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손 (초스압)

공포의 손 (초스압)

G いたいけ 0 4,901 2021.01.16 01:29

물컹

 

“엇!! 뭐야 방금!!”

 

순간,

나는 스프링이라도 밟은 것처럼 붕 뛰어올라 앞으로 엎어졌다.

엉덩이에 무언가 감촉이 느껴졌던 것이다.

급하게 바지를 추스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아 진짜 깜짝 놀랐네 하아...하아...도둑고양이가 창문으로 들어왔나.”

 

느껴진 감촉으로는 분명히 생물체이거나 그 일부분이었다.

나는 잠시 변기 쪽을 응시했지만 불을 켜지 않은 상태라 식별이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깜짝 놀란 덕분인지 그렇게 급했던 변의가 잠시 진정 된 것 같았다.

난 침착하게 화장실 문을 열고 문 바로 옆에 있는 콘센트의 전원을 올렸다.

 

-파팟

 

백열전구에 불이 들어오면서 주황빛이 시야를 밝힌다. 그리고 변기를 바라보는 순간,

 

-쉬이이이이이이이

 

나는 바지도 벗지 못 하고 멍 하니 소변을 보고 말았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지나 발목을 적신 소변방울이 뚝 뚝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난 그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이지 못 하고 있었다.

 

“아, 어, 으, 어, 손...이잖아?”

 

변기 한 가운데에는 사람의 손이 솟아 있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쳐다봐도 사람의 손이 확실했다.

몸이 먼저 공포를 느꼈는지 아랫도리를 축축하게 적셔 나간다.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거야. 술이 덜 깨서 고양이가 저렇게 보이는 거야. 그럼 두 시간 밖에 안 잤는걸.”

 

보면 볼수록 명확하게 ‘손’이었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부정했다.

변기에 있는 고양이쯤이야 잡아다가 던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손’으로 변신한 고양이에게 다가갈 용기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울음소리라도 났으면 그래도 용기를 가졌을 텐데.

 

“여보!! 여보!! 주희야! 야! 김주희!”

 

나는 결국 창피하게 바지를 적셨다는 사실도 잊은 채 큰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저 고양이를 치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 정말 너 죽을래? 왜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

 

안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 생겨나자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기에는 고양이가 아닌,

손이 보였다.

빨간 시트 중심으로 팔꿈치 언저리까지 변기 밖으로 돌출 되어 있었다.

물에 퉁퉁 불어 전체적으로 주름이 주글주글 했는데,

전체적으로 새하얗고,

손가락은 농구공이 한 손에 잡힐 만큼 전체적으로 길쭉했다.

손톱은 적당한 길이로 살짝 손가락 윗부분을 덮고 있었고,

비교적 털이 없는 여성스러운 손이었다.

 

-쿵쿵쿵쿵

 

안방에서 화장실로 아내가 걸어온다.

난 여전히 변기를 주시하고 있었고, 아내는 화장실문을 격하게 열어젖혔다.

 

“이 왠수야! 너랑 결혼한 내가 미♡년이지. 곱게 오줌이나 쌀 것이지 왜 소리를..지르...꺄아악!!!”

 

-쿵

 

아내가 쓰러졌다.

부릅뜨고 있는 아내의 눈이 적어도 고양이를 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손이라는 말인가?

술이 덜 깨지만 않았어도 아마 아내보다 더 심하게 쓰러졌을 지도 모르겠다.

변기 안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았다.

 

‘혹시 어제 밤에 강도 살인마가 몰래 들어왔던 게 아닐까? 물건을 훔치려는데 내가 새벽에 들어오는 바람
에 허겁 지겁 화장실 창문으로 나가게 되었고, 때 마침 가지고 있던 시체의 토막을 떨어뜨린 거지. 그 토
막이 하필이면 손이었고.’

 

지금 내 상황에서 가장 그럴듯한 추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세 번 했다.

그리고 조금씩 변기 앞으로 다가갔다.

어쨌든 저 손은 치워야 하니까.

그리고 변기 바로 앞까지 다가갔을 때,

 

-추아아아악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쿵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손은 변기 안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 물을 튀기고 있었다.

그리고 움직임이 조금씩 격해 지더니 변기 바깥에 솟구친 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어? 혹시 저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거 아냐? 저 안에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건가 혹시?”

 

부르르 떠는 손에서 마치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쓰러져 있는 아내의 몸을 뒤졌다.

 

“어... 핸드폰...핸드폰..아! 여기 있다.”

 

아내의 바지 주머니에서 찾은 핸드폰으로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에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짐을 느낀다.

 

-뚜우우 , 뚜우우, 딸칵

 

“119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기 119죠? 우리 집에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어서 와서 구조 해 주세요!”

 

놀란 마음에 밑도 끝도 없이 와 달라는 이야기부터 한다.

 

“선생님.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시고요. 주소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 서울 여, 영등포구, 화, 화곡동입니다. 신화아파트 1동 901호에요. 서둘러 주세요 빨리!”

 

- 탁 타다탁

 

안내원의 타자 소리가 수화기로 들려온다.

 

“일단 주소로 대원들 출동 지시를 내렸습니다. 10분 안에 도착할 건데요. 무슨 일인지 말씀 해 주시겠습니
까?”

 

10분.

물속에서 사람이 10분이나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온다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 되는 것을 느꼈다.

 

“지, 지금요... 화장실 변기 안에 사람이 빠져서 죽어 가고 있어요. 소, 소, 손만 아직 덜 빠져서 살려달
라고 난리를 치고 이, 있다고요!”

 

내 말이 끝난 후,

안내원은 적어도 3초 이상 말이 없었다.

 

“...... 저기, 화장실 안에 사람이 빠졌다고요?”

 

“예 그렇다니까요!”

 

안내원은 또 3초 정도 말이 없다.

 

“...... 아까 분명히 아파트라고 하셨죠?”

 

“예 아파틉니다!”

 

“...... 요즘 아파트에서 푸세식 화장실을 쓰나요?”

 

이번엔 내가 3초 정도,

아니 그 이상 말을 못 했다.

우리 집 변기는 수세식이었다.

변기 안으로 난 구멍은 사람 어깨까지면 모를까 몸이 들어가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푸세식 화장실이라 해도,

어지간히 크고 깊은 변기가 아니고서야 사람이 빠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제가 잘못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수구 같은데 빠져서 헤엄치다가 우리 집 변기 쪽으로 오게 된 것 같
아요. 이미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숨이 차올랐고, 우리 집 변기로 손을 뻗어 구조를 요청하는 게 아닐까
요?”

 

말이 끝날 즈음 안내원의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이봐요 선생님. 901호면 9층이잖습니까. 화장실 배수관 자체도 사람 몸이 들어갈 넓이가 안 되는 데다,
물살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어떻게 헤엄을 쳐서 올라갑니까. 지금 장난 하세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대체 내 눈 앞에 저 손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한동안 멍하니 핸드폰만 귀에 대고 있었다.

몇 초 간격으로 여보세요를 외치는 안내원의 말에도 나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밤에 약주를 과하게 드셨거나, 착란 증상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출동시킨 대원들은 철
수시키지 않겠습니다. 이제 몇 분만 있으면 도착하겠네요. 계속 말씀 없으시니까 전화는 이만 끊도록 하
겠습니다.”

 

-딸칵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손’은 아까보다 더욱 격하게 앞뒤좌우로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힘을 쥐어짜 살려달라고 외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손’은 움직임을 멈추고 왼쪽 시트에 힘없이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죽었...나?”

 

나는 아까 전에 엉덩방아를 찧던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입술은 바짝 말라 계속 혀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던 중,

 

-딩동,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딩동

 

“계십니까!”

 

- 쿵쿵쿵쿵

 

“901호 아무도 안 계세요?”

 

나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보았다.

‘손’은 여전히 움직임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저 안에 정말로 사람이 들어있다면,

그리고 죽은 채로 발견 된다면,

일생 최대의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경비실에서 왔습니다! 문 좀 열어 보세요”

 

119가 도착하기로 한 10분은 좀 이른가 싶었는데 역시나 다른 사람이었다.

벽에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현관까지 걸어간다.

 

-딸칵, 끼이이익

 

“무슨 일 있어요? 소방서에서 연락이 왔네요. 901호에 문제 있는 것 같다고. 대원들 곧 온다는데 제가 일
단 먼저 왔습니다.”

 

야간 타임을 맡고 있는 경비다.

깊게 파인 이마 주름과,

눈가의 다크 서클이 야간 근무의 피곤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대기업 출신이라는데 주민들 사이에서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었다.

 

“아 아저씨. 정말 감사해요. 저 지금 너무 무서워서. 사람이 죽었을지도 몰라서. 아 정말.”

 

횡설수설 말이 나온다.

경비는 내 얼굴을 잠시 보더니, 몸 전체를 훑어보았다.

소변으로 범벅이 된 아랫도리 근처에서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는 것 같았다.

 

“그 쪽 말로는 착란 증세가 있는 것 같다는데 병원부터 가실까요?”

 

착란 증세라니.

물론 술이 아직 덜 깬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절대 착란이 아니었다.

백문이 불어일견일 것 같아 나는 경비에게 말했다.

 

“저. 일단 한 번 들어와 보시죠. 착란인지 아닌지.”

 

경비는 복잡한 표정으로 잠시 한숨을 쉬더니 허리를 굽혀 신발 끈을 풀기 시작한다.

여전히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자 들어왔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랑 같이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 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한 번 보죠.”

 

다리가 풀려 걸음이 느린 나를 두고, 경비는 먼저 성큼성큼 화장실로 향했다.

 

-끼이이익

 

“응!?”

 

아직 화장실로 도착하지 못 한 나에게 경비의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눈 좀 떠 보세요! 아주머니!”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봐요. 당신 아내랑 싸웠소? 지금 무슨 일이요 대체!”

 

이 양반이 변기는 안 쳐다보고 쓰러진 아내만 본 모양이다.

가까스로 화장실에 도달한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말했다.

 

“변기를 한 번 보세요.”

 

경비는 불신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변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변기에 대체 뭐가 있.....어억!?”

 

경비는 얼마나 놀랐는지 입을 벌린 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이로서 변기에서 ‘손’을 본 사람이 나를 포함 세 명이 되었다.

절대 고양이를 잘못 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저씨 119는 언제 오는 거예요. 이제 10분 정도 된 것 같은데. 저 안에 분명히 사람이 들어있다고요."

 

경비도 다리가 좀 풀렸는지 몸이 떨리는 것 같아 보였다.

가까스로 내게 고개를 돌린 그는 휘둥그레진 눈망울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어, 저...저기... 음... 사람이 있네요. 그.. 그렇죠. 음.. 아.. 곧 올 겁니다!”

 

나보다 더 횡설수설이다.

몇 분전에 나를 보던 눈빛을 떠 올리니 조금 고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비는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저... 아저씨. 그런데 저기에 사람이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될까요?”

 

경비는 내 말을 듣고 더욱 더 복잡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마의 주름이 더욱 깊어진 느낌이 든다.

 

“그...어... 상식적으로 말은 안 되지만 일단 지금은 들어가 있는 것 가...같네요.”

 

그렇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팔 부위가 잘려져 있는 거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저 ‘손’이 움직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생동감 있게 부르르 떨기 까지 했다.

물론 지금은 움직임이 없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경비가 그 점을 파고들었다.

 

“팔만 잘려져 있는 거면 가능하겠네요!”

 

그 말을 마친 경비가 다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기 시작한다.

 

“아니에요. 아저씨가 오기 바로 전까지 저 ‘손’이 움직였다고요! 마치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경비는 이제 긴장이 좀 풀렸는지 실소까지 띄우고 말을 한다.

 

“당신...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대놓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상식의 범위에서만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답답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지금, 뭔가 오해하시는 모양인데요. 저 '손' 잘려진 게 아니에요. 한 번 만져 보시던가요.”

 

뭔가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자,

오히려 경비 쪽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변기에서 '손'을 만져보면 간단하게 문제는 해결 될 것이지만,

시체의 토막을 만진다는 것은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경비는 우물쭈물 말이 없었지만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말을 했다.

 

“흥. 그래 한 번 만져 보겠수다. 당신 나를 핫바리로 본 모양인데 사람 잘못 봤어.”

 

말을 마친 경비는 잠시 물끄러미 변기를 쳐다보다 주머니를 뒤적뒤적 찾기 시작한다.

뭘 찾고 있나 했더니 목장갑을 꺼낸다.

맨 손으로 만지기는 싫겠지.

화장실 변기 물로 흠뻑 젖었으니까.

 

-짜악!

 

장갑을 착용한 경비는 잠시 심호흡을 하는가 싶더니 박수를 크게 한 번 친다.

정말 결심하고 다가가려는 것 같았다.

바로 그 때,

 

-딩동 딩동

 

“119에서 왔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드디어 119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 아저씨 119 왔으니까 저 사람들한테 해결 해 달라고 하죠. 건드리지 마세요 그냥.”

 

말을 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경비가 말을 한다.

 

“저 사람들은 저 사람이고, 저는 일단 제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이 손이 토막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겠어
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였다.

그래, 그렇게라도 의심이 풀린다면 말릴 이유는 없었다.

 

“아휴... 그래요 그럼 확인해 보세요. 저는 밖에 사람들 데리고 올게요.”

 

“그러시죠.”

 

말을 마치고 난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현관 앞에는 4명의 119대원들이 서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지니고 있는 도구가 간소했다.

적어도 변기를 뜯는 작업은 해야 할 텐데.

 

“안녕하십니까. 문제 있으신 게 본인 맞으세요?”

 

대원 중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말 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그 뒤로는 20대 후반정도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정신 착란이 좀 있으시다던데...? 괜찮으신가요?"

 

나는 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 숨을 쉬었다.

 

“일단 화장실로 들어가 보시죠. 백문이불어일견!”

 

안 그래도 뒤에 있는 대원 하나가 내 바지를 보면서 킥킥 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많아서 충격은 덜 하겠지만,

잠시 후에 이 사람들도 나처럼 놀랄 것을 생각하니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생각보다 많이 시급합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소방대원들은 조금 찝찝한 표정이었지만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고 내 뒤로 그 들이 따라왔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는 문 앞을 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 왜 갑자기 멈추십니까? 어... 선생님?"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변기근처에서,

 

그 경비가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경비는 변기 바로 옆에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체 죽어 있었다.

혀가 가슴팍까지 내려와 있고, 각종 오물이 신체의 구멍마다 흘러나오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죽었다는 확신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부릅뜨고 있는 눈에서는 가느다란 실핏줄이 가득했는데, 죽을 당시의 공포가 얼마나 심했는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 시선이 이르렀을 때,

나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목덜미에는,

시퍼런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어... 저기... 여러분... 그러니까...”

 

말이 안 나온다. 나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선생님, 여기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저희가 한 번 볼 테니 나와 보시겠어요?”

 

비키는 건 문제가 안 됐다.

비킨 다음이 문제였다.

내 바로 눈앞에는 아내가 쓰러져 있고,

변기 근처에는 경비가 쓰러져 있다.

그리고 변기 시트 위에는,

언뜻 보면 시체의 일부분이 잘린 것 같은 모습의 ‘손’이 얌전히 놓여있다.

혼란스러웠다.

나이 많은 대원이 뭔가 낌새가 이상했는지 슬쩍 내 허리 옆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아니!!! 이봐요 당신 무슨 일을 저지른 거요!!”

 

결국 안쪽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봤자 믿을 것 같지도 않았다.

 

“비켜 이 사람아!”

 

대원들이 나를 밀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 해 버텨 봤지만,

이미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무력하게 그 들의 침투를 허락하고 말았다.

 

“민혁아! 저 사람 잡아라. 못 도망가게 해!”

 

나이 많은 대원이 지시하자 민혁이라고 불린 가장 큰 덩치의 대원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쓰러진 아내와 경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장님, 여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그 쪽은 어떻습니까?”

