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산함과 뇌풍항괘로 보는 기업 경영

택산함과 뇌풍항괘로 보는 기업 경영

G 미리내 0 3,213 2021.02.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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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64괘는 상경 30괘와 하경 34괘로 나뉜다. 상경에서는 주로 천지자연과 우주만물의 이치와 변화를 다루고, 하경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간난신고와 길흉화복을 다룬다. 서른 네 개의 괘로 이루어진 하경의 첫 번째 괘와 두 번째 괘가 택산함(澤山咸)괘와 뇌풍항(雷風恒)괘인데 변화무쌍한 인간의 삶에서 암시하는 바가 자못 크다.

 

택산함괘는 연못을 뜻하는 태괘(☱)가 위에 놓이고 산을 뜻하는 간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의 복합괘로 연못과 산이 서로를 품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주역의 해석에 따르면 연못은 땅(여성)의 성기이고, 산은 하늘(남성)의 성기이다.


즉 남녀가 서로를 껴안고 교합하는 에로틱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 택산함괘라는 것이다. 인간사의 출발이 남녀의 만남과 교접, 자손의 출산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에는 꽤나 그럴듯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택산함괘의 효사에 쓰인 엄지발가락(拇), 장딴지(腓), 넓적다리(股), 혀(舌)와 같은 신체의 감각기관들을 성적 행위와 연관 지어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에는 더욱 힘이 실린다.


하지만 좀 더 확장적인 시각으로 주역을 보면 택산함괘가 기업 경영의 보편적인 원리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택산함괘의 효사에 등장하는 신체부위들은 삶의 기초, 노동력의 원천을 상징한다. 주역이 태동한 시기인 수렵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은 인간의 육체였다.


그 중에서도 엄지발가락이나 장딴지, 넓적다리는 특히 없어서는 아니 되는 근간이다. 이들이 시원찮으면 날쌘 짐승을 추적할 수도 없고, 먹잇감을 구할 수도 없고, 그 결과 가족이라는 기업을 원활하게 경영할 수가 없게 된다. 혀도 마찬가지이다. 이 감각기관이 고장 나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열매가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택산함(咸)괘에는 공동체를 유지, 보존, 발전시키기 위한 토대가 인간의 노동이며, 노동으로 가족을 잘 부양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생산수단(엄지발가락, 장딴지, 넓적다리, 혀)을 다(咸)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통적인 해석처럼 택산함괘를 남녀의 성적결합으로 국한시키면 엄지발가락과 장딴지가 첫 번째 효사와 두 번째 효사에 쓰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괘의 이름인 다할 함(咸)자에 담긴 메시지를 추론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 다할 함자를 남녀의 육체적 관계에서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연구자들도 있는데 실소를 자아내는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전통적인 해석은 공자가 지은 단전에서 다할 함(咸)자를 느낄 감(感)자와 같은 글자로 본다는 구절(彖曰 咸 感也)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주역 10익을 지은 공자의 권위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학문적 풍토 때문에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주역 연구자들은 택산함괘를 남녀의 성적 감응(感應)을 위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로 볼 때 효사에 등장하는 여러 생산수단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엄지발가락이다. 엄지발가락이 고장 나면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도 힘들다. 노동 자체가 힘들어진다. 집으로 말하면 주춧돌에 해당하는 것이 엄지발가락이다. 골프에서 다운스윙을 할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모으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택산함괘의 효사는 ‘함기무(咸其拇)’로 시작한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주라는 뜻이다. 그것이 노동의 기초이고, 생산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신발 회사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오직 신발 하나만을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슈독(Shoe Dog)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를 성공한 기업인으로 만든 건 나이키의 신발이 아니라 아식스의 신발이었다.

 

필 나이트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타이거(아식스의 전신) 신발을 수입해 미국에 판매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본에서 수입한 아식스 신발을 신고 손에는 아식스 신발을 들고 직접 고객들을 찾아다녔다.


한 켤레라도 더 팔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엄지발가락에 잔뜩 힘을 준 채 미국 곳곳을 누볐다. 그러한 열정으로 미국 내 아식스의 판매망을 넓혀나갔고, 마침내 나이키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개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원균의 모함으로 옥에 갇혔던 이순신은 석방된 후 백의종군한다.


