 하면서 물귀신처럼 이 사건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고 늘어지면 재력이 있는 회장부인이 죽은 여대생의 가족과 합의를 해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형이 감경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회장부인이 그 여대생의 미행을 부탁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인범인 두 사람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납치를 결정했습니다. 납치 후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동강난 팔뼈가 그 정황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대생을 죽이고 해외로 도피한 것입니다. 그리고 체포가 되자 회장부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회장부인의 얼굴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02
구치소에서 만난 사십대 초반의 김용국씨는 도무지 살인범 같지가 않았다.이웃에서 볼 수 있는 마음 좋은 아저씨 타입이었다. 그가 바로 뉴스화면에서 점퍼를 푹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던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이었다. 그는 회장부인의 살인청부 대리인이고 나중에는 직접 범행에도 가담했다. 그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불쑥 내게 한마디 던졌다.


“앞으로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감옥에서 삽니까?”
그는 막막할 것이다. 일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말려야 할 입장이 어떻게 살인청부를 하고 또 직접 가담까지 했죠?”
내가 오히려 따지듯 물었다. 인간은 사랑해도 죄는 먼저 미워해야 했다.


그는 판사사위가 불륜관계가 없다는 걸 미행과정에서 알았었다. 회장부인의 병적인 오해도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여대생의 죽음을 막아야 했다.


“나쁜 짓거리인건 알았지만 계약을 했으니까 이행해야 하는 거지요.”
그가 또 불쑥 내뱉었다. 난 깜짝 놀랐다. 그에게 청부살인도 계약이었다.


이런 악령들이 이 사회를 떠돌고 있었다. 범죄계약을 해도 돈만 벌면 된다는 의식이었다. 거액만 준다면 변호사들도 사실을 왜곡시키고 위증을 시켰다. 정의보다는 의뢰인이 건네는 돈값을 먼저 해야 한다는 사고다. 거짓증언을 하는 인간들도 받은 돈에 대한 대가는 분명했다. 선악과 진실보다는 결과와 돈이 절대다. 그래도 그는 잡히니까 원망스러운 것 같았다.


“난 괜히 중간에서 껴 버렸어요. 사모님 대리인으로 우선 5천만원을 살인청부업자에게 줬는데 일이 잘 안됐어요. 사람 죽이는 게 어디 그렇게 영화같이 쉽나요?그런데 사모님은 계약일까지 안 죽였다고 절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중간에서 돈 떼먹은 줄 알아요. 너 같은 놈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살인청부로 받은 돈을 도로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살인청부업자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킬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 동안 살인 준비하는 비용으로 다 써버렸대요. 독극물도 사야죠. 총도 사야 되죠. 그 여대생을 파악하는 데 썼다는 거예요. 그리고 착수금은 돌려주지 않는 거래요. 돈이 하나님인 사모님은 그런 거 들을 여자가 아니죠. 그러면 대신 내가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만약 안 주면 우리 아이들 학교까지 찾아가서 해코지 하겠다고 악을 썼어요. 돈 있는 사람들은 더 무서워요. 돈이면 무슨 짓이라도 하니까요. 그러니 저로서는 어떻게 하겠어요. 빨리 여대생을 죽여야 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수사기록과 그의 말을 통해 파악한 사건의 발단은 대충 이랬다.


회장 집은 호텔과 나이트클럽 외에 여러 회사를 인수해서 성장한 신흥부자였다. 결혼할 딸이 있는 회장부인은 거물급 마담뚜의 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예비판사 명단 중 27세의 사법연수생 김태환을 찍었다. 마담뚜의 명단에 오른 인물들은 고급 명품 같은 거래대상이었다. 남자 측은 결혼비용 명목으로 7억원을 요구했다. 실질은 몸값이다. 마담뚜는 건너가는 돈의 십 퍼센트를 받는 게 관례였다. 그 외 양가에서 각 3천만원씩의 중개료를 내야했다.


김태환이 임관이 되자 결혼식이 거행됐고 신랑 측에 대금이 지급됐다. 회장부인은 뚜 마담에게 약속대로 3천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사위가 된 김 판사는 자기부모에게 소개료를 주지 말라고 했다. 소송으로 청구할 수 없는 돈이니까 안줘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마담뚜들도 판례실력은 작지만 판 깨는 실력은 대단했다. 어느 날부터 회장부인에게 괴전화가 걸려왔다. 삼십대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여자는 김 판사의 과거를 자세히도 설명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회장부인은 눈이 뒤집혔다. 사위의 불륜현장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미행 작전에 돌입했다. 딸 내외의 방에 도청기를 장치했다. 밤이면 딸 내외가 자는 방 입구에 머리카락을 붙여 놓고 사위가 어디 가는지를 체크했다. 나중에는 딸이 사는 아파트 앞 현관에서 직접 밤을 새다가 눈이 퉁퉁 붓기도 했다. 회장부인은 현직 경찰관, 심부름 센터 직원 등 이십 여명을 동원해 사위 꼬리잡기 작전에 돌입했다. 불륜현장사진을 가져오면 큰 돈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다. 형사나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목욕탕이나 전자오락실에서 시간만 때우다 돈을 받는지 감시하기 위해 승복차림으로 현장을 급습하기도 했다.