 

호리호리하고 날렵해 보이는 체구의 대원이, 경비를 살펴보고 있는 나이 많은 대원에게 말했다.

조장이라고 불리는 걸로 보아 맨 처음 그들을 보고 한 예상이 맞은 것 같았다.

 

“이 쪽은 죽었어. 목에 난 손자국으로 봐서 얼마 안 된 것 같아.”

 

이 사람들도 변기는 안 보고, 쓰러진 사람들만 보고 있다.

정말 중요한 건 거기에 있다고 이 사람들아.

 

“민혁아 본부에 경찰하고, 구급차 요청 좀 해라.”

 

조장이 말하자,

나를 속박하고 있는 민혁 대원이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한 팔로 나를 붙잡고 있는데도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역시 덩치 값을 하는 모양이다.

 

“어 조장님! 변기에 사람 손이 있는데요?”

 

또 다른 젊은 대원이 변기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대원이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시체 유기인가. 조금씩 명확해 지는 것 같군. 경비까지 죽인 걸로 봐선. 그런데 차마 아내는 죽일 수 없
던 모양이지?”

 

굉장한 오해가 시작 되었다.

하지만 저 ‘손’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었다.

 

“조장님 저 손은 어떻게 할까요?”

 

“경찰 수사가 진행 될 때까지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지만... 일단 변기 바깥으로 빼 놓는 게 좋을 것 같구
나. 호영이 너는 현장사진 하나 박아 놔라. 짭새들 나중에 시시껄렁한 소리 안 하게. 디카 있지?”

 

조장이 아내를 살펴 보던 호리호리한 대원에게 말 했다.

그 대원의 이름은 호영이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넵. 챙겨왔습니다.”

 

호영은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얄상하게 생긴 카메라를 하나 꺼낸다.

 

-번쩍

 

“사진 찍었습니다. 대장님!”

 

“그래 잘 했다. 윤철아 이제 저 ‘손’ 빼라.”

 

윤철이라고 불린 그 다부진 대원이 조장의 명령을 받고,

변기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 ‘손’을 만져보면 모든 오해가 풀릴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가 다가갈수록 마음속에 점점 위화감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가 변기 바로 앞에 멈춰 섰을 때,

 

“안 돼!!!”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안 돼! 그 손 만지지마! 만지면 안 돼!!”

 

경비 목에 있던 선명한 손자국.

그것은 저 ‘손’의 짓이 분명했다.

가까이 가면 그도 위험에 처할 게 분명했다.

 

“그 손은 살아있어! 죽은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소리 지르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대원들.

조장이 나를 향해 말한다.

 

“당신은 조용히 하고 있어! 본부에서 정신 착란이라고는 했지만 콩밥 먹을 각오는 해야 할 거야.”

 

윤철 대원이 변기 안쪽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만지기 싫은 표정은 감추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의 손과 ‘손’이 이제 막 닿으려는 찰나,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저.. 조장님.”

 

조장을 부르는 그의 얼굴이 약간 경직 되어 보인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조장이 말 하자,

윤철 대원이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꺼낸다.

 

“저.. ‘손’이 조금.. 움직인 것 같아서요”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그 손이 아직 움직일 수 있다면 경비를 죽인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저 ‘손’에서 나와야 한다.

 

“어서 물러서! 그 손은 위험하단 말이야!!”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윤철이 내 말을 듣고 약간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조장이 내 앞을 막아선다.

 

“임마. 윤철이!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그냥 꺼내서 밑에 내려놓기만 해! 어서!”

 

“아.. 예..옙! 알겠습니다.”

 

윤철 대원은 정신이 퍼뜩 들은 표정으로 다시 변기에 손을 넣었다.

이번에야 말로 그의 손이 ‘손’과 막 닿는 것 처럼 보였다.

그 때,

 

-추아아아아아악!!

 

죽은 듯 얌전하던 그 ‘손’이 튀어 올랐다.

 

“우,우,우 아아아악!!”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물론 나도.

그 '손'은 윤철의 손목을 움켜잡더니 변기 안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으, 으억... 으어억!! 도, 도와주세요!!”

 

순식간의 그의 팔이 변기 안 깊숙이 당겨졌고,

변기 시트와 얼굴이 밀착되는 자세가 되었다.

‘손’이 그의 팔을 잡고 안쪽으로 들어가 내 쪽에서는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도... 도와줘야해!!”

 

나는 얼떨결에 소리를 질렀다.

내 소리를 듣고,

잠시 멍하니 있던 나머지 대원들이 깜짝 놀란다.

 

“뭐.. 뭣들 해! 어서 윤철이를 도와! 어서!”

 

정신 차린 조장이 남은 두 대원에게 지시를 내린다.

다급하게 변기 쪽으로 향하는 순간,

 

-추아아아아 철썩!

 

‘손’이 움직였다.

변기 안에서 확 하고 솟구쳐 나오더니 윤철의 목을 움켜잡았다.

움켜잡았던 팔을 놓자마자 그의 목덜미로 ‘손’을 뻗은 모양이었다.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경비도 저런 식으로 죽였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케에에엑, 켁, 컥컥컥...”

 

윤철은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비로서 다급하게 뛰어간 나머지 두 대원이 ‘손’을 붙잡고 풀어보려고 애를 쓴다.

 

“크으윽, 조장님 이거 악력이 굉장합니다. 크윽.”

 

조장까지 다급하게 달려들어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윤철의 얼굴은 점점 시뻘게지고, 눈에서 검은자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려 그 광경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눈 앞에서,

변기에서 솟은 어떤 ‘손’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컥...커....어....”

 

윤철의 혀가 길게 빠져 나왔다.

아마도 죽음에 이르렀으리라.

하지만 대원들은 여전히 ‘손’을 떼어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하고 있었다.

 

“이봐 당신! 멍하니 있지 말고 여기 좀 도우라고. 어서!”

 

조장이 나를 향해 소리쳤지만,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저 곳으로 가면 나 역시도 죽을 것만 같았다.

 

‘손’은, 이미 죽은 대원의 목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손가락이 약간 꿈틀 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난 저 '손'이 다음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 도망...가.”

 

겁에 질려서 그런지 큰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다시 한 번 힘을 다해 소리를 내려 할 때,

 

그보다 먼저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털썩

 

윤철 대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손’이 그의 목덜미를 놓았다는 것인데,

바로 그 때,

 

-철썩!!

 

“으아아악 으아악 으아아악!!!”

 

이번엔 ‘손’이 호영 대원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놓고, 잡고 하는 과정이 어찌나 빠른지 보고 있는 나조차 상황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대원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남은 두명이 부랴부랴 그의 얼굴에 붙은 손을 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이건 마치 돌덩이 같아. 크윽. 민혁아! 힘 좀 써라!!”

 

“예..옙!! 크으으윽!!”

 

다리에 힘이 빠져 연신 몸을 떨던 난,

결국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쓰러져 있는 아내를 꼬옥 껴안았다.

지금 아내가 눈을 뜨지 않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우드득, 우드드드득

 

“으아악!!!!끄으으아아악!!!”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야 정민혁!! 힘 안 줘? 힘 더 주라고 개새끼야!”

 

“젖 먹던 힘까지 내고 있다고요! 그러는 조장님이나 힘 더 주세요!”

 

-우드드득, 콰지직

 

“끄아아아아아아악!!!”

 

처참한 광경이었다.

‘손’은 중지를 중심으로 얼굴을 대칭 되게 부여잡고 있었는데,

엄지와 새끼로 턱뼈를,

검지와 약지로 광대뼈를,

중지로는 코뼈를 짓누르고 있었다.

뼈가 부서지고 으스러지면서

인간의 얼굴로 보이지 않을 만큼 뒤죽박죽으로 변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피와 함께 하얀 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는데

유심히 보니 이빨이었다.

조장과, 민혁 대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영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쓰으윽

 

계속해서 얼굴을 짓누르던 ‘손’이 살짝 위로 올라가더니

검지와 중지를 얼굴에서 뗐다.

혹시 놓아 주려는 걸까?

...라는 생각도 잠깐.

 

-푸욱!

 

잠시 멈칫하던 두 손가락이 이번엔 그의 두 눈을 찔렀다.

 

“푸후휘휘휘휘휙”

 

입 주위가 워낙에 망가진 그는 비명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극심한 고통에 어떻게든 소리는 내 봤지만 괴상한 바람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찌른 손가락은 점점 깊이 들어간다.

 

“푸후후후...후....휘..휘..”

 

그는 온 몸을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이내 추욱 하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정말 끔찍한 죽음이었다.

얼굴이 뭉개지고,

두 눈이 파이는 고통 끝에 죽은 것이니까...

'손’은 또 아까처럼, 호영이 죽었음에도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사냥감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대원들은 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열심히‘손’을 떼 내기 위해 힘을 쓴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어떻게든 비명을 지르던 호영의 소리가 끊겼다는 것을 민혁이 뒤늦게 눈치 챈다.

 

“조... 조장님. 호영이 아무래도 죽은 것 같은데요... 이..이번엔 저희한테 올 것 같은데...저기..흡!”

 

민혁이라는 대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대원들 모두가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다.

 

“이봐요 조장! 그러다 당신네들 다 죽겠어! 어서 이쪽으로 와요!”

 

조장은 잠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몸을 굴렸다.

그리고 앞을 향해 소리쳤다.

 

“민혁아! 미안하다. 모두가 죽을 수는 없잖니. 정말 미안해!”

 

민혁 대원은 ‘손’에 입을 틀어 막혀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눈빛에 원망스러움이 가득했다.

조장은 내 곁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당신 때문에 우리 대원 셋을 잃었어. 어서 설명해!”

 

엄밀히 말하면 둘이지. 아직 민혁 대원은 죽지 않았으니까.

 

“저도 몰라요! 제가 괜히 당신들을 부른 줄 아십니까?”

 

“당신이 모른다는 게 말이 돼? 당신 변기에 사람 손이 있다고. 사람을 죽이는 손이!”

 

사람을 죽이는 손을 내가 키우기라도 했단 말인가?

너무 놀라서 바지에 오줌까지 싼 내가?

 

“당신, 장비는 대체 어따 팔아먹은 거요? 절단기나 하다 못 해 팬치나, 니퍼라도 있을 거 아니요?”

 

“큰 장비는 다 차 안에 있어.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

 

“나는 분명히 변기에 ‘손’이 있다고 신고 했잖소!”

 

“그 말을 어느 미친놈이 믿겠어! 119에 장난 전화가 하루에 몇 통이 오는 줄 알아?”

 

말을 마친 조장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니퍼였다.

 

“정말 초라하군요. 저는 변기를 해체할 목적으로 당신들을 불렀는데, 니퍼만 달랑 꺼내고 있다니.”

 

조장은 대답 없이 앞을 바라봤다.

‘손’은 민혁의 입을 틀어막고,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조장은 손에 니퍼는 쥐었지만 앞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두려운 표정으로 입술만 혀로 연신 적시고 있었다.

 

“미..민혁아! 내가 그 쪽으로 가진 못 하겠다! 너..너도 니퍼 있잖아! 그...그..그걸 사용해!”

 

조장이 말을 마치고,

이제 민혁 대원도 앞 서 두사람과 똑같이 죽음을 당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콰드득!

 

둔탁한 소리가 들려서 앞을 봤더니

민혁 대원이 ‘손’의 새끼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물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손’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새끼손가락이 약간 들춰진 느낌이었다.

민혁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주머니를 뒤져 니퍼를 빼냈다.

그때,

‘손’은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민혁의 얼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아까 호영 대원처럼 얼굴이 짓뭉개질 상황이었다.

그런데,

민혁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주머니에서 빼낸 니퍼를 약간 들춰진 새끼손가락에 끼우는 데 성공했다.

 

-우드드득

 

민혁의 얼굴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흐른다.

 

“끄아아아아악”

 

극심한 고통에 소리를 지르는 민혁.

그리고 동시에 그는 니퍼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 쥐었다.

 

-콰드득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얼굴을 움켜잡은 ‘손’이 잠시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이 때야! 빠져나와 어서!!!”

 

나는‘손’ 전체가 약간 들춰진 것을 보고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쿠당탕

 

민혁은 큰 덩치를 재빠르게 굴려 우리 쪽으로 오는데 성공했다.

저 '손'에서 풀려날 줄이야.

‘손’은 새끼손가락에 니퍼가 달린 그 상태로,

변기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장은 민혁이 살아났지만 그렇게 밝은 표정을 짓지는 못 하고 있었다.

 

“어, 어 민혁아 그.. 다행이구나! 허허..”

 

어색한 웃음으로 조장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민혁은 말없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광대뼈가 약간 함몰된 얼굴.

조금만 늦었어도 ‘손’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는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눈으로 조장을 쳐다본다.

 

“어험. 험. 험.”

 

조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나를 쳐다보며 말 할 거리를 생각하는 듯 했다.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나가서 생각을 해 보자고요.”

 

‘손’은 여전히 변기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가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어나 화장실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바깥으로 나가 이 일에 대해 생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구해야 했다.

빌어먹을,

‘손’이 변기에서 나와 사람을 죽인다는 설명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끼익, 철컥

 

“어?”

 

-끼익, 철컥 철컥 철컥

 

그런데,

공교롭게도,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요?”

 

-끼익 철컥 철컥 철컥

 

“아니 어떻게 된 거냐고! 문이 안 열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미친 듯이 손잡이를 돌려 보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손잡이는 반쯤 돌아가다가 헛돌아 버리는 상태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쾅쾅쾅

 

“빌어먹을!! 열려! 열리라고!!”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 보아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바깥에서 잠그는 문이 아니니 잠겨있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대체 왜 문이 열리지 않는 걸까.

그것보다,

언제 내가 문을 닫았었지?

 

“비켜봐 이 사람아!”

 

조장은 답답한 표정으로 거칠게 나를 밀치고 문손잡이를 잡는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제기랄!!!!!!”

 

열리지 않는다.

꼼짝없이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이다.

바닥에는 이미 세 사람이 쓰러져 있고 그 중 두 명은 죽은 상태.

그리고,

변기에는 사람을 죽이는 ‘손’이 있다.

 

-쾅쾅쾅쾅쾅쾅

 

조장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거의 부숴버릴 기세였다.

 

“나갈거야!!! 나갈거라고!! 열려라 이새끼야!!!!”

 

요란한 소리만이 가득할 뿐,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기운만 빠질 뿐이었다.

 

“이봐요 조장! 진정해요! 일단 진정하고 생각 해 보자고!”

 

조장은 마치 정신이 반 쯤 나간 것처럼 문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정신없이 휘두르는 팔 한 쪽을 붙잡았다.

씩씩 거리고 있는 조장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눈까지 붉게 충혈 되어 영락없는 저승사자의 얼굴이었다.

 

“비켜 새끼야! 난 여기서 나가야 된다고!”

 

-퍼억!

 

번쩍하는 느낌이 들 더니 나는 변기 앞까지 내동댕이 쳐졌다.

조장이 붙잡히지 않은 다른 팔로 내 얼굴을 때린 것이다.

일반인인 내가 단련 된 대원에게 맞았으니 그 아픔이 여간한 게 아니었다.

 

“크으윽, 이 양반이 미쳤나. 이봐 당신!”

 

맞은 왼 쪽 볼을 감싸고,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조장은 아랑곳 않고 문만 두드리고 있었다.

워낙에 컨디션이 안 좋았던 나는 방금 전의 한방으로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내 바로 머리맡에는,

그 ‘손’이 출몰하는 변기가 있었는데도 그걸 깨닫기가 힘들 정도였다.

조장의 옆에서는 민혁이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민혁의 얼굴은 방금 전 ‘손’에게 당한 여파인지 서서히 붓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는 숨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조금씩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리고 크게 숨을 한 번 내 뱉더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 때, 민혁의 움직임을 눈치 챈 조장이 말한다.

 

“어? 정민혁이! 너도 이 문 두드려라! 우리 둘이서 부숴버리자.”

