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사주명리학] 천간의 성질 총정리

[초보사주명리학] 천간의 성질 총정리

17 별자리 0 5,235 2020.08.03 15:34

 

甲 (천년묵은 소나무)


이제 드디어 목에서 갑으로 진입을 했습니다.

이렇게 접근해 갑니다. 그러니까 오행에서의 목이라고 하는 것을 더욱 자세하게 분류를 하는 것입니다. 기본은 목에다가 두고서 갑이라는 성질의 변화를 살펴 보는 것입니다. 원칙은 목이지만 작용은 전혀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정관념을 갖으신 벗님은 혼란이 전개 될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혼란이 되더라도 결국은 발전을 하겠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출발하시면 좋습니다.


갑은 시작입니다.

항상 시작을 알립니다.

기상나팔입니다.

언제나 일등을 해야 합니다.

이등은 멸망이라고 봅니다.

맨 처음에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갑일에 태어난 사람도 이런 특성을 갖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갑목으로 태어 난 이상 그는 평생을 갑목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나 숙명적 인가요?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그가 태어난 그 순간에 우주 공간에 가득한 갑목의 기운을 흡입하고 첫 호흡을 했을 테니까요.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주를 감정할 수 있겠습니까? (전생이야 있건 말건 일단 사주는 여기서 출발)


그래서 항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일등을 하지 않으면 인생은 실패작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일등을 해야한다. 일등 일등 ...

목의 기가 강한 우리 나라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일류의 병통이 많은지 이해가 가실까요? 일류대학을 가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재산, 시간, 노력, 인생.......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이런 현상이 목중에서도 갑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갑은 그래서 눈에 잘 뜨입니다. 마라톤에서도 갑은 일등을 합니다.

마지막에 들어 와서는 쓰러질 망정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립니다. 이것이 근성입니다. 근성은 선천성이거든요.


갑목은 己土를 좋아하고 戊土를 싫어 합니다.

기토는 습토이니까, 뿌리를 뻗기가 좋은데 무토는 딱딱한 메마른 산의 흙이라서 뿌리를 내리기가 나빠서 그렇다는군요. 그래서 산의 8부능선 이상의 갑목을 살펴보십시요. 갑목이라고는 해도 모두가 구불구불하고 나이만 먹었지 도무지 성장이 안됩니다. 그래서 갑목은 환경을 매우 중요시 합니다. 아마도 생각컨데.... 맹자 어머님도 갑목이었을 겁니다. 환경을 중요시한 맹자의 어머니였기에 세번이나 이사를 했습니다. 일류를 꿈꾸는 모두는 서울로 서울로 모입니다. 일류도 갑목이고, 환경을 중시하는 것도 갑목입니다. 서로는 공통분모입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7학군 8학군 하면서 무슨 큰 일이나 날듯이 설쳐댑니다. 물론 기본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갑목으로 태어난 벗님들은 기분이 상합니다. '이거 낭월이가 사람을 마구 무시하는거여 뭐여? 기분 나쁘게 말이여.....'

그러지 마십시요 어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초보님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다보니 조금 색깔을 선명하게 했을 뿐, 갑목이 나빠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甲에서 癸까지 중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갑목입니다.

이것이 五行 중에서도 목이 다른 4행과 다른 특이한 점이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생명체라는 말입니다. 화 토 금 수는 목과 다릅니다.

오직 목만 생명체의 형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연에서 정답을 구하면 크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목은 그렇게 자라나는 것이고 그래서 항상 활기와 생기가 있습니다. 사실 토나 금에서 생기를 느끼기에는 상당히 힘이 듭니다. (하긴- 자라나기는 한다는데..... 울진 성류굴의 종유석들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산꼭대기에 있는 소나무와 들판에 있는 소나무와 둘중에서 어느 것이 편안해 보이시는지...... 그래서 甲木은 할 수 없이 환경을 중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甲부터 癸까지 하면 우리 벗님들 모두가 한번 씩은 도마에 오르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바짝 긴장들 하십시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대로가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주 적는 방법을 몰라서 아직 자신의 일간이 무엇인지 모른다구요? 그런 분은 마음이 편하시겠군요. 그 대신 스릴도 없겠고....)


갑목은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열심으로 말한다면 갑목을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앞만 바라다 보고 달립니다. '걸으면 이미 늦다 뛰어라.'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 필시 성공을 하실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양면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번 좌절하면 쉽게 일어 나지를 못합니다. 꺽여버린 나무를 보셨습니까? 바로 이와 비슷합니다. 좌절하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엘리트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기업체의 젊은 인재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는 갑목을 느낍니다.