미행자들은 회장부인이 독 품은 얼굴로 “개뿔도 없는 집안 걸 사위 삼았더니 이 배은망덕한 새끼”라고 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회장부인은 사위에게 하자가 있다면서 사돈집에 찾아가 준 돈의 반을 도로 찾아갔다고 수사기록에 적혀있었다. 남을 믿지 못하는 회장부인은 미행자들과는 별개로 감시망을 구축하기 위해 지하 단칸방에 살던 조카를 끌어들였다. 끝내는 조카에게 살인까지 시켰다.


“사모님이 처음에는 판사사위 미행만 해달라고 했어요. 결혼 전에 만나던 애가 있는 것 같다고요. 얼마가 지나자 사모님은 심부름 센터를 믿지 못하겠다고 저보고 직접 현장에 나가 판사사위를 감시하라고 했어요.”
“그래 미행에서 뭔가 꼬리가 잡혔어요?”
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마담뚜들의 공작 같았다.


“나오긴 개뿔이 나와요? 다섯 달 동안 그 판사 뒤를 따라 저도 법원에 출근했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점심도 부장 판사 따라서 구내식당에서 먹고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갔어요. 그런데 사모님은 도대체 믿질 않아요. 분명 뭔가 있는데 네 놈이 제대로 일을 못하고 와서 거짓말 한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사위를 의심했죠?”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병적인 의심이었다.


“남편인 회장님이 원래 바람을 피워서 따로 자식이 있거든요. 사모님은 그 피해의식이 컸어요. 한번은 사모님이 젊었을 때 남편이 어떤 여자하고 차 안에 있는 현장을 잡았어요. 사모님은 자기가 운전하는 차를 몰아 가미가제 특공대 같이 여자와 남편이 있는 그 차에 가서 충돌한 적도 있어요. 정말 독해요. 딸만은 자기 같은 불행을 안겨주지 말자는 집념이죠.” 비로소 일부분은 이해가 갔다. 난 얘기의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만약 체포될 경우 어떻게 하자는 계획이 있었어요?”
사건의 증거 중에는 특이한 녹음이 하나 있었다. 그가 회장부인과 통화를 하면서 모든 것을 덮어 쓴 내용이었다. 거래 끝에 조작된 증거 같았다. 지능범들은 철저했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철저한 연습을 했다. 알리바이나 거짓증거도 완벽했다. 그가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모님이 살인청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얘기하라고 해서 그대로 말해준 게 녹음됐고요, 잡혔을 때 진술 계획을 공책에 써서 외웠어요. 검거된 첫날 경찰에서 연습한 대로 진술했죠. 내용이 뭐냐면살인만 제3의 인물인 정사장에게 재하청해서 실행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형사들이 계속 세부적인 여러 가지 사항을 추궁하면서 이리저리 치는데 다 꾸며대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미숙한 공범이 있는 한 완전범죄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말이죠, 두 번째 조서를 받을 때부터는 아예 사실대로 진술했어요. 형사가 그러는데 모두 사형에 처해 질 건데 진실을 말하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그랬어요. 사실 저는 중간에서 돈 전달하고 푸대 자루 속에 넣은 여대생 운반한 죄 밖에 없어요.” 그의 어리석음 때문에 공범들이 속깨나 썩었을 것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검찰에서 제가 조사를 받을 때 사모님이 왔었는데 나를 보고 손바닥을 뒤집는 제스츄어를 하시더라구요. 나와 킬러가 총대를 메라는 거죠. 저만 말을 맞춰주면 완벽하다고 그랬어요. 사모님은 제 변호사까지 사줬는데 그 변호사도 저를 찾아와서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주면 합의를 해서 형도 깎아 준다고 그랬어요.”
“정말 회장부인이 살인청부의 심부름을 시켰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물귀신작전으로 물고 늘어지는 겁니까?”
내가 거꾸로 쳐 봤다. 그 어떤 것도 끝까지 속단할 수 없었다.


“정말 사모님 심부름한 거 밖에 없습니다. 내가 모르는 여대생을 죽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것만 봐도 아실 수 있잖아요?” 그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지금 회장 부인 쪽 태도는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동원해서 자기는 미행만 시켰지 절대로 살인은 교사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쪽 변호사님이 오셔서 나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요. 작전을 잘 짜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뒤집어쓰고 사모님을 빨리 빼내야 나도 살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그렇게 하지 왜 나를 불러 사실을 털어놓죠?” 내가 비꼬아 봤다.


“회장부인이나 그쪽에서 사 준 변호사를 안 믿기 때문에 이렇게 인권변호사님에게 따로 물어보는 거죠. 돈 문제는 사모님을 절대 안 믿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데요?”
“그냥 진실을 다 말할 거예요. 진짜 다 털어놓으면 그래도 좀 봐 주겠죠. 그 역할을 맡아주세요.”
그는 회장이나 부인은 그 어떤 사람도 매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회장부인은 살고 자신만 사형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난 그와회장부인 그리고 킬러 사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건 법정소설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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