 

민혁은 표정 없는 얼굴로 조장에게 쓰윽 다가간다.

그리고는,

 

-퍼억

 

조장이 나를 때렸던 것처럼 이번엔 민혁이 조장의 얼굴을 때렸다.

덩치가 큰 민혁이 주먹을 날리자,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조장은 고꾸라지듯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너 이새끼!! 이게 무슨 짓이냐!”

 

이게 무슨 짓인지는 당신이 먼저 대답해야 할 텐데요.

 

“한 방 정도는 맞으셔야죠. 안 그래요 조장님?”

 

민혁은 조장을 바라보며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했다.

 

“이... 이새끼가!!”

 

민혁 덕분에 시끄럽게 쾅쾅 거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서서히 몸을 추슬러 본다.

 

“어, 어, 어, 어?”

 

나를 바라보고 있던 민혁이 알 수 없는 탄식을 뱉기 시작했다.

눈이 점점 커지고,

표정은 일그러진다.

 

“어, 어서 이쪽으로 와!”

 

민혁이 소리쳤다.

그 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바로 뒤에 변기가 있다는 것을 비로써 깨달은 것이다.

급하게 몸을 앞으로 숙여 몸을 굴리려는 찰나,

 

-꽈악

 

무언가 내 뒷 머리채를 붙잡았다.

‘손’이었다.

강한 손아귀의 힘이 느껴졌다.

 

“흐, 흐으악 으악 으아아악!!”

 

나는 혼비백산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픔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도, 도와줘! 도와줘! 도와,,,으아아악”

 

머리채를 움켜잡은 ‘손’의 힘이 더 강해졌다.

나는 변기 안으로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머리는 점점 젖혀지고 있었다.

 

“니퍼! 니퍼를 써!”

 

민혁의 소리가 들려왔다.

니퍼라니.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니퍼를 그대로 꼽고 변기 안으로 들어갔었지.

나는 오른손을 뻗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더듬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머리에서 마치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습게도 이런 상황에,

부부싸움 할 때 아내한테 머리채 잡힌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손을 더듬던 중 드디어 니퍼가 만져졌다.

손잡이를 잡고 ‘손’에 꼽힌 니퍼를 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뒷머리로 니퍼를 갖다 댄다.

급한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우득 우득 싹둑

 

니퍼로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한다.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잘리고는 있었다.

그러자,

‘손’의 움켜쥐는 힘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으윽!”

 

나는 급한 마음으로 손을 움직이다 결국 머리를 찌르고 말았다.

손끝에 축축함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움직임을 늦출 수 없었다.

더욱 빨리 손잡이를 누르고 머리카락을 잘라내야 했다.

정신없이 니퍼를 움직이는 중,

머리에 전해지던 아귀 힘이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붙잡힌 머리카락을 많이 잘라낸 모양이었다.

‘손’도 그것을 느꼈는지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른 잡을 곳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없다.

 

-찌지지직 우드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악!!!!”

 

이보다 더 한 고통이 내 생애에 있었을까?

나는 억지로 머리를 앞으로 당겨 움켜잡힌 머리카락이 뽑히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머리카락을 잘랐는데도 이렇게 아프다니.

보이진 않아도 내 뒷머리는 아마 만신창이가 되었으리라.

 

“'손'이 움직여요! 굴러요 어서!”

 

민혁이 외쳤다.

순간,

머리를 잡던 힘이 사라졌다.

다른 곳을 잡기 위해 ‘손’을 놓은 것이다.

이번에 잡히면 끝장이다.

 

-데구르르르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손’을 피해 앞으로 구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나는 숨을 고르고 조장을 바라보았다.

물론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말이다.

 

“살아났으면 된 거지. 뭘 그렇게 쏘아보나.”

 

정말 얄미운 사람이었다.

생각 같아선 너죽고 나죽자 덤비고 싶었지만 일단은 진정하는 것이 옳다.

 

“당신 우리가 여기서 무사히 나간다면, 정말 제대로 나한테 사과해야 할 거요.”

 

나는 조장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변기 쪽을 바라보았다.

다시 나온 ‘손’.

그 손아귀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 들려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로 보아 내 뒷머리의 상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민혁이 말했다.

아까보다 얼굴이 더 부은 모습이었다.

 

“지금 상황으론 우린 여기서 갇힌게 틀림 없군요. 그나마 저 ‘손’이 여기까지는 올 수 없다는 게 다행이
네요. 여기 있으면 ‘손’에게 당할 염려는 없으니까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고요”

 

방금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것치곤 놀랍도록 진정 된 어조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스스로를 감탄했다.

 

“그럼 이젠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 해야겠군 하하”

 

이제 조장은 무슨 말을 해도 밉상이었다.

변기에는 ‘손’이 별 다른 움직임 없이 우두커니 솟아 있다.

 

“일단 여기서 구조가 오길 기다려야겠군요. 전화 한번만 더 해 보세요. 상황을 쉽게 믿어주지 않을테니,
적당히 둘러 데는 게 좋겠어요.”

 

민혁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말없이 번호를 누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핸드폰을 건낸다.

 

“당신이 직접 하는 게 좋겠군요. 말 지어내는 재능은 별로라.”

 

-뚜우우우, 뚜우우우 딸칵

 

신호가 울리고 이내 전화 받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침착하게 여보세요를 말 하는 나.

그런데 상대방의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전히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불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귀에서 핸드폰을 떼고 핸드폰 액정을 바라본다.

 

“어? 이거 뭐야!?”

 

핸드폰 안테나 표시가 한 칸도 없었다.

 

 

 

 

 

 

 

 

 

 

 

 


나는 멍 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민혁이 말을 꺼낸다.

 

“핸드폰 안돼요? 방금 전에도 통화 했었잖아요.”

 

그랬다.

조장의 지시로 민혁이 본부에 전화 한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119를 부른 것도 여기서 핸드폰을 이용한 거였고.

 

“배터리를 한 번 뺐다 껴 보죠.”

 

멍하니 서 있는 내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가는 민혁.

전원도 끄지 않고 배터리부터 뺀다.

재빠르게 다시 끼워 시작버튼을 길게 누르자 약간의 로딩과 함께 화면이 뜬다.

 

“역시 안 되네요. 이상하네 정말. 갑자기 수신 불가 지역이 된다는 게 말이나...”

 

“뭐가 이상해! 이미 이상함의 정도를 넘어선지 오래야 여긴!”

 

문 옆에서 쪼그려 앉은 상태로 있던 조장이 민혁의 말을 잘랐다.

나이는 가장 많아 보이는데 지금은 한 없이 애 같이만 보인다.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두 번하고 말을 꺼냈다.

 

“너무 걱정할 건 없을 것 같아요. 아까 전에 분명히 민혁씨가 본부에 지원 요청을 했잖아요?”

 

“예 그렇죠.”

 

“어차피 저 ‘손’은 우리가 여기 문 앞에 있는 한 우릴 공격할 수 없을 테니 지원이 올 때까지 조금 안심
하고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

 

변기 위에 솟은 ‘손’은 두 사람을 죽인 위용답게,

시뻘건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느린 속도로 원을 그리며 뭔가 아쉬운 속내를 계속 비치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당신도 이제 정신 차려요. 당신은 우리처럼 죽을 위기도 없었잖아.”

 

쪼그려 앉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조장이 내 말을 듣자,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 애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뭐, 어쨌든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어서 나가고 싶구만.”

 

조장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나와 민혁도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화장실 문 앞에 어른 셋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라.

상상해보면 웃긴 일이었다.

그냥 보통 크기인 화장실에 대체 몇 명이 들어와 있는 건지,

문과 변기까지의 거리도 사실은 큰 걸음으로 네 걸음 정도면 닿는 거리였다.

나름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근거리의 ‘손’을 계속 보고 있자니 공포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거기에 계속 원을 그리고 있는 터라 현기증까지 밀려왔다.

 

-째깍 째깍

 

아무 말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까까지 안 들리던 시계소리가 문 건너편에서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만큼 고요했다.

우리 세 명은 변기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혹시라도 ‘손’이 어떻게 움직이진 않을까...

 

“...민혁아 담배 있냐?”

 

정적을 깨고 조장이 말을 꺼냈다.

 

“담배는 있는데 불이 없네요.”

 

민혁이 대답 하자, 조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뭐 그러냐. 그럴 거면 담배는 뭐 하러 가지고 다녀.”

 

조장의 말에 민혁도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나설 때라고 판단했다.

 

“저희 집은 금연입니다만. 담배는 여기 나가서 피시죠?”

 

조장은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그냥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조장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민혁이 돌연 내게 고개를 돌렸다.

 

“저 ‘손’은 대체 뭘까요?”

 

민혁이 말했다.

나도 정말 궁금했다.

새벽 다섯 시에 뜬금없이 남의 집 변기에 솟아 있는,

저 괴상한 ‘손’은 대체 뭐냔 말이다.

 

“저는 그보다, 저 손을 따라 변기 안으로 들어가면 대체 뭐가 나올지가 더 궁금한데요..”

 

나의 대답에 민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 했다.

 

“이 바닥에서 18년을 썩었는데, 정말 저런 괴상한 건 처음 본다. 우리 아들놈이 보면 신나하겠네.”

 

여전히 뚱 한 표정으로 조장이 툭 말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거슬리는 째깍 소리가 또 다시 귀에 박히기 시작한다.

 

“저기... 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나는 조심히 말을 꺼내봤다.

 

“올 때는 훨씬 지났어요.”

 

민혁이 깜짝 놀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아니... 저... 어떻게 된...거죠?”

 

그 때 조장이 끼어들었다.

 

“짭새 들이랑 실갱이라도 붙은 거겠지. 요즘 그 새끼들 우리랑 사이 안 좋거든.”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조장은 한 번 한숨을 크게 쉬더니 말을 시작했다.

 

“그 때도 차암 짜증나는 날이었지. 뭐 오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장은 민혁을 한 번 쓰윽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떤 새끼가 그 뭐냐, 맨홀 뚜껑을 열어 놓았는데, 젊은 여자 한 명이 밑을 못 보고 거기에 떨어진 거
야.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는데, 그 여자 핸드폰의 발신 정보를 보니 119에 거의
수백 번 정도 걸었던 모양이더군.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우리 상황처럼 안테나 표시가 한 칸도 없던
거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나요? 그리고 거기서 떨어진다고 죽기까지는 않을 것 같은데...”

 

“운이 없었어. 머리부터 떨어져서 크게 다친 데다, 늦은 시각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 믿을 거
라곤 119뿐인 상황인데 아무리 걸어도 받지를 않았던 거야. 아니 받을 수가 없었지. 발신 불가 지역이었
으니까.”

 

말을 마치고 조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민혁이 말을 잇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에요. 우리가 도착하고, 조사하던 중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그 여자를 물에 빠뜨려
버리고 만 거예요. 그 때 호영이 말로는 죽은 여자가 갑자기 눈을 떴다고...너무 놀라는 바람에 실수를
했다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민혁을 대신해서 조장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 어쨌든 실수였지. 그런데 경찰들이 와서는 관리를 똑바로 못했느니, 혹시라도 살아 있었으면 당신들
은 살인자라느니 시시껄렁한 소리를 해 데는 거야. 뭐 화날 만도 했겠지. 자기들이 하수구를 뒤져서 시체
를 찾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결국 찾긴 했나요?”

 

“찾았지. 정확히 보진 못했는데 그 놈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시체의 양 팔이 잘려져 있었다 그러더
라고. 다시 찾으러 들어가야 된다고 식겁하는 목소리로 말이야.”

 

조장은 다시 한 번 민혁을 쓰윽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때 또 짭새 놈들이 우리한테 난리를 치기 시작했어. 민혁이 이 녀석을 포함해서 세 녀석이 집중 포화
대상이었지. 뭐, 우리는 우리대로 할 말이 있으니까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지금까지 쭈욱
이어져서 여전히 짭새놈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거야.”

 

듣기 거북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걸려 지지도 않는 119를 수백 번이나 눌렀을까.

거기다 뒤늦게 도착한 119대원들은 시체를 하수구에 빠뜨리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두 번 죽게 한 셈이였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였나요?”

 

내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여기랑 가까워. 아마 이 아파트 입구에서 50미터도 채 안될 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섬뜩한 정리가 시작 되었다.

이 근처, 하수구, 핸드폰, 그리고 잘려진 두 팔...

 

“...저기, 왠지 저 ‘손’...길쭉하지만 어쩐지 여성의 손 같지 않나요?”

 

내가 말을 하자, 조장과 민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주시한다.

 

“아... 그런 것 같네. 남자 손처럼 투박해 보이진 않는구만.”

 

“맞아요. 그런 것 같긴 한데. 그게 중요한가요?”

 

나는 입을 굳게 다문 체 말 하지 않았다.

일단 내 나름대로의 정리로 남겨 놓는 것이 옳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구태여 술렁거리는 분위기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잠시 또 정적이 흘렀다.

조장과 민혁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말없이 그 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민혁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부었다.

처음 보다 거의 2배 이상 얼굴이 커진 느낌이다.

조장도 그걸 느꼈는지 민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음... 얼굴이 너무 부었는데. 이거 응급처치라도 해야겠는걸?”

 

조장은 바지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실과 바늘을 꺼내들었다.

아마도 피를 뺄 모양이었다.

민혁은 말없이 조장이 하는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부 할 맘은 없는 모양 이었다.

그런데 그 때,

 

-꿈틀

 

“응?”

 

-꿈틀 꿈틀

 

“들었죠? 뭔가 움직이는 소리!”

 

“글쎄.. 변기 위에서 ‘손’이 계속 움직이니까 뭐 아까부터 들렸다고 해야 하나.”

나의 물음에 조장은 바늘귀에 실을 꼽는데 집중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민혁 역시 못 들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분명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내 귀에 분명히 소리가 들려왔다.

 

-꿈틀

 

또 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디쯤인지도 알 수가 있었다.

 

“죄송한데요. 지금 하는 건 조금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막 바늘에 실을 끼우고,

민혁의 얼굴에 바늘을 갖다 대던 조장이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눈은 아까 전에 죽었던 윤철과 호영의 시체 쪽에 고정 되어 있었다.

 

-꿈틀 꿈틀

 

확실하게 느껴졌다.

저 안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이번엔 조장도 그걸 느꼈는지 숨을 죽인 체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틀 꿈틀 꿈틀


대원들의 시신과 경비의 시신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약간 위치가 떨어져 있었다.

변기를 기준으로 왼 편에는 경비, 오른편에는 대원들이었다.

그리고 셋 중에서 유일하게 배를 보이고 죽은 사람이 윤철이었다.

 

“자...잠깐만... 윤철이 지금 움직인 거 맞지?”

 

-꿈틀 꿈틀

 

“예 보이죠? 지금도 배가 움직였어요.”

 

조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마른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는 상태면 '숨을 쉬나보다' 생각할 테지만,

죽은 사람의 횡경막이 운동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거기다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이 괴상한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숨을 쉬듯이 움직이고 있네요...”

 

-꿈틀 꿈틀

 

우리의 말소리 외에는 정적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곳에 온 신경을 집중한 터라 비교적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소리에 비유 하자면,

물을 마실 때 목에서 꿀꺽 꿀꺽 하고 넘어가는 소리랑 비슷하다고 할까?

 

“니미 짜증나 죽겠네 정말 ‘손’이고 나발이고 그냥 발로 밟...읍!”

 

“쉬잇!”

 

검지손가락을 들어 조장의 입을 막았다.

눈치 없는 양반 때문에 집중력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대원들 쪽에서만 들려오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경비 쪽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벌레 비스무리한 종류들이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위화감이 나의 집중을 더욱 강요하고 있었다.