사실 천년묵은 소나무는 한번 꺾이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너무 위로 앞으로 자라는 데만 온 힘을 쏟다 보니까, 재기할 힘이 없습니다.

어느 일류 달리기 선수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 했을 때, 저는 갑목을 느낍니다.

브레이크를 밟고 서행을 하면서 사태를 살피는 차분함이 없습니다.

(브레이크는 오행이 금) 항상 서두릅니다. 우리 나라가 세계의 교통사고 우두머리를 장식하는 것도 어쩌면 이 갑목의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이것이 갑목의 구조입니다. 결코 우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이 나빠서 설명을 못할 수는 있을 망정,등산을 해도 갑목은 맨 선두를 갑니다. 그래서 얼른 정상에 올라서 '야 - 호 - '를 맨 처음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런 실험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등산을 가다가 두어 시간 걸어 갔을 때, 그 대열을 5등분으로 나누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선두에는 목이 많은가? 끝에는 수가 많은가? (아마도 수십 명이 되어야 겠지만) 한번 %를 내 보는 겁니다. 이것도 재미 있을 것 같군요.

나중에 성공을 하셔서 운전기사를 둘 때는 금일날 태어난 사람으로 구하십시요. 갑목은 아무래도 사고율이 높을 테니까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지요. 그래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강하는 것이 인생공부입니다.


죽을 때 까지 자라는 것이 갑목입니다.

은행나무, 잣나무, 소나무, 밤나무, 느티나무,등등 이런 것들이 갑목입니다. 이런 것들은 죽을 때까지 자랍니다. 자라다가 더 자라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갑목입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자라기만 합니다.

그리고 죽어도 갑목입니다. 갑목은 죽어도 자존심이 있어서 절대로 아래에 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높은 곳에 있습니다. 어디에 갑목이 있던가요? 그 갑목은 바로 대들보나 석까래가 되어서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의 사물 중에서 그 특성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것을 응용해서 공부를 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그래서 천년묵은 소나무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이해 하기가 쉽걸랑요.

우리 나라 사람이 갑목을 신주처럼 받듭니다. 시골에 가보면 대개의 역사가 있는 동네에는 어김없이 신목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온 동네를 다 덮을 듯이 웅장한 갑목을 보면서 우리 조상 님들은 자신과 동일시했는지도 모릅니다. 당산, 당신, 서낭당, 당나무, 등등 불리는 이름도 가지가지지만 결국 뜻은 한가지 뿐입니다.

갑목은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기문 하시는 분이 좋아하시겠네...) 그래서 엄지손가락이 아닙니까?


당 나무를 이야기 하다보니 생각나는 옛이야기가 있군요.

'장자'라는 책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잠시머리도 식힐 겸해서....

선생이 제자들과 천하를 주유하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돌아 다니던 중에 여름이었던지, 더위가 한창이었습니다. 어디에 쉬어 갈 만한 자리가 있을까 .... 하고 두리 번 거리다가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선생과 제자들은 모두 그 나무를 찾아갔습니다. 그 나무에는 이미 많은 행인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면서 나무의 공덕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당나무이니 신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하며 떠들석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은 아무 말도 없이 쉬다가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성질이 급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께서는 아까 큰 나무에서 쉴 적에 다들 한마디씩 하는데 잠자코 계셨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설명 좀 해 주십시요.""그래, 난 아까 가만히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나무에서 얻어먹고 사는 목신이 불안해 할까봐서 였다.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신이라고 되는 줄 알고 떠받들고 있는데, 내가 만약에 그 목신이 별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면 얼마나 나를 원망하겠느냐? 그리고 별것은 아니지만 조그만 동네를 지키는데는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자리에서 할만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내가 쓸데없이 목신을 나무랄 필요가 없어서 였느니라."선생과 제자들은 저물어 가는 석양을 길게 받으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갑목은 흙이 없으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흙을 굉장히 중하게 여깁니다. 갑일 날 태어난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갑목의 흙을 사주 말로는 재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갑목으로 태어난 사람은 항상 주머니에 엽전 석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적에도 동전 세닙은 가지고 갑니다.(우리 속담) 이것이 갑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석 구석에는 갑목의 흔적이 수두룩 합니다. 이제 우리 벗님들도 갑목의 사유방법을 알으셨겠지요?

