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탐구했다.
탈레스는 세계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크세노파네스는 '흙'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물, 공기, 불, 흙 모두가 근원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들이지만, 이들이 살았던 시대가 2500년 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이 철학자들의 답변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던진 질문이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철학적 탐구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물, 공기, 불, 흙 같은 요소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일부 철학자들의 주장 중에는 그 의미조차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의 근원이 무한자(아페이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한자가 무엇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운데, 무한자는 물질을 초월한 어떤 개념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만물의 근원이 무한자라는 주장은, 물질적인 세계가 비물질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점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은 납득하기가 더 어렵다.
고대 철학에는 무한자보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물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또 다른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수(數)'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만물의 근원이 수라고 주장했다.
숫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므로 무한자보다는 이해하기 쉽지만, 숫자가 어떻게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보통 물질적인 것은 감각할 수 있고, 비물질적인 것은 감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논리를 수에 적용해 보자. 우리는 숫자 1을 적은 글자를 볼 수 있지만, 그것이 1이라는 수 자체를 보는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와 숫'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숫자일 뿐, 그것이 의미하는 수 자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피타고라스 학파는 만물의 근원이 수라고 주장했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 태어나 490년경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삶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확실한 사실은 많지 않다.
다만, 그가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이집트를 여행한 후, 마흔 살 무렵 이탈리아 크로토네에서 피타고라스 학파를 조직했다는 점은 신빙성이 있다.
이후 그의 추종자들은 기원전 5세기 남부 이탈리아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
만물의 근원은 수라는 주장은 피타고라스 개인보다는 피타고라스 학파 전체의 생각으로 여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를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 원리로 보았다.
단순히 수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 실제 요소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그것은 기하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을 지나던 중, 망치 소리에서 조화로운 음정을 발견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망치의 무게와 소리의 높이 사이에 일정한 비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1, 2, 3, 4라는 네 개의 정수가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이 형성되었고, 이 수들의 합인 10을 신성한 숫자로 여겼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러한 수의 조화가 음악뿐만 아니라 우주에서도 발견된다고 믿었다.
기원전 3세기의 신플라톤주의자인 이암블리코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상을 정리하며, 우주가 수로 이루어진 조화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천상의 음악 또는 우주의 조화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물질 세계가 점, 선, 면, 입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요소가 1, 2, 3, 4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물질 세계도 궁극적으로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점, 선, 면 같은 기하학적 개념이 물질적인 것인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을 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감각하는 것은 특정한 크기를 가진 물질일 뿐이다.
더 나아가 피타고라스가 죽은 후 그의 학파를 이끈 필롤라우스 같은 인물은 만물의 근원에 대해 다르게 설명했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파 전체가 수는 물질적이다 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수학과 과학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본다.
수학적 원리를 이용해 과학 이론을 정리하고, 실험 결과를 수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세계가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즉, 세계가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만 과학이 성립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러한 점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상은 플라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플라톤은 세계가 수학적으로 질서 있게 설계되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철학과 과학에서 수학의 중요성은 점차 약화되고, 논리학이 더 중시되었다.
그러나 17세기가 되면서 다시 수학이 과학의 중심이 되었고, 근대 과학 혁명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뉴턴,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같은 과학자들은 모두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다.
이처럼 피타고라스 학파가 주장한 우주의 조화라는 개념은 이후 과학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고, 근대 과학 혁명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수가 질서(양)라면, 부호와 연산은 그 질서를 변형하고 흐르게 만드는 힘(음)입니다.
부호는 수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연산은 수와 수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며, 이를 통해 변화와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마치 낮과 밤이 순환하듯, 수와 연산은 서로를 보완하며 우주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죠.
그래서 연결하고, 합체하고, 융합하고, 분리하고, 고뇌하고, 조정하고, 균형을 맞추고, 끝없이 순환합니다.
수를 통해 세상은 질서를 갖추고, 부호와 연산을 통해 그 질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죠.
마치 자연의 흐름처럼, 이 과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며 우주를 움직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