 

-꿈틀 꿈틀 꿈틀

 

-째깍 째깍 째깍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시계소리와 꿈틀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규칙적인 시계소리와,

불규칙적인 꿈틀거리는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져,

나로선 견딜 수 없는 초조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장 또한 식은땀을 흘리며 말없이 정면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민혁에게 별다른 기척이 없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민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조장! 민혁 대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그는 시뻘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눈은 감은 채,

힘겨운 듯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얼굴은 못 본 사이에 더 크게 부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서 흐르는 땀의 양만으로도 그 상태가 짐작이 갈 정도였다.

 

“야 임마 민혁아! 정신차려! 임마 정민혁!”

 

조장은 민혁의 모습에 상당히 놀랐는지,

퉁퉁 부은 민혁의 볼을 때려보기도 하고,

어깨를 흔들어 보기도 하면서 민혁을 깨우려는 시도를 했다.

나 또한 ‘손’에서 죽을 위기를 넘겼던 터라,

계속 변해가는 민혁의 모습에 덩달아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제발 민혁에게 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는데

지금 민혁의 상태는 정말 안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얼굴에 나쁜 피가 고인 게 원인인 것 같아. 일단 피 좀 빼야겠어.”

 

조장은 주머니에서 다시 실과 바늘을 빼 들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앞에서는 괴상한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려오고,

뒤에서는 민혁의 상태가 점점 악화 되고 있었다.

나는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초조하게 앞과 뒤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당신은 앞이나 잘 보고 있어. 이래 뵈도 18년 동안 사람만 구해 왔으니까”

 

조장이 말했다.

걱정이 가득한 나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신뢰하지 못 할 행동도 많았으나 어찌됐건 119대원이 아닌가.

나는 조장을 신뢰하기로 마음먹고

그를 향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고 소리에 집중했다.

 

-꿈틀, 꿈틀, 꿈틀... 찌직... 꿈틀

 

꿈틀 거리는 소리에 섞여 다른 소리 하나가 귀에 박혀왔다.

큰 가죽 보다는 작은 종이가 찢어진다는 느낌의 소리였다.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호흡하듯 움직이던 윤철의 배가

위 아래로 움직이다 못해 좌 우로도 흔들리시 시작한 것이다.

느린 속도였지만 불규칙한 뱃가죽의 움직임이 점점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아까 전에 나를 살려준 니퍼의 손잡이만 꽉 잡고 있었다.

바닥 모퉁이에 샴푸통이나 세제통 따위가 놓여 있었지만,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어느새 내 목을 지나 상의를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땀을 닦기 위해 한 쪽 손을 들어 이마에 대려는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바로 뒤였다.

 

“아악!! 이게 뭐야!! 눈이!! 아아악!!”

 

조장의 기겁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내 눈 앞에 믿지 못 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

 

민혁의 얼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바늘이 꼽힌 왼 쪽 뺨의 한가운데였다.

마치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는,

맹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와 사방을 적시고 있었다.

 

“아아악!! 아아악!! 제기랄!!”

 

민혁의 피로 거의 세수를 하다시피 한 조장은,

눈으로 피가 들어갔는지 눈을 비비면서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으으으으...”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민혁이 격한 비명도 없이,

나지막한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는 그 큰 덩치를 비틀 비틀 거리며 여기저기에 피를 튀기고 있었는데,

삽시간에 넓지 않은 화장실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조장!!!”

 

“으으윽, 나도 몰라. 그냥 피를 빼려고 바늘을 찔렀을 뿐이... 아악!! 눈이, 눈이 안 떠져!!”

 

솟구치는 피가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온 몸의 피가 다 빠지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팔을 움직여 비틀거리는 민혁의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오른 손으로 피가 솟는 민혁의 왼쪽 뺨을 붙잡았다.

어찌나 혈압이 강한지 막고 있는 손이 들썩 거릴 정도였다.

나는 오른손에 온 힘을 집중했다.

민혁의 뺨이 보기 흉하게 찌그러졌지만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다.

 

“헉, 헉, 헉, 멎 ...었나?

 

다행히도 솟구치던 피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혈압도 방금 전보다는 약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미 지금 쏟은 피 만으로도 치사량을 넘었을 것 같았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민혁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전히 붉은 얼굴.

입에서 조금씩 신음 소리가 나오는 걸로 보아 숨은 붙어 있었다.

 

“으으윽. 민혁이 어때? 좀 진정 됐어?”

 

조장이 여전히 눈을 감고 괴로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의 모습도 걱정스러웠지만 일단 어떻게든 민혁을 돕는 게 우선이었다.

 

“예, 일단 피는 멈춘 것 같...”

 

나는 차마 말을 다 마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민혁의 눈이 갑자기 붉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엄청난 속도로 붉어지고 있었다.

눈이 충혈될 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리고 코와 입에서도 조금씩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안 좋은 징조였다.

 

“왜 말을 멈춰. 무슨 일 있...”

 

-촤아아아아아아아

 

조장도 말을 다 마칠 수 없었다.

다시 민혁에게서 피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랐다.

이번엔 눈이었다.

방금 전처럼 맹렬한 기세로 줄기를 이루고,

정면을 향해 뿜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어디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더군다나 민혁과 마주보는 자세로 있던 터라,

난 거의 무방비로 쏟아지는 피에 당하고 말았다.

 

“으아아악!!!!”

 

나는 황급히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뺨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자,

그 곳에서도 다시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두 눈과 뺨에서 아까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피가 눈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나로선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작 일을 벌린 조장은 눈도 못 뜨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으..어어어어..”

 

민혁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사방팔방으로 뿜어지는 피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대로는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민혁에게로 다가갔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간다.

나는 눈으로 피가 들어가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왼 팔은 이마 위로 밀착시켰다.

대체 어디부터 막아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민혁이한테 또 무슨일이야! 내가 도와줄게! 어디야!!”

 

조장이 소리쳤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야.

 

-촤아아아아아

 

가뜩이나 비틀거리는데다가

피를 쏟는 구멍이 세 군대였기 때문에 막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단 넘어뜨리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판단해,

다가가자마자 민혁의 다리를 걸었다.

피가 빠져나간 탓인지 그 큰 덩치가 가볍게 뒤로 넘어간다.

넘어진 민혁의 뺨과 눈을 두 손으로 막아본다.

그런데,

아까처럼 강한 혈압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다급하게 민혁의 코에 손을 대 보았다.

숨이 없다.

나는 본능적으로 민혁의 가슴에 양 손을 얹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정말 온 힘을 다해 가슴을 압박하고 또 압박했다.

하지만,

민혁은 끝내 숨을 쉬지 않는다.

 

“안돼... 안돼 제기랄!!! 안돼!!!”

 

민혁은 이미 몸의 거의 모든 피를 쏟고 죽음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그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돼 있었지만,

새파랗게 변한 입술에서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야!!!!!! 정민혁이!!!!!! 어떻게 된 거야! 이봐 당신!! 어떻게 된 거냐고!!”

 

조장이 소리쳤다.

 

“...죽었어요.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역부족이었어요...”

 

“지랄하지마! 그 새끼 덩치가 그 정도로 죽을 덩치야? 가뜩이나 갚을 일도 있었는데 왜 벌써 죽어 그 새끼
가!!”

 

벌써 네 명이 죽음을 당했다.

남은 사람은 아직도 정신을 잃고 있는 아내와,

눈을 못 뜨고 있는 조장,

그리고 나 뿐.

‘손’과 떨어져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민혁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뜻밖이었다.

혹시라도 '손'에게 당한 것이 영향을 끼친 거라면

나 또한 안심할 수 없었다.

이대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떡하든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꿈틀 찌지직 찌지지지직 꿈틀 빠직

 

잠시 잊고 있던 소리가 귀에 박혀온다.

아까보다 훨씬 진화한 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나는 민혁의 시체를 뒤로하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스르륵 쿵 스르륵 쿵

 

이번엔 조금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중을 하지 않아도 단번에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있는 소리였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죽은 경비의 시체가 조금씩 내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스르륵 쿵

 

아주 조금씩이었지만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다가오는 것 보다는 옮겨진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았다.

경비는 엎드려 죽은 모습 그대로,

머리를 약간 들면서 몸을 스륵하고 전진 한 후에,

다시 머리를 바닥에 내렸는데,

그 때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이 모습이 계속 반복 되면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움직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데 비해,

다가오는 거리는 아주 짧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씩이지만 다가오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현재 우리는 여기서 나갈 수가 없는 신세니까.

 

“민혁이 정말로 죽은거야!? 그리고 방금 무슨 소리야. 무슨 일 있어?”

 

아직도 눈을 못 뜨고 있는 조장이 말했다.

 

“무슨 일 있어요. 어서 정신 차리세요 제발.”

 

말이 끝나자,

 

-찌지지직 찌직 꿈틀 찌지지직

 

이번에는 윤철의 배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박혀온다.

아까 전에 종이 찢어지는 소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소리였다.

그야말로 동물의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제 조금씩 괜찮아진다. 조금만 기다려보라구!”

 

조장이 약간 들 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조금 나아지는 모양이다.

 

“예. 아 그리고 눈 뜨자마자 기절 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진담 쪽에 훨씬 가까웠다.

일단,

방금 전 민혁이 뿜은 피로 온 사방이 피투성이인 데다가,

변기 앞에서는 죽은 경비가 머리를 땅에 박아가며 조금씩 앞으로 오고 있었다.

모두 조장의 눈이 안 보일 때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손’이었지만.

 

-찌지직 투둑 투두둑 푸욱!!

 

과격한 소리에 앞을 바라본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윤철의 배에서 아까보다 더 심한 소리가 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푸욱’하고 구멍이 하나 뚫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길죽한 무언가가 올라왔는데,

다름 아닌 손가락이었다.

 

-투툭 푸욱! 투투툭 푸욱!

 

하나의 구멍이 뚫리자,

곧 있어 연달아 두 개째, 세 개째도 뚫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손가락이 나왔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이 윤철의 배를 뚫고 나와 꿈틀 거리기 시작했다.

피로 범벅 된 바닥에는 경비가 움직이고,

죽어있는 윤철의 배에서는 ‘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걸 제 정신으로 보고 있는 스스로가 신기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초조하게 발만 동동 구르며 실내의 이 곳 저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면대 위쪽 선반에는 수건들과 각 종 세면 용품이 가득했다.

쓸모없었다.

변기 바로 오른 편에는 휴지가 반 쯤 채워진 휴지통과, 변기를 뚫는 압축기가 보인다.

압축기를 보면서 조금 고민했지만,

역시 쓸모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엔 고개를 돌려 왼 쪽 바닥을 바라보았다.

구석 모퉁이에 욕실용 세제들이 널려있었다.

천천히 그것들을 살펴보는 중,

빨간 작은 통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장. 잠깐 옆으로 비켜 보세요.”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조장을 옆으로 밀쳤다.

조장은 이제 약간 실눈 정도는 뜰 수 있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거기 뭐라도 있어?”

 

나는 대답 없이 그 통을 집었다.

역시 예상대로 염산이었다.

급박한 상황에 그나마 쓸모 있는 물건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여전히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펴보지만 헛수고였다.

 

“어억!! 뭐야 이건!!!!”

 

조장의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눈이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으아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네. 여기 왜 이래! 그리고 저건 또 뭐고!”

 

정확히 내 예상대로였다.

온통 피 칠갑이 된 공간에,

어떤 시체는 움직이고,

어떤 시체는 배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그래도 기절은 안 했으니 다행이었다.

 

“이제 좀 눈이 보여요? 설명 길게 못 드릴 것 같아요. 우리 어서 여기를 나가야 합니다. 당신은 119대원이
니까 쓸 만한 물건 좀 있나 찾아보세요.”

 

조장이 힘겹게 눈을 껌뻑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찾아는 보겠는데, 내가 맥가이버는 아니니까 그렇게 기대는 말라구.”

 

그런 힘 빠지는 농담을 하다니.

나는 대답은 생략하고 쓰러진 아내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언제까지고 정신을 잃은 채 둘 수는 없었다.

 

“여보! 자기야! 자기야!”

 

아내가 눈을 떴을 때,

처참한 광경에 또 다시 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얼굴을 품 안에 꼭 껴안았다.

 

-툭툭툭

 

“자기! 일어나. 어서! 김주희! 야 김주희!!”

 

등을 두드리면서 아내의 이름을 불러본다.

 

“으.....”

 

아내의 나지막한 신음소리.

조금씩 정신이 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주희! 일어나! 어서 일어나!!”

 

아내의 눈꺼풀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더 꽉 껴안았다.

 

“으...으음..음...어.. 자기..야?”

 

아내는 잠시 신음을 내뱉는가 싶더니 드디어 말을 꺼냈다.

 

“주희야. 주희야. 내 말 잘 들어야 돼. 알았지?”

 

여전히 품 안에 아내의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무슨...일이야? 숨 쉬기 힘든데 이것 좀 놓고 말 하면 안 될까?”

 

“그래 그래. 지금 놓을 거야. 있잖아. 상황이 많이 안 좋거든? 많이 놀랄 수 있으니까 마음에 준비를 좀 하라고.”

 

어쩌면,

피로 온 몸을 샤워한 내 모습만 보고도 기절할지 모른다.

품 안에서 아내의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응... 안 놀랄게. 그러니까 손 놔도 돼 이제.”

 

아내의 말에 나는 잠시 머뭇했지만 서서히 손을 풀기 시작했다.

 

“내 얼굴 봐도 놀라지 않기다?”

 

“알았어.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비린내가...”

 

아내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갑자기 하던 말을 중단한다.

적잖게 놀란 표정이었고,

입술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자기야!!! 얼굴이 왜 그래!!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어!!”

 

갑자기 아내가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나 뿐 아니라 조장도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어이쿠 목청이 참 크시네요. 여기 생각보다 아늑하니까 걱정 마세요 허허허”

 

조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내를 위로하지만,

여전히 힘 빠지는 농담일 뿐이었다.

 

“나 다친 거 아냐. 지금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 그러니까 잘 들어. 하나만 알면 돼.”

 

진지한 나의 모습에 놀랐는지 아내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지금 저 변기 위에 솟은 ‘손’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고, 우리는 지금 이 곳에서 나갈 수가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름대로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략하고 알기 쉽게 말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저 ‘손’이 사람을 죽인다고. 여기서 나가야 돼!”

 

아내는 더욱더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로 보아 소리를 지를 모양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역시.

고개를 돌리는 족족 처참한 광경이니,

아내는 그저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계속 소리를 지르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다리를 휘청하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면 분명히 다시 정신을 잃을 게 뻔했다.

나는 손을 뻗어 아내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주희야. 내 말 들어. 주희야! 지금 너가 또 정신을 잃으면 우리 정말 큰일 나는 거야. 참기 힘들겠지만 조금만 기운 내! 니 서방이 옆에 있잖아!”

 

아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정신이 번쩍 든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정신이 좀 들어? 우리 지금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희야!”

 

아내는 여전히 거친 숨이었지만,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나, 나, 지, 지금 꿈꾸는 거 아, 아니지?”

 

아내가 여전히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며 말했다.

 

“꿈 일거야. 꿈이라고 생각하자 주희야. 그리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한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정신을 잃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한 쪽 팔로 아내의 어깨를 감싼 후 조장을 바라보았다.

조장은 바닥에서 세제 통들을 살피고 있었다.

 

“뭐 좀 쓸 만한 게 있나요?”

 

조장은 락스 통 하나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을 꺼낸다.

 

“음.. 이런 걸로는 안 되겠는데. 이 집은 오일 같은 거 안 쓰나?”

 

“오일이요? 기름 말씀하시는 거예요? 화장실에 그런게 있을 리가...”

 

“베이비오일이라면 있어요. 그것도 괜찮나요?”

 

내 말이 체 끝나기 전에 아내가 입을 열었다.

아직 몸을 떨고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진정이 조금 된 것 같았다.

조장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곧 대답을 했다.

 

“음... 괜찮겠네요. 베이비오일도. 어디 있나요?”

 

“자기야 잠깐만 손 좀 놔줘.”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나는 아내의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아내는 조금 비틀거리면서 문 오른편 구석으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샴푸나 린스 등이 놓여져 있었다.