항상 주변에서 자료를 구하시고 궁리하시다 보면 머지않아서 자신의 운명은 물론이고, 가족 애인 나아가서는 우리 나라의 운명도 감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도인이지요. 밥을 안 먹고 구름을 타고 다니고 남의 일을 척척 예언한대서 도인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갑목을 마무리 합니다. 그러나 갑목을 모두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다음의 갑목 이야기는 사주 적는 법을 배우고 난 다음에 실질적인 갑목, 즉 1월에 태어난 갑목, 2월에 태어난 갑목, 5월에 태어난 갑목, ........ 12월에 태어난 갑목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만약에 지금 이 이야기를 한다면 일대 혼동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립니다. 강태공이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듯이, 저도 우리 벗님들의 눈이 영글어 질 때를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궁금한 문제를 많이 궁리하시기 바랍니다.


이 장에서는 갑목의 특성만 이해하시면 성공입니다. 다른 9간과 갑목만의 특성을 이해하면 좋습니다. 이거 성질급한 갑목회원님들 기다리다가 숨이 넘어가는 것이나 아닌지... 하하







초보명리학 - 乙 (골프장의 잔디들)


갑목을 이해하고 나면, 을목은 비교적 쉽습니다.

음의 나무니까, 어떤 것을 음의 나무라고 이름하는지 살펴보고 갑목과 비교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형상을 설명드립니다.


을목은 곡식이고, 약초이며, 넝쿨식물입니다.


수수, 조, 벼, 보리, 콩, 고구마, 칡, 등, 머루, 다래, 금잔디, ....대체로 이런 종류를 乙木으로 취급합니다. 나무는 나문데 죽을 때까지 자라지 않는 나무? 이렇게 정의를 해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없는 것은 넝쿨나무는 죽을 때까지 자라기에 한 마디로 단정할 수가 없군요..... 대체로 그렇다고 보아서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乙木으로 태어난 사람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요?우리 벗님들......설명을 읽어보시기 전에 한 번 깊이 생각을 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위의 곡식종류를 근거삼아서 사람의 성격을 추리해 보는 겁니다. ........ 어렵긴 어렵죠?

꼭 정답을 내서 선생한테 올 백을 맞으려니까 어렵지 그냥 재미로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다고 봅니다. 여기는 채점이 없습니다. 그냥 많은 생각을 하신 학생이 백점입니다. 이치에 합당하면 더욱 좋을 뿐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을목은 이해 타산이 빠릅니다. 계산해 봐서 손해가 날 것이면 거절을 합니다. 장사를 하는 놈이 남길려고 하지 손해보고 적자나는 일을 무엇하러 하겠습니까? 을목을 생각하면 일본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 기가 막힌 상술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담북장 까지도 일본 상품으로 세계에 파는 그 기술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전쟁을(6.25) 겪느리고 생사의 존망에 서 있을 때도 그 사람들은 빈틈없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데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저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물질적이라서 인간미가 없습니다. 항상 사는 것이 돈이 전부인양 합니다. 자린고비가 을목입니다. 수전노는 을목입니다. 샤일록이 을목입니다. 우선 돈이 있어야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 과시를 합니다. 이것이 극단적인 을목입니다.

그러니까, 극단적이란 말은 사주의 구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드립니다.


을목은 저같이 생기는 것 없이 많은 시간을 전화세 낭비해가면서 게시판에 글쓰고 하는 친구를 가장 멍청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속이 없는 짓을 하고 있으니까요. 을목은 절대로 이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영리하거든요. 그래서 저와는 맞지를 않습니다.(저는 일간이 무엇일까요? .. 아직은 이른 질문인가?.....)


을목은 환경 적응력이 굉장합니다. 어디를 가던지 자신이 맨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있습니다. 잔디를 보십시요. 높은데나 낮은데나 메마른데나 ...... 물이 있거나 없거나.... 가리지를 않습니다. 이 말은 농사를 지어 보신분이 실감이 나실 겁니다. 뽑아도 뽑아도 끝없이 돋아나는 잡초들..... 지겨운 잡초들.......

그리고 이용할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합니다. 피라밋 상술이라던가요? 이것도 을목이 연구해낸 방법입니다. 갑목은 그런 발상은 하지 않습니다. 칡넝쿨을 보십시요. 주변에 갑목이 있으면 얼씨구나 합니다. 갑목이 죽거나 말거나,(결국 갑목은 죽습니다) 그냥 사정없이 감고 올라 갑니다. 이것이 을목의 특성입니다. 깊은 설산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먹을 것이 다 떨어지면 맨처음 을목이 시체를 먹을 연구를 합니다. 여기서 죽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줄기차게 살아 남을 려고 합니다. 그러니 스파이로는 적합지가 못합니다. 스파이가 적국에서 들통이 나면 고문은 기본인데..... 그 고문을 견디면서 목숨과 흥정을 하려고 할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스파이를 고를려면 辛金을 택합니다. 신금은 무엇보다도 피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피를 두려워 않기 때문에 을목이 가장 겁을 냅니다. 그놈에게 걸리면 어쩌면 뼈도 못 추릴지도 몰라 ... 하고 몸을 도사립니다. 그러니까 강도짓을 할려면 을목의 집을 노리십시요. 그러면 두가지의 이익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을목은 항상 재물을 집에다 쌓아 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금고에는 항상 최대한의 현금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을목은 협박에 약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증거만 남기지 않는다면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서 칼을 방바닥에 '콱'꼿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살아남고싶은 욕망이 발동을 해서 금고는 자연스럽게 열리게 됩니다. (이런 강의를 해도 안잡아가나?)