수군통제사에 복귀하기 전 이순신은 남해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발바닥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순신은 남해안 각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파도의 움직임, 주기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 후 다시 조선해군의 군권을 쥔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일본 해군과 싸워 대승을 거뒀다. 엄지발가락의 힘이 일군 승리였다.

 

택산함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뇌풍항(雷風恒)괘다. 우레를 뜻하는 진괘(☳)가 위에 놓이고 바람을 뜻하는 손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괘가 뇌풍항괘인데,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천둥번개가 치고 바람이 부는 자연현상을 형상화한 괘이다.


항상 항(恒)자를 괘이름으로 쓴 것도 그러한 지속성과 일관성, 꾸준함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택산함괘 다음에 뇌풍항괘를 배치한 것은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의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오늘 하루 반짝 일을 한다고 식솔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시사철 꾸준하게 생산현장으로 나가 노동력을 제공해야 가족을 건사할 수 있다. 기업 경영도 그렇다. 지속가능한 경영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공급과 생산라인의 가동에 일관된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직원들의 이직이 심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들쭉날쭉 공장을 가동하면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기 어렵다.

 

그래서 뇌풍항괘 상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뇌풍(雷風) 항(恒) 군자(君子) 이(以) 입불역방(立不易方), 뇌풍은 항이니 군자는 이로써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방향을 쉬 바꾸지 않는다.’ 천둥번개와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바뀌면 천지자연은 질서와 조화를 유지할 수 없다.


인간사도 그렇다. 항상성이 없고 조변석개하면 삶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없다.

눈을 뜨면 일정하게 출근해서 밥벌이를 하는 직장이 있어야 생활이 안정되고 가정을 행복하게 꾸릴 수 있다.

 

계약직이나 비정규직보다는 기왕이면 정규직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 뇌풍항괘가 주는 함의는 바로 그런 것이다. 직원들이 꾸준하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 비례해서 경영자도 그들 삶의 항상성, 일자리의 안정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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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택산함괘에서도 CEO들에게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던져 준다.

연못이 산을 품듯이 노동자들을 포용하라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상왈(象曰) 산상유택(山上有澤) 함(咸) 군자(君子) 이(以) 허(虛) 수인(受人), 상에서 말하기를 산 위에 연못이 있으니 곧 함이다. 군자는 이로써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받아들인다.’ 군자는 기업의 CEO나 사회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기업과 공동체를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포용성이라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해서 통제사의 자리를 뺏은 후 군영을 자신만의 아방궁으로 만들었다. 허구한 날 기생들을 불러 잔치판을 벌이면서 국고를 탕진했다. 휘하의 장수들과 참모들이 직언을 하려해도 그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에 비해 이순신은 일개 병사들도 자유롭게 자신을 찾아와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막사를 개방했다. 자신을 모두 비우고 병사들을 끌어안았다. 함선의 축조나 군영개편, 출정계획 등에서 자신의 생각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신속하게 반성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잘 나가던 나이키에 위기가 닥친 것은 1990년대였다.

라이프지에 파키스탄의 열두 살 소년이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루 일당을 받고 온 종일 축구공을 꿰매는 모습이 라이프지에 실리자 아동 인권침해. 노동력 착취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나이키는 휘청거렸다.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던 나이키는 연일 주가가 폭락하자 대책을 내놓았다.

나이키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비우기였다.

 

나이키의 경영진은 세계 1등이라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나이키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노동자들의 근로여건과 인권개선에 적극 나섰고, 실추됐던 기업의 이미지를 회복했다.

허심(虛心)에서 시작된 나이키의 이러한 CSR은 오늘날의 ‘탄소배출 제로(Move to Zero)’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 경영에서 보면 상품 판매의 최전방에서 뛰는 영업사원들이 택산함괘에서 말하는 노동의 기초인 엄지발가락이다.

택배노동자, 건설노동자, 시장 상인들, 배에서 그물을 당기는 선원들,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농민들도 모두 엄지발가락이다.

 

산업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이들의 수고가 없으면 공동체가 존립을 유지할 수 없다.

 

주역 택산함괘는 이 땅의 수많은 영업사원들, 노동자들, 농민들, 상인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위로의 메시지이다.

 

주역은 말한다.

 

‘당신들이 최고입니다. 자긍심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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