아내는 쪼그려 앉아 이리 저리 통 들을 헤치더니,

푸른색으로 투명한 얇은 통을 하나 꺼내들었다.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반 쯤 차 있었다.

 

“자 받아. 그리고 나, 이제 괜찮으니까 조금 상황을 설명해 주면 안 돼?”

 

아내가 내게 오일 통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 오일 통을 받아 조장에게 전해주며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일단 변기에서 ‘손’이 나왔는데 내가.....어?...어어!?”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자기야??”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앞에 ...

 

“뒤.. 뒤로 최대한 붙어!!”

 

경비의 입 밖으로,

‘손’이 손목까지 튀어나와서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디디며,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

안 그래도 쇠약해진 아내에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정말 가혹한 모양이었다.

사람의 입 안에서 ‘손’이 튀어 나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변기에 있는 ‘손’과는 달랐다.

이번 ‘손’은 그 긴 손가락을 이용해 이동하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타닥 타닥 타다다닥

 

마치 타자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경비의 아래턱은 거의 가슴팍까지 내려와 있었고,

양 입 꼬리가 어금니까지 보일정도로 찢어져 있었다.

‘손’은 허연 손목을 드러낸 체,

경비의 시신을 끌고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대체 저게 뭐야 저..저건 반칙이잖아!!”

 

조장이 문으로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소리만 질러대는 아내의 허리를 붙잡고,

최대한 문 쪽으로 붙었다.

하지만 고작 네 걸음 정도의 거리인지라,

순식간에 ‘손’은 우리의 바로 앞 까지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손’에게 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무슨 방법이 없을지 다급하게 이리 저리 눈길을 옮기다,

퍼뜩 어떤 생각이 들었다.

 

“염산 통!”

 

아까 전에 발견해서 바지 주머니에 찔러뒀던 염산 통이 이제 서야 기억났다.

다급하게 주머니에 손을 찌른다.

어느새 ‘손’은 조장의 발 앞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주머니에 꽉 낀 염산 통이 도통 빠지질 않는다.

 

“조장! 나한테 무기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시간 좀 끌어주세요!”

 

조장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대답 없이 발만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손’은 조장의 발을 잡으려는 듯,

움직임에 맞춰 조금씩 타이밍을 재고 있는 듯 했다.

 

-파악

 

“아아악 잡혔어! 잡혔다고! 어떻게 좀 해 봐!!”

 

‘손’이 조장의 발목을 움켜잡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조장은 실내가 떠내려갈 듯,

큰 소리로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염산 통은 주머니에서 반도 안 나온 상태였다.

마음이 급해지니 더 안 빠지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한 손으로는 아내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놔! 놔! 놓으라고! 놔! 개새끼야! 놔!!”

 

조장은 잡히지 않은 발로 손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은 꿈쩍도 하지 않고,

 

-꽈당!

 

오히려 조장의 발을 당겨 넘어뜨리는데 성공했다.

 

“으..으...으악 으아아악!!”

 

얼마나 악력이 강했는지,

조장의 발목에 벌써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요! 거의 다 뺐어!”

 

‘손’은 조장의 발목을 꽉 잡은 채,

손가락만 하나씩 천천히 위로 올려 전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일어나려 발버둥 치는 조장이지만,

손의 악력에 경비의 무게까지 더해져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염산 통이 드디어 주머니에서 빠졌다.

나는 다급하게 뚜껑을 돌리기 시작했다.

겉면에 그려진 해골마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조장! 잘 들어요! 지금 염산을 부을 거예요! 이게 최선의 방법이니까 참아주세요 알았죠?”

 

“뭐든 해 어서!! 아? 그, 그건 안 돼! 사람 다리에 염산이라니!!”

 

‘손’이 조장의 발목을 타고 있었으므로,

염산을 부으면 조장의 다리까지 큰 상처를 입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주춤하는 사이에,

‘손’은 이미 조장의 정강이를 넘어 무릎으로 막 검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장! 손이 더 올라가면 이제 붓고 싶어도 부을 수가 없어요! 어서!”

 

“이런 개! 지랄! 염병!!! 니미!!!! 부어! 부으라고!!”

 

드디어 조장의 동의가 떨어졌다.

나는 재빨리 뚜껑을 열고,

지독한 냄새와 하얀 연기를 내뿜는 염산 통을 조장의 다리 위로 가져갔다.

 

“붓습니다! 이 악 물어요!!”

 

-촤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조장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살이 타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손’과 조장의 다리에서 기포가 나기 시작한다.

‘손’ 또한 대미지가 상당했는지 그 상태에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살점들이 점점 녹아내리며 허연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손’은 심각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움켜 쥔 조장의 발목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염산을 계속 붓는 수밖에 없었다.

조장의 비명소리가 더욱 처절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통의 반 정도를 부었다고 느끼는 순간,

‘손’이 드디어 조장의 발목을 놓았다.

다시 바닥으로 돌아온 ‘손’은,

부글부글한 기포에 둘러싸여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손' 밑에 있는 경비의 얼굴까지 염산의 영향을 받았는지,

얼굴 곳곳이 녹아내려 알아볼 수 없는 형체를 띄고 있었다.

 

“콜록, 콜록, 콜록!!”

 

옆에 있는 아내는 지독한 염산 냄새에 괴로워하며,

양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계속해서 기침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속이 메스껍고 정신이 어질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조장은,

 

“끄으윽, 어, 어떻게 됐나?”

 

땀을 그야말로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일단. 시간은 조금 번 것 같은데, 콜록 콜록, 음. 좀 어떠세요?”

 

“헉, 헉, 오른 쪽 다리에 감각이 없어. 상태 좀 봐주지 않겠나?”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조장의 오른 쪽 다리는 적어도 내 소견으로는 회생불가였다.

살점이 녹다 못 해 뼈가지 녹아내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상태였는데,

무릎 아래에서 발목 윗부분 그러니까 정강이 쪽이 그러했다.

만약 '손'이 허벅지 위로 허리춤까지 올라왔다면,

조장은 하반신 전체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음. 음... 구급대원 생활 오래했으니 제가 꼭 말을 안 해도...”

 

어쩐지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어쨌건 조장의 다리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내가 아닌가.

 

“헉, 헉, 그래, 아마 이 쪽 다리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모양이군.”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투였다.

 

“희석하지 않은 염산은 강철도 녹이는데, 하물며 인간의 다리가 온전할 리가 없지.”

 

조장은 힘겹게 숨을 골랐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건 ‘손’도 마찬가지여서 지금 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조장, 아직 ‘손’이 당신 바로 앞에 있어요. 괴롭겠지만 한 번만 더 참아주세요.”

 

조장은 눈을 꼭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손’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아

 

-탁 타타탁 타닥 타다다탁

 

사정없이 바닥을 디디는 손.

저 ‘손’을 컴퓨터 자판 위에 두면 어떨까 하는 우습지도 않은 상상이 머리에 떠오른다.

 

-탁 타닥 타다닥...풀썩...

 

거친 몸부림 아니 손부림 끝에 ‘손’이 쓰러졌다.

하지만 기뻐할 세가 없었다.

이번엔 윤철의 배를 뚫고 나온 손이 서서히 바닥을 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조장, 조장! 정신 차려요! 조장!”

 

눈을 감은 채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조장을 다급하게 부른다.

 

“끄으윽. 나, 나 조금만 쉬면 안 되겠나. 너무 괴로운데.”

 

“조장! 아까 그 베이비오일 어디에 쓰려고 했던 거예요? 예?”

 

조장은 힘겨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억지로 입을 떼기 시작했다.

 

“부, 부, 불... 불을 붙일 수 있어. 그, 그걸 문, 문 손잡이 쪽에.”

 

길지 않은 말이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베이비오일도 기름이기 때문에 가연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화장품의 종류라고 생각했던 난, 그런 발상에까진 도달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불이었다.

아까 전 조장과 민혁의 대화를 미뤄 보아,

이 둘에겐 분명히 없을 테고.

나는 아내를 바라봤다.

아직도 얼굴을 부여잡은 채, 쪼그려 앉아 괴롭게 숨을 쉬고 있었다.

 

“자기야. 혹시 라이타 있어?”

 

“후욱, 없어. 후욱 후욱”

 

있을 리가 없지.

나는 다시 조장을 부르는 수 밖에 없었다.

 

“조장! 불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요! 정신 차려보세요!”

 

조장에겐 너무나 가혹한 시간이 분명했다.

 

“부, 불. 호, 호영이한테 이, 있을거야.”

 

조장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멍 한 표정을 지어야했다.

호영이라 함은,

변기에 있는 ‘손’과, 윤철의 배에서 나온 ‘손’.

그 사이로 엎드린 채 죽어있지 않은가?

설마 저길 뚫고 가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저, 조장. 민혁 대원과, 호영 대원을 혼동한 거 아니에요?”

 

하지만 내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리며 조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오전에 불을 빌렸거든”

 

아까 전 손에게 당한 뒷머리가 갑자기 욱신거려온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다리를 크게 다친 조장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고,

독한 염산 냄새는 아내도 나도 점점 쇠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다,

윤철의 배에서 나온 ‘손’이 바닥을 디디며,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호영의 몸을 쳐다봤다.

참혹하게 찌그러진 얼굴에서 시작해 피로 물든 그의 전신을 천천히 훑었다.

 

“찾았다!”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호영의 바지 주머니 위에 라이터만한 크기로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보인 것이다.

나는 손에 든 염산 통을 흔들어보았다.

남은 양이 반에 반도 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저 라이터를 가져와야 한다.

어금니를 한 번 꽉 깨물어본다.

 

-탁, 타닥

 

윤철의 배에서 나온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

 

나도 앞을 향해 움직였다.

“왜 갑자기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면서 웃고 그러냐. 뭐 좋은 일 있어?”

 

일을 마치고 모처럼 일찍 귀가를 했는데, 마중 나온 아내가 연신 싱글벙글이다.

 

“후후후 오늘 무슨 일 있었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온다며,

어제 밤에 단단히 삐져서는 오늘 아침부터 한 마디도 안 한 아내였다.

심지어 아침밥과 국을 냉장고에 넣어 놓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아마 며칠은 고생하겠거니 했던 터인데.

 

“나 오늘 병원 갔다 왔어.”

 

“어? 어디 아프...”

 

무의식적으로 아내의 건강을 염려하려는데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다.

 

“너, 너 혹시 임신?”

 

말을 마치자 아내가 달려들어 내 목을 껴안는다.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전신을 휘감는다.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 오늘 갑자기 속이 이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 본 건데...히히”

 

지금 아내의 모습에서 아침까지의 살벌함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된다는 것.

어떤 기분인지 정말 궁금했었는데, 뭐랄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낯설기도 한 이 기분.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내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자기야 아침엔 미안했어~ 사랑해~”

 

모처럼 일찍 퇴근했더니 이런 행복이 찾아오는구나.

다시는 술 때문에 늦게 퇴근하지 말아야지.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오늘 밤에 우리 연애할 때 분위기 좀 내볼까?”

 

“어서 들어오기나 하셔. 참, 자기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 놨어~”

 

행복하다.

아니 행복했다.

비록 일주일 만에 약속을 어겼지만.

그래도... ...

 

 

 

 

 


윤철의 배에서 나온 ‘손’이 발밑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내 발목을 잡기 위해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아까 조장에게 했던 것처럼.

좌우로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배 속으로 시뻘건 내장들이 보여 무척이나 역겨웠다.

대체 저 내장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손이 나온 걸까?

 

-탁 타닥 탁 타닥

 

나는 천천히 염산 통을 ‘손’ 바로 위까지 올렸다.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신중해야했다.

 

-촤아아

 

적당한 타이밍을 잡았다고 판단,

염산을 부었다.

하지만 ‘손’은 엄지 부위만 타격을 입었을 뿐,

빠른 움직임으로 피해를 최소화 했다.

들이부운 양에 비해 터무니없는 성과였다.

나는 다시 진지한 자세로 ‘손’에 염산을 붓기 위해 몰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나의 공격에도,

‘손’은 약간의 피해만 입은 채 잘도 피해버린다.

염산의 양은 점점 줄어가고,

‘손’은 여전히 좌우로 움직이며 나의 행동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손’과 이렇게 대치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호영의 바지춤에서 라이터만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염산 통을 흔들어보니 많아 봐야 세 번 정도 공격할 양 뿐이었다.

 

-촤아아!

 

나는 염산 통을 비스듬히 들고 염산이 앞으로 뻗어나가게끔 뿌렸다.

피해는 적지만,

반경을 넓혀 피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예상대로, ‘손’은 방금 전 보다 큰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염산에 맞은 부분에서 ‘치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손'의 딜레이가 생긴 이 때가 기회였다.

나는 재 빨리 호영에게로 다가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의 감촉이 전해져온다.

자 이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

바로 그 때,

 

-콰악!

 

변기에 있던 ‘손’이,

호영의 바지 주머니에서 막 빼내던 나의 왼 손목을 잡았다.

거리가 안 닿을 줄 알았는데 어깻죽지까지 튀어나와서는 기어코 나를 붙잡은 것이다.

예상하지 못 한 습격이라 깜짝 놀라서 그런지,

가슴이 벌렁 벌렁 뛰기 시작했다.

 

-꽈아아악

 

엄청난 힘이 손목에 전해져 온다.

 

“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비명.

머리를 붙잡힌 것과는 또 다른 아픔이 내 몸에 엄습한다.

‘손’은 호영의 주머니에서 내 왼손을 빼내,

조금씩 변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손에 쥔 라이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쏟아 부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듯 아파온다.

이 무시무시한 힘에는 그 어떤 물리적 저항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격통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나는 오른손에 쥔 염산 통을 ‘손’에 겨누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아

 

정확히 ‘손’의 손목 부분에 염산을 붓는데 성공했다.

 

“크으으으윽!!”

 

잡혀있는 내 왼손에도 염산이 튀면서 강한 고통을 유발했다.

염산이 닿은 자리가 기포를 내며 녹아내린다.

살이 녹아내리는 아픔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손이 통째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약간 튄 정도로 이런데 조장은 오죽했을까.

 

-부르르르 부르르르

 

‘손’ 또한 큰 데미지로 인해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하지만 부여잡은 손은 여전히 놓지 않고 있었다.

악력이 아까보단 약해졌지만 여전히 빠져 나가긴 힘들었다.

염산은 이제 한 번 정도 뿌릴 양밖에 안 남았다.

내 마지막 보루.

그러나 ‘손’이 내 손을 다시 당기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촤아아아아

 

한 번 더 아까와 같은 부위에 염산을 붓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손’은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부르르 떨더니,

급기야 손목에서 풀어지고 말았다.

나는 재빨리 손을 빼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의 손목 부위가 녹아 내려 뼈를 드러내고 있었고,

나 역시 염산의 영향으로 왼 손 군데군데의 살갗이 벗겨지고 녹아내렸다.

뼈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각이 거의 없어,

일정시간동안 사용하는데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에 쥔 라이터만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이제 문 쪽으로 가는 네 걸음만 남았다.

그런데,

배에서 나온 ‘손’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내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젠 염산도 없었다.

어떻게 저 ‘손’을 피해 앞으로 갈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보니 뛰어 넘으면 될 것 같았다.

그래봐야 팔꿈치 정도 길이니까.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 자리에서 박차 올랐다.

적어도 ‘손’이 나를 붙잡을 수 없을 만큼.

 

-콰아악!

 

“으악?”

 

-콰당!

 

‘손’보다 높이 뛰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손’이 팔뚝 정도의 길이를 유지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손'은 숨어 있던 팔뚝을 드러내 내게로 뻗어왔고,

뛰는 도중 발목을 잡힌 나는 심하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손’이 나를 조금씩 뒤로 당기기 시작한다.

이제 방법이 없다.

아내라도, 아내라도 살려야한다.