을목은 생활력입니다. 지금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내심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을목은 전혀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사람은 을목입니다. 혼자 힘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면 언제라도 어제의 적이라도 오늘은 동지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판을 보면 누가 살아 남는지 알수 있습니다. 저혼자 잘나서는 아무 영양가가 없습니다. 오직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성패가 달렸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자가 항상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의리니 혈맹이니 하는 것은 모두 말라비틀어진 개뼈다귀일 뿐입니다. 이것이 을목의 인생관입니다.

누구던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융통성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처자식 굶기지 않습니다. 너무 무능한것도 자랑이 못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혼자서 선비입네 하고 '공자왈. 맹자왈.'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남들이 존경하기는 고사하고 무능하다고 무시하기가 십상입니다. 우리는 을목의 기운을 10%만 나눠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갑목의 기운도 필요 하지요? 그러면 갑목의 기운도 10%만 받읍시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만. 지나치지만 않으면 됩니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이 병입니다. 경쟁심도 적당히 있어야 하겠고, 재물을 소중히 하는 마음도 적당히 있어야 합니다. 이 적당히란 것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요. 여기에 조화의 묘리가 있답니다.






초보명리학 - 丙 (장팔사모창 휘날리는 장비)


맹렬하다는 낱말은 丙火를 위해서 만들어 두었습니다.

원래가 불은 물을 두려워 하는 법이지만 병화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병화의 사전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오직 맹렬함 그 자체입니다. 장비가 바로 병화를 닮았습니다. 맹렬한 저돌적 공격성은 영락없는 장비 익덕입니다. 비슷한 장수로는 화웅이 있습니다. 둘이는 막상막하입니다. 한치도 양보란것을 모릅니다. 이들은 병화의 화신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잘못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제멋대로 자란 장비의 수염은 불을 보는듯 합니다. 그것도 맹렬한 병화를 보는듯 합니다.


데모대의 선봉은 으례히 병화가 전담합니다.

그래야 일이 됩니다. 갑목은 지기가 싫지만, 맹렬함이 없어서 병화에게 밀립니다. 오죽하면 불이 타는듯 하다고 합니까? 언제나 혁신, 혁명,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병화입니다. 병화의 사전에는 남을 따르는 모방이 없습니다. 개성 오직 개성으로 죽고 사는 개성의 인생입니다. 자칫 치열해지면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서슴지 않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서 글을 씁니다. '타도하자 ㅇㅇㅇㅇ' 그리고는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서 북을 치면서 나갑니다. 뒤만 돌아다 봐도 이미 배신자라고 병화는 생각합니다.

저의 도반 중에 ㅇㅇ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한번은 창비사의 책을 들고 와서 파쇼집단을 타도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더라구요. 저야 원체가 시대감각이 둔하다 보니... 이 친구가 아무래도 북조선의 물이 들었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관심이 없는 분야인지라... 못들은 척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열변을 토하던 이 친구가 갑자기 '요즘 사주공부 한다면서..?'하고는 자기에게 감옥살이 있는지 궁금하니 한 번 봐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주를 봐 주려고 적어 보았더니, 글쎄 이친구가 바로 병화지 뭐예요. 그래서 병화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박히게 되었습니다.


위의 글에서 병화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병화만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실수가 많습니다.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설치다 보니, 항상 그의 삶은 실수로 얼룩이 져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후회를 잘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빨라도 늦은것이 후회라지 않습니까? 그것도 잠시 뿐이고 또 일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참으로 못말리는 병화입니다.


장점은 용기입니다. 이 용기야 말로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산입니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15년을 사주 공부를 해도 친구의 신수 하나도 봐 줄수가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혹시 틀리면 어쩌나.... 비웃으면 어쩌나..... 그래서 책만 책만 봅니다. 그래도 문제입니다. 책마다 주장이 틀리니 이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를 몰라서 헤맵니다. 그래서 사주를 적어 놓고 보면 모두가 자기가 용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주장은 각각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다 용신을 삼고 봅니다. 이 용기없는 사람이 보는 사주는 이렇습니다.

