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라는 미드가 있다.
괴상한 섬에 불시착한 인물들. 괴상한 섬이니 이상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는데 그 중에서는 종종 인물들이 섬의 속삭임들 앞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꽤나 썰렁한 장면이다.
무슨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도 아니고 가지와 잎사귀들이 흔들리며 수런수런 한다.
그러면 인물들은 저게 무슨 소리냐며 곧잘 멘탈 붕괴에 휩싸이게 되는데 나는 명리를 생각하면 꼭 그런 장면, 그런 소름끼치는 순간들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되곤 한다.
명리는 대놓고 소리지르지 않는다.
분명한 소리로 눈 뜨라 부르지도 않는다. 그냥 계속 지들끼리 소근거리기 바쁘다.
이건 분명 내 머릿 속에 연출되고 있는 하나의 극본이며 드라마다.
난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역시, 동양학의 매력이란.
리딩 튜터 라는 영어 교재가 있었다.
입문부터 기초 중급 고급으로 한 단계씩 넘어가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내가 지금껏 배워왔던 공부들 예컨대, 정치학이면 정치학, 서양철학이면 서양철학 이런 것들도 비슷했다.
입문이 있고 기초 중급 고급의 과정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치 초등교육을 마치면 중등교육으로 그리고 고등교육으로 향해가듯이.
이러한 배움들에 노출되면서 내가 학문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이미지는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였다.
해당되는 수준의 책을 열심히 읽고 레벨을 밟아서 올라가면 되는 것이고 졸업할 때가 되면 해당 학문에 대한 수료증이 주어진다.
이런 교육 과정은 빡센 이들에겐 참 빡세지만 나름대로의 일관성과 체계를 갖춘 길이 있으니 어찌 보면 편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명리라는 걸 접하면서 내가 학문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기존의 이미지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이건 도무지 길이 없다.
오로지 스스로의 깨달음으로밖에 정진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교재는 또 얼마나 단촐한가.
흔히 삼대보서라고 일컫는 난강망, 적천수, 자평진전.
이게 전부이지는 않지만 거의 이 안에서 해결을 보려하게 되고 이 안에서 해결을 보게되는 것 같다.
한 번 읽고 넘어가면 다른 책을 찾게 되는 기존의 공부 방식과도 다르다.
명리의 교재라는 건 읽을 때마다 맛이 다르고 읽을 때마다 해당 학인의 수준을 반영한다.
어느 경지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열려 있으나 또 한편 어느 경지에 있는 누구에게도 닫혀 있다.
그러나 어느 경지에 있는 누구이든 직접적인 깨달음은 주진 않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어렴풋한 단초 같은 것을 제공한다. 세상에 이런 식의 공부 형태가 있다는 걸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이쯤에서 도출되는 명리 공부의 장점.
책값이 별로 안들어요. 10 만원이면 뒤집어 써요.
근데 한문은 진짜 짜증나요!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이란 것의 특성상 어느 정도 지식이 잡혀지기 시작하면 그 후부터는 정해진 길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오로지 스스로의 숙고와 정진으로 밀고 나가는 방법 밖에.
명리에 대한 어렴풋한 얼개를 그려놓고 나니 이제부턴 슬슬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단초들이 모이고 모여 지들끼리 반상회를 벌이는 것이다.
그것들은 혼란스럽고, 종종 롤리폴리한 멘탈 붕괴를 야기시키며, 어쩌면 아찔한 깨달음의 순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짧은 공부에 도저한 명리의 세계에 대하여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싶다.
그러나 속삭임들을 자동기술적으로 늘어놓는 두서 없는 글쓰기도 점점 질린다.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뭘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욕식삼원만법종인지 뭐신지에 대해서는 엄두도 나지 않으며, 깨달음은 고사하고 멘탈 붕괴의 자기 반영적 보고서가 되지 않을까 걱정마저 든다.
여전히 속삭임일 수밖에 없겠지만. 임금님 귀의 진실에 대하여 뭐라고 끊임없이 두런대는 광대한 명리의 대나무 숲을 향하여 다이소에서 막 구입한 깔때기를 들이대보는 심정으로.
네? 뭐라꼬요?
음. 역시 잘 안들려요~
롤리폴리 롤리롤리 폴리~
저도 역학 공부하면서, 어찌 공부를 해야하나 난감 하고 공부 안해본 티를 팍팍 내는구나 했거든여~~~ 근데 님글을 읽어보니 위안이 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