 

“주희야! 김주희! 주희야!!!”

 

아내는 여전히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물론 내가 ‘손’에게 잡혀 있는 것도 보지 못 하고 있다.

 

“주희야! 잠깐만, 잠깐만 나를 좀 봐 어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자 아내가 힘겹게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창백한 얼굴이었다.

 

“어...자...자기. 꺄아아악! 자기야!!!”

 

아내가 내 모습을 발견하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주희야! 이거 받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라이터를 아내에게로 던졌다.

 

“문 밑에 베이비오일 보이지! 문에다 몽땅 뿌리고 불을 붙여!”

 

“그러면 자기는!! 자기는 어떡하고!!!”

 

‘손’이 점점 나를 변기 쪽으로 끌고 간다.

내 힘으로 이를 저지하긴 불가항력이었다.

나는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아내에게 외쳤다.

 

“너라도 여길 나가! 넌 홀몸이 아니잖아. 어서 해! 조금만 더 있으면.. 끄아아악!!”

 

바닥으로 부었던 염산이 내 몸에 닿았다.

마치 고열로 담근 쇳덩이가 살점에 닿는 느낌이다.

 

“끄으윽... 어, 어서 불을 붙여! 어서!!”

 

아내는 손으로 입을 감싸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만 짓고 있다.

 

“어떡해, 어떡해!! 저기요, 저기요!! 좀 도와주세요 네!?”

 

아내가 정신을 잃은 조장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장의 녹아내린 다리를 보고 깜짝 놀라 손을 뗀다.

 

“으....어... 무, 무슨 일이요? 라, 라이터는, 라이터는 구했소?”

 

조장이 정신을 찾았다.

몹시 괴로운 표정이었지만 그나마 아까 보다는 안정 된 듯 했다.

아내는 조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내가 던진 라이터를 줍는다.

 

“여, 여기요. 라이터 여기요!”

 

“뭐, 뭘 하고 있소. 그럼 어서 문에 불을 붙여야지!”

 

“그, 그렇지만 지금 제 남편이 붙잡혔다고요! 어떻게 좀 해 줘요!”

 

지금 조장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새 변기 앞까지 끌려왔고,

‘손’은 나의 다리를 위로 쭉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악!

 

변기에 있던 ‘손’이 나의 나머지 발을 붙잡는다.

나는 양쪽 발을 모두 ‘손 들’에게 붙잡힌 상태로,

하체만 붕 띄워진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조금씩 다리가 양 옆으로 벌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대로 날 찢어 죽이려는 것일까?

 

“저길, 저길 봐요! ‘손’들이 남편 가랑이를 찢으려고 하잖아요!! 이봐요!”

 

아내의 간곡한 외침이 들려왔다.

 

“후우..후우.. 당신이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니요. 시간이 없소. 어서, 어서 불을 붙여요!”

 

아내라도,

아내라도 살아야한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

 

 

 

 


“나 이제부터 진짜 술 안 먹을거야. 맨날 맨날 일찍 들어올게. 히히.”

“이그,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니?”

“어? 가암히 서방 말을 못 믿어?”

“하하하. 개가 똥을 참지, 자기가 술을 어떻게 참니.”

“정말이야! 두고보라고. 멋진 아빠가 될 테니깐.”

 

 

 

 

 

......


두고보라고.

멋진 아빠가 될 테니깐.

-따르르르르르릉!

 

시끄러운 알람소리.

 

“으...아... 뭐야 벌써 여덟시야?”

 

자도, 자도 자고 싶은 게 잠이다.

그런데 아주 기가 막힌 꿈을 꾼 것 같은데 뭐였더라.

 

“자기야 일어났어? 아침 차렸으니까 어서 나와~”

 

방 바깥으로 아내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침대 난간에 멍 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뭔가 끔찍한 일을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 꿈이 떠오르질 않는다.

평소 같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잊어버릴 텐데 이상하게 집착이 생겼다.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겨봤지만,

'화장실'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야!! 밥 먹으라고 밥!!”

 

아내의 소리가 거칠어졌다.

결국 나는 찝찝한 마음을 지우지 못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머릿속에는 화장실만 떠올랐다.

 

“저, 자기야. 혹시 우리 화장실에 무슨 일 있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화장실? 무슨?”

 

“그러니까, 뭐 변기가 막혔다거나, 뭐 구더기가 번식한다거나 같은...”

 

막 입안에 음식을 넣고 있던 아내가 인상을 확 구기기 시작했다.

 

“아~ 밥 먹는데 왜 그딴 얘기를 하니!!”

 

“아니, 그게 아니고 꿈이 조금 이상해서...”

 

아내의 대답에 머쓱해진 나는,

이후로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용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막 문손잡이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번쩍하고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손!”

 

나도 모르게 내 뱉는 탄식.

 

“뭐? 갑자기 문 앞에서 무슨 소리야.”

 

그릇을 치우던 아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손! 손 말이야! 변기에 손이 있었잖아!”

 

“꿈 꿨다는 게 그거야? 애도 아니고 뭐 그런 꿈을 꾸냐. 어서 씻기나해 늦겠어!”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는 아내.

하지만 난 모든 게 떠올랐다.

변기에서 나와 사람을 죽이던 ‘손’.

그리고 죽은 사람의 몸에서는 또 다른 ‘손’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손’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를 맞이했었다.

갑자기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억.

그게 꿈이었단 말인가?

 

“자기야. 오늘 며칠이지?”

 

“24일~”

 

“뭐? 오늘 24일이라고? 어제 2일이었잖아. 9월 2일.”

 

“빨리 세수하고 잠 깨세요 아저씨~”

 

뭔가 이상했다.

어제는 9월 2일이었는데.

어제 밤에, 과장님 그리고 동료 몇 명이랑 9월이 된 기념을 하자며 술을 마시러 갔었다.

분명했다.

얼큰하게 취한 과장님이,

옷을 벗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경찰까지 왔던 것이 똑똑히 기억나니까.

여러모로 이상했지만 일단 모든 게 꿈이라 결론 짓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변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혹시라도 ‘손’이 있을까봐.

하지만,

역시 없었다.

나는 '참 정교한 꿈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변기로 다가갔다.

소변을 보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는데,

변기 안에 있는 물에서 뭔가 이상한 게 비친다.

 

“헉! 이게 뭐야!”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왠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천장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변기를 바라보자 방금 그 여자의 얼굴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별 헛 게 다 보인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용변과 세면을 마쳤다.

 

“이그 회사 늦겠다. 오늘 따라 왜 그렇게 꾸물대니.”

 

화장실에서 나오자,

어느새 아내가 옷가지를 준비해 놓고, 넥타이 줄 길이를 조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어서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

머리를 빗는 둥 마는 둥 손질하고 급하게 옷을 입는다.

 

“다녀와. 일찍 온다고 약속한 거 얼마나 오래 지키는지 보겠어!”

 

그 약속이 깨진지가 언젠데.

역시 뭔가가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천천히 생각할 여유는 없다.

일단 지각은 면해야한다.

 

“그래 알았어. 다녀올게 이따 봐~”

 

평범한 검정색 서류가방을 손에 쥐고 빠른 걸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양이 나를 비춘다.

 

“여~ 오늘은 조금 늦은 모양이네요~”

 

매일 아침 복도에서 체조를 하는 903호 아저씨도 그대로였다.

평범한 일상의 시작과 진행.

역시 모든 건 다 꿈이었나.

엘리베이터를 내려 경비실을 지나치려는 순간,

갑자기 아까 전 꿈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비실 문을 두드려 보았다.

 

“아저씨, 아저씨!!”

 

옆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십니... 아 901호. 안녕하세요.”

 

꿈에서 처참하게 죽었던 그 경비였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직 교대 안 하셨네요? 피곤하시겠어요.”

 

“이놈의 늙은이가 정신이 나간게지. 지금이 몇 신데 안 오고. 휴~”

 

한 숨을 쉬니 깊게 패인 주름이 더욱 도드라진 느낌이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 곳에서 나와 아파트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늘 가던 길로 걸음을 떼려는 데,

문득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후미진 길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왠지 그 길로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지하철역까지 거리는 비슷했다.

잠시 손을 올려 시계를 한 번 확인한 후,

나는 그 길로 걷기 시작했다.

짓다 만 건물들,

여기저기 방치 된 쓰레기들,

같은 아파트 앞인데 늘 다니던 길과 전연 딴 판이었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맨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보니 뚜껑이 열려있었다.

 

-살......세요

 

맨홀 앞에 서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엎드리고 맨홀에 귀를 기울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만약 내가 이 길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 여자는 오랫동안 구출 받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와줄게요!”

 

아래로 소리를 지른 다음,

맨홀에 붙어있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하수구의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

사다리 밑으로 내려간 나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그런지 그 여자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용 플레시를 켰다.

그리고 좌우로 빛을 비추며 살피고 있는데,

 

“도와주세요.”

 

“으악!"

 

갑자기 내 귀 바로 옆으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아. 깜짝 놀랐잖아요. 저기 괜찮으세요?”

 

떨어진 핸드폰을 집으며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도와주세요.”

 

아까와 같은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예. 도와주러 왔어요. 어쩌다 이런 길로 들어오셔서 봉변을 당하시고.”

 

어둠에 가려 여자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다.

긴 생머리에 짙은 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쓰러져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설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맨홀에서 떨어진 거.. 아닌가요? 서 계실 수 있으시네요..?”

 

“도와주세요.”

 

또 같은 말이었다.

나는 왠지 이 여자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 저기 죄송한데요. 그.. 그.. 일단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지 제가 좀 보겠습니다.”

 

나는 다시 핸드폰의 플레시를 켜고 이번엔 그 여자 쪽을 비춰보았다.

 

-파앗

 

“우아아악!”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양팔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와주세요.”

 

검정색 민소매 원피스의 어깨끈 옆으로,

당연히 있어야할 그녀의 팔이 없었다.

거기에 그녀의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잘려진 팔 부위에서 피가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으... 으어어어... 당...신 뭐야!!”

 

그 여자가 비틀비틀 조금씩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는 뒤로 엎어져 땅에 손을 짚은 채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첨벙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자 손에 물이 닿는 느낌이 난다.

화들짝 뒤를 돌아보니 하수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못 한 채,

이빨만 딱딱 소리를 내며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이윽고 그 여자는 내 바로 앞까지 도달했고,

허리를 숙여 내 면전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댄다.

 

“도와주세요.”

 

또 똑같은 말.

숨 막히는 공포가 나를 사로잡기 시작한다.

 

“대... 대체 뭘 도와 달라는 거야!”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질렀다.

 

“저. ‘손’을 잃어버렸어요.”

 

-촤아아아아아

 

갑작스런 물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하수구에서 치솟은 ‘손’이 내 얼굴을 덮치고 있었다.

 

-콰악!

 

‘손’이 내 얼굴을 붙잡고 터뜨릴 듯 쥐어짜려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찾았네. 내 손.”

 

 

 

 

 

.......


“으아아아아아악!!!!!”

 

그렇게 깨어난 곳은,

“이봐. 이봐. 정신 좀 차려. 이봐.”

 

무거워진 눈꺼풀이 좀처럼 들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만이 스테레오처럼 들려온다.

 

“어서 일어나! 나가야한다고 우리!”

 

머리맡이 뜨겁다.

마치 뜨거운 난로불이 머리를 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누군가 소리칠 때마다, 느껴지는 뜨거움의 정도도 점점 커진다.

 

“이봐 일어나라고!!”

 

다시 한 번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박히는 순간,

 

“으아아아아아악!!”

 

머리에 불이 붙은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머리 곳곳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화장실 문이 불에 타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장작을 태우는 것처럼 ‘타닥 타닥’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려 이 사람아! 시간 없어!”

 

이젠 누가 그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쳤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조장. 아... 꿈이었구나. 꿈...”

 

말을 마친 나는 황급하게 얼굴을 더듬어 본다.

눈, 코, 입술, 그리고 뺨까지.

손가락에 붉은 피는 묻어 나왔지만 얼굴이 찌그러지거나 하진 않은 것 같았다.

‘손’이 내 얼굴을 쥐어짤 듯 붙잡았던 건 아무래도 꿈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었다.

시커먼 하수구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얼굴을 붙잡혀 죽음을 당하다니.

그리고 도와달라는 말만 반복했던 그 팔 없는 여자는 대체 뭐였을까?

 

“무슨 꿈을 꾼 진 몰라도, 일어났으면 마누라도 어서 깨우라고. 난 다리 때문에 거기까진 못 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신이 번쩍 든다.

‘손 들’에게 양 다리를 붙잡힌 체 찢어져 죽기 직전이었던 것도 떠올랐다.

아마 정신을 잃었던 것도 그 때였을 것이다.

생각이 정리 되자 가랑이 사이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큰 아픔은 아니었지만,

욱신욱신 거슬리는 통증이었다.

그 때,

아내에게, 너 만이라도 살라고 외치며 라이터를 던졌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 아내!!! 아내는 어디에 있나요!?”

 

나는 조장에게 왈칵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움에 깜짝 놀랐는지 조장은 잠시 동안 눈만 껌뻑 거린다.

 

“아, 아, 아이쿠 깜짝이야! 아내라면 오른 쪽에 있잖아.”

 

조장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오른쪽 벽 구석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몸, 이 곳 저 곳에 시커먼 그을음이 보였고,

무릎과 팔꿈치 등에 가벼운 타박상도 보였다.

그리고 오른 손에는 시커멓게 탄 장갑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발목에 찍혀있는 손자국이었다.

 

“주, 주희야!! 김주희!! 으으윽.”

 

벌떡 일어났지만 온 몸에 찌릿 하는 통증과 함께 이내 자리로 주저앉고 만다.

 

“조장! 제 아내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

 

조장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말없이 눈짓으로 변기 쪽을 가리킨다.

 

-화르륵. 화륵.

 

변기 주위에도 불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변기 오른 쪽 바닥에는,

시커멓게 탄 ‘손’이 흰 연기를 뿜으며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아마도 윤철의 배에서 나왔던 ‘손’인 것 같다.

그리고 변기 안쪽으로는,

제법 불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최초로 발견한 ‘손’은 보이지 않았다.

 

“볼에 뽀뽀라도 해 주라고. 당신 마누라 작품이니까 허허.”

 

멍하니 변기 쪽을 쳐다보고 있는 내게 조장이 말했다.

나는 잠시 동안 아내와 변기 쪽을 번갈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저기... 아내가 저를 구한건가요?”

 

“당연하지! 그럼 내가 구했을까? 하하”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한 쪽 다리가 녹아내려 서지도 못 하는 조장이 나를 구할 리는 만무했다.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어 보였던 아내가,

나를 위해 저 지옥 같은 변기 앞으로 뛰어 든 게 확실했다.

안구에 조금씩 습기가 서리는 것 같아 나는 다급히 눈을 비볐다.

 

“사실 나는 말렸어. 고작 ‘손’ 하나 때문에 우리 얘들이 셋이나 죽었는데, 하물며 둘이나 되는 ‘손’을 어떻
게 상대할 수 있겠냐고 말이지.”

 

조장은 그 말을 하고 잠시 그 때 생각이 났는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잠자코 오일을 문에다 뿌릴 때 까지는 아 포기했나보구나 생각했었지. 그렇게 한, 반 정도를 뿌렸을까.
대뜸 내 손에서 라이터를 뺏어 문에다 불을 붙이고는, 허리를 숙여 뭔가 주섬주섬 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변기로 달려가더라고. 뭐 잡을 생각도 못했지. 꼴도 이 꼴이고 말이야.”

 

“그래서 ‘손’들하고 싸웠나요. 제 아내가?”

 

아까보다 통증이 덜 해, 몸을 일으키며 내가 말했다.

 

“싸우다마다. 아 그러고 보니 허리를 숙였을 때 장갑을 꼈었구나. 그 죽은 경비가 끼고 있던 장갑 말이
야.”