" 이 사주는 좀 특이합니다." 로 시작합니다. 그래야 만약에 틀리더라도 도망을 갈수가 있거든요.

" 화를 용했을 것도 같고, 수를 용했을 것도 같습니다. 이책에는 화를 써야 한다고 했고, 저책에는 수를 써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책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주로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갑갑합니다. 무슨 말을 하기는 하는데, 무엇을 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사주에 병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도무지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그런데 병화는 어떻습니까?

" 이 사주는 가물어서 물이 필요하구만."

이렇게 명확합니다. 감추고 숨길 것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시원시원 합니다. 맞고 틀리고는 나중 문제입니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 편합니다. 가령 잘 못보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어? 그러면 수가 용신이 아닌디...... 목이었구먼."

이 한마디로 그만입니다. 이미 그가 잘못 보았던 일은 잊어 버렸나 봅니다. 건망증이 심하걸랑요. 그래도 밉지가 않습니다. 불을 보듯이 투명하기 때문에, 항상 손해를 많이 봅니다. 혹시 벗님들 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신 분이 계시다면 지금부터 병화의 기운을 흡수해 보십시요. 그리고 당당하게 이야기 해주십시요.


'사주를 조금 배워보니까 무엇인가 이치가 있는 것은 같은데..... 꼭 꼬집어서 말을 하려니까 하나도 모르겠구먼...... 친구가 사주가 뭐냐고 물으면 좋은 것이라고 말은 해주고 싶은데..... 막상 무엇이 좋으냐고 한다면 ..... 글쎄..... 뭐라고 한다지...?' 이런 고민을 아마도 한두번씩은 해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고민 한번도 해보지 않고, 전문가 수준이 되겠다면...... 아마도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군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사주공부를 하다가 말고 중단 하겠습니까?

(이거 왕초보가 보면 도망가고 말겠는걸... '왕 초보'는, 저 - 아래로 가거라~~ 여긴 초보님 교실이니라~~ 하하)


우리 주변에서 성질이 불같은 사람을 종종 봅니다.

아마도 벗님들 주변에도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한번 살펴 보십시요.

한 번 성질이 나면 정말 무섭습니다. 물 불을 안가리고 설쳐대는 것이 흡사 선불맞은 산돼지와도 닮았습니다. 남편이 이지경의 성격이라면 그의 아내는 상당한 지혜를 갖어야 합니다.

우선 눈치를 싸-악 봐서 성질이 나서 설쳐 댈때는...., '아이고, 난 죽었습니다~'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상책입니다. (괜히 지 잘났다고 따콩 따콩 말대답이라도 하는 날에는 머리가 뽑히던지, 하다못해 냄비 뚜껑이라도 날아갑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면 스스로 불이 꺼집니다. 그러고 나면 그때서야 서서히 머리를 내밀고 '오냐~ 인자 다했나?'하고 역습을 하십시요.

이렇게 김빠진 다음의 역습은 거의가 성공합니다. 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남편도 적으로 보일때가 있거든요.


어쨋던 여기서는 병화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병화는 비교적 알기가 쉽습니다. 우선 눈에 확- 띄니까요.

그러면 오늘의 강의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열심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대화방에서라도 만나걸랑 질문을 많이 해주십시요.






초보명리학 - 丁 (이 한몸 다바쳐서 오직 그대를...)


丁火


정화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조용하게 미소를 지으며 반짝 반짝.

어두운 밤하늘의 별이 되어서

오늘도 님기다리는 큰애기를 위로합니다.


조용한 방안에서 소리도 없이

해맑은 조용한 발그레한 미소로

촛불이 되어서 비춰 줍니다.


깜박 깜박 외로운 등댓불되어

어둠을 헤메는 뱃길 나그네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희망 줍니다.


정화는 헌신이고 봉사이며 사랑입니다.

우리는 정화의 발견이래 이렇게도 편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명인 이라고 자처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공덕이 누구 때문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정화는 전혀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냥 모두가 편안 한것이 좋을 뿐입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연인들이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 합니다.

촛불을 켜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며 소원을 말합니다.

조용하게 커피를 마시며,강의 자료를 생각하는 낭월의 얼굴을 비춰줍니다.

정화는 우리 모두의 연인입니다.