 

그 말을 듣자,

경비가 내 말을 못 믿고‘손’을 만져보기 위해 장갑을 끼던 모습이 생각났다.

 

“장갑 두 개를 오른 손에만 끼 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갑자기 손에다 오일을 붓더라고.”

 

아까 봤던 시커멓게 탄 장갑. 그렇다면 혹시.

 

“손에 불을 붙일 때는 정말 깜짝 놀랐었지.”

 

“이런 제기랄! 주희야!!”

 

조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아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잠시 아내의 몸을 살핀 다음,

거의 재만 남은 장갑을 조심히 벗겨보았다.

그러자 울퉁불퉁 흉측하게 부어올라 시뻘겋게 변색 된 손이 드러난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주희가...”

 

“이봐. 이봐!”

 

한탄하고 있을 때 조장의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장난해? 사람이 넷이나 죽었어. 게다가 나는 한 쪽 다리를 잃었고, 당신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
었지. 그까짓 화상이 대순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울컥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임신까지 한 몸이라고요! 이 손으로 어떻게 애를 키웁니까!”

 

“나도 집에 아내와 자식이 있어!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

 

“그렇지만..”

 

“지금 슬퍼할 겨를이 있다는 게 놀랍다!”

 

반박할 수 없었다.

아니, 설득 당했다고 해야지.

여기서 나간다면 가장 힘든 삶을 살 사람은 아마도 조장일 테니까.

잠시,

조장과 나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으..으음.”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아내였다.

 

“정..정신이 들어? 주희야!”

 

“어..음.. 자.. 자기 일어났구나. 하.. 다행이다 정말.”

 

빙긋 웃고 있지만, 몹시 힘들어 보였다.

 

“그, 그래. 고마워 정말. 너 아니었으면, 너 아니었으면...”

 

쪽팔리게 울음이 나오려는 것 같아,

침을 여러 번 삼키며 억지로 참아냈다.

하지만 아내가 눈치 챘는지 망가진 오른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나가자 우리.”

 

아내의 짧은 한마디.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수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문이 많이 약해졌을 것 같아. 한 번 열어 보자구.”

 

잠자코 있던 조장이 말했다.

문을 보니 정말로 불길이 아까보다 많이 약해져 있었다.

이젠 거의 문이라기보다는 시꺼먼 재 덩이에 가까웠다.

반면 변기 쪽에 타오르던 불길은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손’과 싸우기 위해 변기 주위에 오일을 흩뿌렸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화장실 문만 열면 그만이었다.

나머지는 나가서 생각해도 충분하다는 생각 뿐.

 

“발로 한 번 차면 부숴 질 것 같네요.”

 

내가 몸을 일으키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 괜찮겠어? 내가 해도 되는데...”

 

“아냐. 가랑이가 아직 아프긴 하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걱정마”

 

허세를 부려봤지만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기만 하다.

나는 문 앞에서, 발로 차기 전에 잠시 심호흡을 했다.

다리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밖에 나가서 뭐부터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 한참을 지각한 회사를 가야할지.

경찰서를 가서 믿어주지 않을 얘기를 오랫동안 하고 와야 할 지.

아니면,

 

“조장. 여기 나가면 우리 다른 거는 나중에 생각하고 맥주나 한 잔 하죠.”

 

“허허허. 그거 좋지. 시원하게 생맥주 한 잔에 오징어나 한 마리 뜯자고.”

 

“어쭈 대낮부터 술 마시려고? 그랬단 봐라.”

 

온 사방이 피로 물들고,

우리 모두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 모두가, 대체 누구에게서 나온 지 모르는 수수께끼의 ‘손’ 하나 때문이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오른 쪽 발을 돌리며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 허리를 틀어 문을 향한 발길질을 준비한다.

그리고,

 

“합!”

 

-쾅, 콰지직

 

예상외로 한 번에 부숴 지진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발을 찬다.

 

-콰직, 콰지직

 

문이 약해져 있는 건 확실했다.

다만 발로 찬 곳만 움푹 파이기만 한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힘을 모아 한 번에 차는 것 보다는,

여러 번 연속으로 밟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하고,

손으로 벽을 짚은 체 연속으로 빠르게 문을 밟았다.

 

-쿵, 쿵, 쿵 콰직 콰지직 콰지지직

 

-쿠웅!

 

이곳저곳 구멍이 뚫려 나가는 가 싶더니,

굉음과 함께 드디어 문이 열렸다.

 

“아..”

 

숨죽이고 쳐다보던 조장과, 아내도 문이 열리자 나지막한 탄성을 질렀다.

그래,

이제 밖으로 나가면 다 끝이다.

모든 게 끝이야.

아내에게 혼나더라도 맥주는 마시고 말테다.

.....

그런데,

 

“자기야. 뭐 해. 어서 나가! 문 열렸잖아.”

 

아내의 말을 들었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자...잠깐만. 우리 조금만 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

 

보고 있던 조장이 답답했는지 문 쪽까지 양 팔로 기어왔다.

 

“그냥 나가면 되는거지 뭐야 대...체...어...?”

 

조장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이 사라졌다.

어느새 다가온 아내도 입을 벌린 체 바보처럼 서 있다.

 

-꿈틀 꿈틀 꿈틀 꿈틀 꿈틀 꿈틀

 

문 밖에는,


거실의 벽과 천장 등,

온 사방을 뚫고 나온 무수히 많은 ‘손’들이,

마치 우리를 환영하기라도 하듯 손가락을 꿈틀 거리고 있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지... 지옥이야. 여...여긴 지옥이라고!!”


아연질색 한 표정으로 조장이 소리친다.

그래 지옥.

지금 내가 보는 광경을 딱히 표현할 단어는 지옥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벽에도, 천장에도, 바닥에도,

심지어는 냉장고에서도 ‘손’이 나와 있다.

가늘고 길쭉한 ‘손’이.

 

“우...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으아앙 우리 집이!!!”

 

나는 절규하는 아내를 꼭 안아주는 방법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이봐. 어떡하지. 우리 어떡하지!?”

 

조장의 눈에서 물방울이 맺힌다.

가뜩이나 다리 하나가 없는데 그 마음이 오죽할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제발 꿈에서 깨어나기만을,

아니 이게 꿈이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푸훅!

 

멍 하니 있는 사이, 벽에서 ‘손’이 하나 더 튀어 나왔다.

계속해서 늘어날 모양이었다.

 

“저...기 ‘손’이 계속 늘어나는데... 어떡하죠.”

 

내가 말했지만 아무에게도 대답을 듣지 못 했다.

모두 그저 자신의 공포를 표현하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나라도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다들 조금만 진정하시죠. 우리 아직 ‘손’에 잡힌 건 아니잖아요.”

 

말을 마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은 천장, 벽, 바닥 할 거 없이 튀어나와 있었지만 분포는 달랐다.

천장 쪽에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벽,

그리고 바닥 순이었다.

중력의 법칙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바닥에서 나온 수가 적다는 것은 우리에겐 희망적인 일이었다.

 

-푸악!

 

“꺄아아아악!!”

 

생각하는 사이에 또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

이번엔 천장이었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바닥을 살폈다.

천장이나 벽에 비해 듬성듬성 나와 있는 ‘손’.

잘만 요리조리 피한다면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맨 몸으로는 무리다.

 

“주희야. 주희야! 우리 나갈 수 있어. 나갈 수 있다고!”

 

“우...우리집이... 우... 우리집이...”

 

“정신 차려! 주희야. 아까 오일 다 썼어? 조금이라도 남지 않았어?”

 

베이비오일이 아직 남았어야 했다.

이 곳을 그나마 뚫기 위해선 말이다.

하지만 아내의 상태가 영 아니었다.

그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 때,

 

“오일 남았을 거야. 당신 마누라가 ‘손’과 싸울 때 오일 들이부을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

 

조장이 말했다.

아까보다 표정이 많이 풀려 있었다.

 

“어디 있죠?”

 

“아무래도 저 근처에 있겠지.”

 

조장이 쳐다본 곳은 다름 아닌 변기였다.

저 곳을 또 가야한단 말인가.

변기 주위의 불길이 아까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불길이... 점점 세지는 것 같죠?”

 

“당신도 느꼈어? 아마 쉽게 꺼지진 않을 것 같은데.”

 

선택의 시간은 극히 짧았다.

‘손’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불길은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인 오일은 변기 앞에 있다.

 

“조장, 뭐 이런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저기 한 번 다녀올게요. 그러니, 우리 마누라 좀 부탁합니
다.”

 

조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발목을 팔로 감았다.

 

“조심해. 혹시 모르니까 물이나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가라고.”

 

그 말과 동시에 화장실 오른 쪽 벽면에 달려 있는 샤워기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불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냉큼 달려가 샤워기를 붙잡았다.

 

-촤아아아아

 

하지만 물을 틀어본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줄기가 너무 약했던 것이다.

이걸로 불을 끄려면 천만년은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약한 물줄기를 몸 이 곳 저 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핏물들이 잔뜩 흘러내려간다.

 

“아 푸!!! 시원하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대한 물을 적신 나는 변기 앞을 바라보았다.

행여 라도 오일 통이 불에 타 버렸으면 큰일이다.

 

“이봐! 거기 시커먼 ‘손’ 밑에 그거 아닌가?”

 

조장의 목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시커멓게 탄 ‘손’ 밑으로 허연 물체가 하나 보였다.

나는 그 즉시 뛰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길이 닿는다.

물에 젖어있는 걸 감안해도 무척이나 뜨겁다.

왼 팔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시커먼 ‘손’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밑으로 오일 통이 보인다.

다급하게 오른 손으로 ‘손’을 잡아 옆으로 치우고 오일 통을 집으려는데,

 

-꿈틀

 

“제기랄 뭐야! 움직여!?”

 

다 타버린 줄만 알았던 ‘손’에서 움직임이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염려와는 달리 그 움직임은 매우 미미했다.

간신히 손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정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오일 통을 집었다.

그리고 황급히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나가려는데,

 

-촤아아아아

 

이 소리는?

깜짝 놀라 뒤를 보자 시뻘건 ‘손’이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손’이 뒷머리를 스치는 느낌이 든다.

최초의 ‘손’.

변기에 있던 ‘손’이 분명했다.

 

“어서 몸을 던져!!”

 

조장의 소리가 들려온다.

 

“하압!!!”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몸을 던졌다.

 

-콰악

 

새끼발가락 쪽에 통증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손’에게 붙잡힌 모양이다.

 

-콰당

 

다행이 불길에서는 벗어났지만,

 

“크으으윽...”

 

발에서 큰 통증이 느껴졌다.

앉은 채로 발을 살펴보자, 역시나 새끼발가락에 살점이 뜯어져 나간 게 보였다.

어쨌든 오일 통은 가져왔다.

통 여기저기 검은 그을음이 보였지만, 오일이 새거나 하진 않았다.

‘손’ 밑에 깔려서 그나마 불길에 보호를 받은 것 같았다.

남은 양은 3분의 1가량,

많지 않았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조장. 라이터, 라이터는 어디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이 또 있었다.

설마 또 변기라고 하진 않겠지?

 

“글쎄. 라이터는 자네 마누라가 계속 가지고 있었으니...아마 변..”

 

조장의 말에 점점 울상이 되어가던 중,

 

“나한테 있어 라이터.”

 

아내의 말이 들려왔다.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조금은 안정을 찾은 모양이었다.

 

“라이터, 라이터 가지고 있다고?”

 

“응. 주머니에 있어 잠깐만...”

 

아내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바지 주머니를 뒤적뒤적 찾기 시작했다.

 

“자. 라이터... 자기야.”

 

“응?”

 

“우리... 살 수 있는 거지?”

 

“...살, 살 수 있어! 나만 믿으라고!!”

 

라이터를 건 내주는 아내의 눈이 몹시 애처롭다.

 

“주희야.”

 

“...응.”

 

“나 여기서 나가면...”

 

“...응.”

 

“...정말 술 안 마실게.”

 

“...풋...”

 

아내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번엔 조장을 쳐다보았다.

 

“조장... 일단 제가 부축을 할 테니 팔 좀 줄래요?”

 

조장은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젓는다.

 

“조장! 시간이 없어요. ‘손’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단 말예요!”

 

“내 걱정 말고. 둘이라도 어서 가.”

 

“....예?”

 

나는 조장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까 까지만 해도 제일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사람이 조장 아닌가.

 

“이 다리로 저길 뚫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손’에 잡혀 죽을 바에는 여기 있는 게 나아.”

 

“......."

 

맞는 말이었다.

조장을 부축한 채 이곳을 뚫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를 두고 간다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었다.

 

“어서 가! 계속 머뭇거리면 업어달라고 할 걸세!!”

 

“맥...”

 

“응?”

 

“매...맥주!! 여기서 나가면 시원한 생맥주 먹기로 했잖아요!”

 

“응 그랬지.”

 

“나 혼자 먹으라는 거예요?”

 

“하하하. 내가 꼭 죽을 것처럼 말하네. 밖에 나가면, 경찰이든 뭐든 좋으니까. 나 구하러 꼭 돌아오라고.
꼭!”

 

여기 있으면 ‘손’으로 부터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불길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조장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서 가. 당신들이 어서 가야 나도 살 확률이 높아질 거 아냐!”

 

조장이 소리친다.

 

“제기랄 알았다고요. 돌아 왔을 때 죽어 있으면, 평생 저주할겁니다!”

 

-푸아악!

 

이번엔 바닥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조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향해 윙크를 한 번 하더니 화장실 안쪽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장이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

 

“걸을 수 있지? 이제 우리 둘 뿐이야.”

 

아내는 사뭇 장엄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 걸음.

지옥 같았던 화장실에서 빠져 나와,

 

우리는 또 다른 지옥으로의 한 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화장실에서 현관까지는 불과 열 걸음 정도면 닿는 거리였다.

하지만 벽에 있는 ‘손’이 문제였다.

최단거리로 가려면 벽에 붙어야 되는데,

그러다간 ‘손’에게 잡힐게 뻔했다.

결국 손의 사정범위를 최대한 계산해서라도 안쪽으로 빙 돌아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거리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천장에 있는 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말 잘 들어.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걸어야 해. 길이를 숨기고 있을 지도 몰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간과의 대가는 화장실에서 톡톡히 당한바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벽에서 떨어져서 걸어야 해. 빙 돈다고 생각하면서.”

 

내 말에 아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꼭 여길 빠져 나가자”

 

말은 쉽게 했지만 무작정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닥에 있는 ‘손’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뿐이지,

그 자체로만 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싱크대의 아랫부분과,

그 바로 앞에 있는 식탁,

그리고 싱크대 오른 쪽 끝에 위치한 냉장고 주변에 손 분포가 높았다.

 

“주희야 잘 들어. 저 식탁, 싱크대, 냉장고 밑에 손이 제일 많거든? 저곳들만 잘 피하면 될 것 같아.”

 

듬성듬성 솟아 있는데다가 특정 공간에 밀집 되어 있기 때문에,

잘만 피해가면 소수의 ‘손’만 상대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손의 길이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식탁과, 냉장고, 싱크대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뒤집어진 ‘3’의 형태로 방을 걷는다면 현관 까지는 약 이십에서 이십오 걸음 정도.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을 가정해도 삼십 걸음 안에는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살며시 아내의 어깨위로 손을 얹는다.

 

“일단 뜨거운 맛 좀 보여줘야겠지?”

 

이상적인 루트라면 우리와 마주칠 ‘손’의 수는,

숨겨진 길이를 감안해도 5개 정도였다.

저 ‘손’들에 약하게나마 불을 붙여 놓으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일 뚜껑을 열고 통을 한 번 흔들어본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잠깐만.”

 

아내가 내 손을 붙잡았다.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한 채로였다.

 

“응? 왜?”

 

“뿌린 다음에 불은 어떻게 붙이려고?”

 

“그거야 라이터로...”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손가락 마디만한 불줄기를 오일이 묻은 부위에 일일이 갖다 대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내가 먼저 '손'에게 당할 게 뻔했다.