정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화는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을 밝히는 불입니다. 그리고 심장도 정화입니다. 그래서 정화는 따뜻합니다. 정화만큼 남의 심정을 잘 헤아려 주는 사람도 드뭅니다. 커피 광고를 보면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그립다..'던가...? 그래서 따뜻한 커피한잔을 사먹으라는 말인가 본데..... 바로 그 커피한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정화 입니다. 남이 아파하는 것을 잘 헤아려 줍니다. 그래서 간호사를 닮았습니다. 아픈 환자는 항상 포근한 손길이 그립기만 하거든요.


충신이라고도 했습니다.

계백 장군은 정화의 화신입니다.

반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그야말로 충신입니다.

백지한장의 차이가 천지의 차이라고 할까요?

병화와 정화는 이렇게 분위기가 다릅니다. 불과 음과 양일 뿐인데도요. 그 작용은 이렇게 차이가 벌어 집니다. 그래서 병화는 얼른 알아보기가 쉬운데, 정화는 얼른 알아 보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낭월아 난 정화인데도, 성질이 불같은데...?"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마도 화기가 강한 정화인가 봅니다...하긴...

며칠전에 우리 벗님 한 분이 대화방에서 저랑 이야기 하시다가는 답답하니까 냅다 전화를 했습니다. 차라리 전화로 듣고 마는 것이 나을것 같았나 봅니다. 이렇게 급해지는 것도 정화입니다. (이 타이핑 실력은 왜 이리도 느린지...) 반대로 화기가 약하면 정화라도 우울증에 걸리겠군요....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십시요. 상황에 따라서 차이가 날 수는 항상 있습니다. 사실 전 국민을 5천만으로 잡아도 정화는 5백만이 되는데, 오백만의 정화가 모두 한가지라고는 도저히 말씀 할 수가 없겠습니다. 다만 정화는 이런 비슷한 특성을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 난단다 하는것을 이해합시다. 그런데 제가 본 수십명의 정화중에 한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냥두면 선비지만 건드리면 병화더라' 하는 것입니다.

건드리면 화기가 동하더군요. 그래서 정화는 건드리는 것을 싫어 합니다. 누군들 건드리는 것을 좋아 하겠냐구요..?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병화는 건드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 합니다. 사실 병화는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스스로 건드릴 일을 찾아 다니니까요.

요즘 저녁에 나오는 드라마에 '밥을 태우는 여자'라는거 있지요? (이 화상은 공부는 않고 맨날 ......) 거기에 나오는 두 형제들 말입니다. 형이 항상 못살게 굴지요..? 현재는 실업자 신세인.... 이 형이 바로 병화를 닮은 구석이 있어서요. 그리고 동생은 정화를 닮은 구석이 있구요. 건드리면 성질이 나지만 그래도 착한 동생이잖습니까? 저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일간(日干)알아 내기가 취미랍니다. 이 드라마 공부를 하다가 보니까, 사람을 상대 했을 때도. '그 사람의 일간이 무엇일까?'하고 궁리를 한답니다. 이 궁리를 하다 보면 적중률이 자꾸 높아 질겁니다. 이 공부는 영양가가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 벗님들도 이 십간의 강의가 마무리 되걸랑 어디 한번 친구들의 성격으로 일간을 알아 맞추는 게임 좀 해보십시요. 맞으면 스스로 십간의 소식에 놀랄 것이고 틀려고 아직 공부가 부족한갑다 하면 되니까 손해 볼일은 없으니까요.우선 자기 자신부터 재료를 삼아서요.


물질에서 한번 정화를 찾아 봅시다.

인간이 만든 불은 모두 정화라고 봐도 상관이 없습니다.

문명은 모두 정화라고 봅니다. 선비는 정화라고 봅니다.

전기, 전파, 학문, 이론, 공식, 구구단, 등은 정화라고 봅니다.

LPG LNG도 모두 정화입니다. 너무 광범위 해졌나요?

그러면 쉽게 하지요. 촛불이 정화입니다. 촛불에서 희생정신을 배운다던가요? 자기의 몸을 태워서 어둠을 밝힌다던가.....? 이것이 정화의 마음입니다. 오늘 밤에는 촛불을 켜두고 조용히 '丁火暝想'을 해보시기 권해 드립니다.







초보명리학 - 戊 (묵묵히 앉아 있는 지리산)


산!

태고적부터......

영겁이 다하도록......

그렇게,묵묵히

앉아 있다.....


이것이 다 입니다....

산은 이렇게 말없이 앉아서 묵묵히 오고 가는 것들을 관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은 믿음직 합니다. 묵묵하니까요.....

믿음직한 사람을 보면 '태산같다'고 말합니다. 그 태산은 戊土를 말합니다. 한국에는 지리산이 무토다운 산입니다.