 

“아.. 라이터로 불붙이는 게 힘들겠구나.”

 

“응. 그리고 베이비오일이라 그런지 불도 그렇게 잘 붙지가 않더라고.”

 

“그렇다면 가연성도 떨어진다는 말이네...”

 

오일에 관한 것만큼은 아내의 의견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손’과 문에 불을 붙여봤던 경험자니까.

 

“자기, 상의 좀 벗어봐”

 

“으, 응? 아...그래 알았어”

 

얼떨결에 대답하고 옷을 벗어 아내에게 건 낸다.

물과 피에 절어,

옷이라기보다는 걸레에 가까웠다.

아내는 내 상의를 손에 쥐고 이리 저리살피다가 끝부분만 돌돌 말기 시작했다.

양 손으로, 말린 부분을 몇 초간 꾹 눌렀다가 떼고는,

말린 부분이 돌출 되도록 옷의 끝자락을 붙잡고,

채찍 치듯 팔을 휘두른다.

축축한 옷이 바닥을 때리니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가 튀어 오른다.

 

“불이 잘 붙을지 모르겠네. 자기야 오일.”

 

멍하니 아내를 바라보다가,

 

“어? 어 그래 여기 있어 오일.”

 

순간 흠칫하며 반응하는 나.

아내가 방금 전까지와 갑자기 달라진 느낌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침착하게 ‘손’과의 대적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저...기 근데 주희야. 겁나지 않아? 괜찮아?”

 

아내는 잠시 나를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겁나고 두려워. 그런데 조금 흥분돼.”

 

흥분이라.

다양한 종류의 흥분이 있다.

화남, 기쁨, 슬픔, 즐거움.

지금 아내가 말 하는 흥분은 어떤 종류의 흥분을 말 하는 걸까.

아내는 말을 마치고 뚜껑이 열린 오일 통을 옷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집중하는 눈빛으로 최대한 가느다란 줄기를 만들며 동그랗게 말린 부분을 적시기 시작했다.

 

“흥분 된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내는 말없이 옷을 적시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괜찮은 거지? 아까 전에 ‘손’한테 잡히면서 무슨 일 없던 거지?”

 

아내의 발목에 찍혀있던 ‘손’자국이 떠올랐다.

그리고 민혁이 당한 의문의 폭발도 떠올랐다.

 

“그냥 그런 거 잊잖아. 묘한 기대감이라고 할까? 우리 결혼하고 많이 싸웠는데 이렇게나마 서로의 소중함
도 느끼고 말이야.”

 

나도 ‘손’에게 수차례나 당했지만 아직까지 별 이상은 없었다.

괜한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없어지진 않았다.

 

“자기야 여기 불 좀 붙여줘.”

 

아내가 오일로 적신 둥근 부분을 나에게 들이댄다.

 

“어? 어어. 그래 잠깐만.”

 

-찰칵

 

-취이이.....화륵, 화르륵

 

불이 붙는 텀이 약간 있었지만 명색이 오일답게 이내 커다란 불덩이가 생겼다.

 

“주희야. 위험하니까 그거 이제 나한테 줘.”

 

아내는 대답 없이 옷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아 위, 위험...”

 

“자기야! 오일 뿌려!”

 

아내가 오일을 건 내며 소리쳤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서둘러 오일을 돌려받았다.

그리고는 비스듬히 기울여 최대한 곳곳에 닿을 수 있게 흩뿌렸다.

 

-촤아아아

 

오일이 닿을 때마다 ‘손’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선처럼 꿈틀 거린다.

나는 그렇게 남은 양의 반 정도를 뿌렸다.

 

“이정도면 됐겠지! 주희야 그거 나한테 줘! 어서!”

 

“내 뒤로 물러서!”

 

아내는 짧은 외침과 함께,

내 상의로 만든 불 채찍을 바닥에 휘두르기 시작한다.

 

-철썩, 화르륵!

 

방 곳곳 흩뿌려진 오일마다 차례로 불이 붙기 시작한다.

 

“물기가 없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불이 더 잘 붙네!”

 

아내가 계속 팔을 휘두르며 말 했다.

불은 ‘손’들에게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인 모양이었다.

제대로 불이 붙은 ‘손’ 몇 몇은,

엄청난 속도로 부르르 떨면서 그 고통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염산보다 훨씬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자기야 오일을 조금만 더 뿌려봐. 잘 하면 이것만으로도 몰살시킬 수 있겠어.”

 

아내의 목소리에 말 그대로의 흥분이 느껴졌다.

 

“어? 그, 그래 알았어. 조, 조금 더 뿌리자.”

 

정신없이 팔을 휘두르는 아내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입 꼬리가 약간 들려있는 게 보인다.

난 아내가 말한 흥분의 정체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촤아아아아

 

이번에는 우리가 가야할 루트를 중심으로 오일을 뿌렸다.

 

“자기야. 거긴 별로 없잖아. 벽이나 천장 쪽으로 뿌리라고.”

 

“응? 무슨 소리야. 지금 여기 있는 ‘손’ 전체를 다 상대하겠다는 거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이것만으로도 몰살시킬 수 있겠다고. 어서 뿌려. 불 꺼지겠다.”

 

아내의 이마에서 땀이 송글 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내가 바란 것은 탈출로의 확보였다.

그런데 아내는 온 사방에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더 멀리까지 닿게 하기 위해 점점 앞으로 걸음을 떼고 있었는데,

‘손’들이 아내의 발을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집은 불바다가 되고, 아내까지 붙잡힐 지경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아내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만둬! 지금 집 전체를 태워버릴 셈이야? 우리도 못 나간다고 그럼!”

 

아내는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팔을 움직였다.

 

“그만! 이제 충분해!”

 

휘두르는 아내의 팔을 움켜잡았다.

가냘픈 팔에 애처로운 힘줄이 느껴진다.

 

“주희야. 내 말 들어. 이 손 놔!”

 

나는 다급하게 아내의 손에서 옷을 빼앗았다.

그리고 바닥에 던진 채 맨발인 것도 잊고 옷을 밟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불에 타들어가는 느낌.

하지만 나는 꺼질 때까지 밟고 또 밟았다.

 

“하아..하아...”

 

아내의 격해진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아내의 허리를 팔로 감은 상태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으로 붙은 불이 점점 집안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손’때문이 아니라 불 때문에 죽을 판국이었다.

하지만 불에 데여 화상을 입더라도 나갈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다행히 적어도 우리가 상대할 ‘손’들에는 모두 불이 붙어 있었다.

 

“주희야. 지금이야 어서 가자!”

 

“.......”

 

“주희야? 안 들려?”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순간 할 말을 잊고 만다.

왜냐하면,

 

아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한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주... 주희야! 정신 차려! 주, 주희야!”

 

아내는 퉁퉁 부운 얼굴로 멍 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붙잡고 계속 흔드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차려!! 제발!!”

 

순간 아내의 눈이 살짝 떨려온다.

 

“어... 어? 나 잠깐 정신이 없었나 봐.”

 

아내의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괜찮아? 이리와. 등에 업혀.”

 

나는 아내를 향해 등을 보이며 쭈그려 앉았다.

 

“아, 아니야. 나를 업고 여길 어떻게 나가려고 그래. 내가 조금 어떻게 됐었나봐. 괜찮아.”

 

아내가 잠깐씩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마쳤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불은 삽시간에 번지고 있었고,

이미 ‘손’ 이상으로 무서워진 상태였다.

 

“어서 가자. 내 손 잡아!”

 

아내의 손을 잡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허리를 굽히고 뛰기 시작했다.

 

-콰아아악

 

거실 한 가운데,

그러니까 현관까지는 반 정도 남은 거리에서 ‘손’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주희야! 밟아!”

 

나는 남은 한 발로, 아내는 두 발로,

내 발목을 잡은 ‘손’을 밟기 시작했다.

이미 새카맣게 타 올라 쥐는 힘부터가 영 아니었다.

 

-콱 콱 콱 콱! 

 

하지만 힘을 잃어도 역시 ‘손’은 ‘손’,

있는 힘을 다해 몇 번이나 밟았는데 이제야 손가락이 조금씩 들리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불은 점점 번지고 있었다.

 

“제기랄... 놔! 죽어! 씨팔!!”

 

그렇게 한참을 밟자,

 

-파악

 

순간적으로 발목을 잡은 ‘손’이 파악 하고 펴졌다.

붙잡힌 발목 언저리가 욱신 거려온다.

하지만 뛰어야했다.

 

“놨어! 뛰어 뛰어!!”

 

다행인건,

불에 타던 ‘손’들이 하나, 둘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고,

큰일인건,

불이 현관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콰아

 

현관 바로 앞에서 ‘손’에 또 발목을 잡힌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약한 악력.

 

“놔! 놓으라고!!”

 

나는 잡힌 발을 마구 흔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손’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 발목을 놓고 만다.

 

“주희야, 주희야! 다왔어! 다왔다구! 주희야?”

 

아내가 또 대답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보다 훨씬 얼굴이 부은 아내가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급하게 현관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앗 뜨거!!!!”

 

엄청난 뜨거움.

쇠로 된 손잡이가 불에 달궈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만 돌리면,

이것만 돌리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손잡이를 붙잡았다.

 

“으아아아악!!! 씨팔!!!!!!”

 

손잡이를 붙잡은 내 손에서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나온다.

3도화상 정도는 각오해야 하겠지.

조금씩 손잡이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극심한 통증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끼이이익

 

“됐어! 됐어!! 제기랄! 나갈 수 있어!”

 

그 순간,

 

-콰아아악!

 

손에게 붙잡혔다.

놀랍게도 이번엔 머리였다.

잠시 손잡이에만 정신이 팔려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천장의 ‘손’은 아직도 쌩쌩했는지 쥐는 힘이 굉장했다.

나는 조금씩 몸이 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 해 문을 밀었다.

 

-끼익

 

아주 조금,

문이 열렸다.

 

“끄아아아아, 주희야! 으아악! 주희야! 너라도 나가! 어서!”

 

하지만 아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극심한 통증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차츰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활활 거리는 불 소리만 귀에 박히기 시작한다.

 

-화르륵

 

..........

 

 

 

 


..........

 

“으아아아악!!”

 

정신이 들었다.

잠시 멍 하니 앞을 바라보는 나.

 

“여긴... 어디지?”

 

-뚜...뚜...뚜

 

일정한 기계음.

마치 심박을 제고 있는 것 같은데.

고개를 왼 쪽으로 돌리니 역시 심박기가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 몸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하얀 옷.

그리고 오른 손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병원, 병원인가? 윽, 으으윽.”

 

갑자기 온 몸이 아파온다.

극심한 통증이었다.

다급하게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 정신이 좀 드셨..? 아! 김간호사 진통제 가져와!”

 

흰 가운을 입은 단발머리의 여의사였다.

진통제를 받고는 내 팔에 주사를 놓는다.

 

“윽”

 

순간적인 따가움.

하지만 온 몸을 지배하던 통증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내.. 내가 어떻게 된 거요?”

 

차트를 넘기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 거리고 있었다.

 

“음... 이상하단 말이야. 화상만 입어야 정상인데...”

 

의사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차트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봐요. 대답 좀 해줘요.”

 

“아. 환자분 거의 하루 종일 누워 계셨어요. 오전에 병원에 오셨는데. 보세요. 지금 컴컴하죠?”

 

“아, 아니. 그런데 어떻게 내가 병원에...”

 

“뭐 구사일생이었죠. 조금만 늦었으면 두 분 다 화재로 돌아가실 뻔 하셨어요. 소방대원들한테 감사할
일이죠.”

 

두 분이란 것은,

 

“아! 제 아내, 제 아내는 어떻게 됐죠?”

 

“걱정 마세요. 아내는 무사하니까요.”

 

“무사하다고요? 얼굴, 얼굴은 괜찮습니까? 퉁퉁 붓지 않았어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예, 심각한 건 아니었어요. 붓기도 많이 빠졌답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의사는 나를 향해 살짝 미소 짓고는 몸을 돌려 간호사를 바라본다

 

“저 분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편이니까 잠시 여기 있으면서 체크 계속해줘.”

 

“예 그럴게요.”

 

“저 그럼 나가볼게요. 필요한 일 있으면 간호사한테 말씀 하시구요.”

 

의사가 문을 열고 나갔다.

살짝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나 말고도 여러 환자들이 더 있었는데 하나같이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큰일 날 뻔 하셨어요. 아내 분 홀몸도 아니시던데.”

 

잠시 멍하니 주위를 살피다가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돌린다.

백의의 천사답게 환한 미소가 눈에 띄었다.

 

“저... 여기가 몇 호실인가요?”

 

“아 여기는 527호에요.”

 

“제 아내는, 아내는 어디에 있죠?”

 

“부인 분께서는 508호에 있답니다. 주무시고 계세요. 지금 시간이 벌써 새벽 2시네요.”

 

그 말을 하면서 간호사도 피곤했는지 눈가를 손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제 아내가 임신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에이 딱 보면 알죠. 아기가 어찌나 발로 차던지. 아주 건강한 아기가 나올 것...”

 

“....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간호사도 나의 되물음이 의아했는지 웃는 얼굴로 고개만 갸웃하고 있었다.

 

“지금 발로 찼다고 했습니까?”

 

“예? 아아. 부인 분 배 안 만져 보셨어요? 후훗 임신 5개월쯤 넘으면 배에서 아기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거
든요. 그걸 발로 찬다고 말 하는 거에요.”

 

머리가 띵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아내는 아직 임신한지 1개월도 안 됐는데!”

 

내 말을 들은 간호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거의 만삭은 돼 보였는데요? 그럴 리가...”

 

-덜컥! 쿠웅!

 

거칠게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간호사! 김 간호사!!”

 

아까 전의 그 의사였다.

 

“508호 김주희 환자. 어떻게 된 거야?”

 

아내의 이름이 들려왔다.

간호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일 있으세요? 지금 주무시고 계실 텐데.”

 

“환자가 사라졌어!”

 

“뭐라고요!?”

 

깜짝 놀란 간호사가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봐요! 지금 뭐라고 했소! 내 아내가 어떻게 된 거요!”

 

의사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저기 별일 없을 거예요. 잠깐 병실을 비우셨는데 화장실이라도 가신 걸 거예요.”

 

애써 나를 안정시키려는 의사.

하지만 아니었다.

아내가 화장실로 간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당신들. 도망...가.”

 

“....예?”

 

“도망가라고! 아니, 어서 경찰에 신고해!”

 

의사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죄송합니다. 아내 분은 저희가 반드시 찾도록 할 테니까요. 걱정 마시고 누워 계세요.”

 

“그게 아니야. 어서 도망가라고! ‘손’이야 ‘손’이 나온 거라고!”

 

의사가 내 이마에 손을 올린다.

 

“열이 조금 있으세요. 걱정 마시고 누우세요. 아내 분 찾는 데로 저희가 말씀 드릴게요.”

 

말을 마치고 의사도 문 쪽으로 급하게 몸을 움직인다.

‘손’, ‘손’이 분명했다.

아내의 배를 뚫고 나온 손이 아내를 끌고 병실을 나간 게 틀림없었다.

 

-덜컥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짜릿한 통증이 온 몸에 느껴진다.

 

“씨팔. 망할 놈의 ‘손’이 끝까지 고생시키는구나.”

 

오른팔에 꽂혀있는 링겔 바늘을 빼고,

가볍게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비틀 비틀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바닥에서 의사가 달리다 떨어뜨린 메스를 주웠다.

 

-꺄아아아악!

 

문 밖으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왜 나만 ‘손’에게 당하고 멀쩡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그런 생각은 잠시 젖혀 두기로 했다.

 

-타닥 타다다닥

 

-으악 으아아악!!

 

익숙한 소리들.

문이 열리면 난 또다시 전쟁을 시작해야한다.

지긋지긋한 ‘손’과의 전쟁을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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