산은 산이라도 모두가 표정이 다릅니다.

금강산은 산이지만, 빼어나기만 했지 묵직한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뽑내는기질(火氣)이 섞인 火山입니다. 그래서 묵직한 맛이 없습니다.

백두산은 우뚝합니다. 그래서 木山이라고 말을 합니다.

북한산은 돌산입니다.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순수한 土山은 지리산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산....

어디서 바라다 봐도 표정이 항상 그 모양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戊土라고 이름을 합니다.


이 지리산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무토로 태어난 사람은 고독합니다. 스스로 고독을 즐깁니다. 부모와 형제가 있어도 의논을 하기 보다는 혼자 고독을 짊어지고 끙끙대고 있습니다.

로댕은 무토일 것입니다. 그가 아니고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로댕만이 가능한 자신의 모델입니다. 항상 조각가는 자신의 모습을 만듭니다. 절에를 한번 가보십시요... 온갖 모양의 불상들을 보십시요. 모두가 다릅니다. 절대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만든 사람이 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불상을 제작하는 일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보통 보기에는 원만하게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도, 본인은 아직 잘 못되었다고 다시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러던 며칠후 이제 됐으니 한번 봐달라고 말하기에 정말 명품이 나왔나 보다.... 하고서 작업실로 가 봤더니..... 얼굴이 꼭 자기 자신을 닮아 있더군요.... 이것을 보고서 느꼈습니다.

'소설가는 자신을 모델로 글을 써야 생명력이 있고, 화가는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야 생명력이 있는 것이구나...... 조각가도 역시.....' 그래서 로댕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입니다.


다시 무토는 고독입니다.

표정이 없습니다. 까불락 거리고, 촐랑대는 것도 없습니다.

울고 불고 대성통곡도 없습니다. 그래서 알 수가 없습니다.

"넌 어째 일일이 시켜야 하누? 이그 답답혀..."

무토는 센스도 없고 눈치도 없습니다. 고지식합니다. 있는 그대로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그러니 종업원으로야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종업원으로는 '전혀 아니올시다' 입니다.

그래서 적성검사는 중요합니다. 그 자리에는 꼭 그 사람이라야만 되거든요. 무토는 그래서 종업원의 적성이 맞지를 않고, 그래서 또 고독해 집니다. 열사람이 모이면 그 중에 한 둘은 꼭 뒷자리나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일은 무토의 적성입니다. 참으로 편리하게 조물주가 만들어 두었습니다. 일행은 전혀 옷걱정을 할 것 없이 헤엄치고 놀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나 무토가 있으니까요.


그런 무토도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는 엄청 난리를 칩니다. 모아두고 모아두고 하다가는 어느날 한꺼번에 폭발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을 잃고 설칩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안볼듯이 10년 전 것 20년 전 것이 툭툭 불거져 나옵니다. 기억력도 좋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17년 전에 쌀 한되 꾸어다 먹고 갚지 못했던 것까지 나올 때면 후회가 막심합니다.'...이거 잘못 건드렸네....' 후회를 해봐야 이미 늦은 후회입니다. 그래서 무토는 건들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산을 깎아서 골프장을 만들어서 돈좀 벌어 보려다가 산사태를 만나서 전재산 날린 사장님도 많습니다. 산은 있는 그대로 두고서, 건드리지 않아야 이익이 있습니다. 그저 답답할 적에 혼자서 찾아 가면 좋습니다. 그러면 무토는 그 사람의 고민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런 것에 집착을 갖지마쇼... 그게 모두 환상이라오....' 이 한마디에 아프고 어려웠던 가슴들이 어루만져 집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무토를 잊어 버립니다.

그러다가는 또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다시 찾아 갑니다. 그래도 무토는 투덜대지를 않습니다. 사실 자주 찾아 와도 큰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너무나 가슴이 아픈 사람이 많아서 산도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의 방학을 선언했지요. '입산금지기간' 그래서 산도 약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무토는 교만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해를 받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건만 사람들은 제 멋대로 해석을 해서 말없이 않아 있으면 교만해서 그렇다고 단정을 해 버립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자로만 잴 수가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모두가 틀린 자신의 자로 남을 재려고 덤비니 인간세상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자는 천차 만별이어서 최소 생계비를 재는데 어떤 사람은 5만원을 재는데, 어떤 사람은 200만원을 잽니다. 그래놓고는 모두가 자기자가 표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래서 인간세상은 잠들 시간도 없습니다. 언제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빌린 자로 세상을 재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세가 왔어!"

석가님께 빌린 자로 세상을 재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법세상이여!"

공자님께 빌린 자로 세상을 재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어!"

저는 장자님께 빌린 자로 세상을 재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은 그런 대로 살만혀!"


토의 본성이 믿음(信)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토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상거래에는 신용을 으뜸으로 칩니다. 이 신용은 토의 정신입니다. 토중에서도 양의 토가 무토이니 당연히 여기서 자의 이야기를 할만 합니다. 자는 눈이 정확해야 합니다. 저울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이렇게 토를 이해 합니다. '토는 믿음이다'라고토는 할일없이 눈이 정확한지 틀린지나 계산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벗님들은 모두 토의 자를 하나씩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보명리학 - 己 (넓고 넓은 나주평야)


戊土가 산이라면, 己土는 들판입니다.

같은 토인데, 생긴 형상이 다르군요........

그래서 일명 옥토(沃土)라고도 부릅니다.

즉 사람이 가꾸고 먹거리를 심는 논이나 밭이라고 짐작 합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화가 인간이 만든 불이라고 했듯이, 기토는 인간이 가꾸는 대지로군요..... 乙木도 인간이 가꾸는 곡식이고......

여기서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다. '음은 인간과 관계가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장차 나올 辛金이나, 癸水도 아마 이런 뜻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아마도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 그럴상 싶습니다. 이렇게 알아 둡시다.


기토는 누가 좋아 할까요?

물론 나무들이 좋아 하지요. 특히 뿌리 뻗음을 굉장히 신경 쓰는 甲木은 기토를 무지 좋아합니다. 사실 갑목이 앞으로(위로) 나아갈 수 있는 것도 기토가 두둑하게 뿌리를 잡아 주어야 가능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갑목이 쓰러지고 말 수 밖에 없으니, 싫어 할래야 싫어 할 수가 없습니다. 산의 단단한 흙 보다야 기름지고 영양가 많은 옥토를 좋아하는 것은 매우 이치에 합당합니다.

그러면 乙木은 무토를 좋아 할까요?

아닙니다. 을목도 기토를 좋아합니다. 어느 식물이든 메마른 흙 보다는 기름진 흙을 좋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己土는 인기가 좋은 셈입니다. 누구나 좋아 하니까요......

갑목은 의지할 곳으로 본다면, 을목은 호구로 보겠지요.

乙木章에서 이야기 했지요? 저처럼 할일없이 하이텔이나 기웃거리면서 놀고 있는 친구를 우습게 본다고요....

그래서 을목은 장사를 해도 기토같이 한가한 친구들이 좋아할 그런 물건을 만듭니다. 을목이 생각해보기에는 만수무강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듯 싶은 것도 기토는 좋다고 사 주니까요...

시장를 한번 가보면 정말 쓸데 없는 물건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자니 만들기는 해도 속으로는 '멍청한 녀석들...'이라고 합니다. 그래가면서도 입에 침이 마르게 유혹을 하고, 또 합니다. 사실 기토는 충동구매에 약하거든요...


기토는 누구나 좋아 합니다. 병화의 고집도 기토에게는 약합니다. 혼자 열이 나서 펄펄 뛰어도 기토는 가만히 있습니다. 열이 삭아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토는 알고 있거든요. 얼마 가지 않아서 병화의 열기는 식어질 것 이란 것을....

무엇보다도 자기의 주장을 강력히 내 세우지 않으니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일수록 기토를 좋아합니다. 사실 자기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일수록 자기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은 얌전히 앉아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좋을 수 밖에요. 말끝마다 토를 다는 사람보다야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듣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이 좋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면 기토는 자기 주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흙은 기토입니다. 무토로는 부스러져서 그릇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토는 찰기가 있습니다. 서해바다에 가 보셨습니까? 서산의 갯벌을 가보십시요. 회색의 갯벌, 무릎까지 빠지는 갯벌, 정말로 개성 없는 색깔입니다. 이 갯벌이 기토를 닮았습니다.

아이들이 인형을 만드는 찰흙이 기토를 닮았습니다.


고전에서는 기토를 특별하게 취급을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수리학을 취급하는 학문 중에 대정수(大定數)의 후천수 에서는 기토를 홀로 100으로 계산합니다.

갑=3,을=8,병=7,정=2,무=5,기=100,(축미=10,)경=9,신=4,임=1,계=6,..이렇게 기토는 특별나게 취급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보게 된데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머리가 나빠서 수리학은 공부할 엄두를 못 내고 말았습니다. 수학적이고 분석적인 벗님은 한번 도전해 보실만 할 겁니다. 잘만 하시면 유성이 언제 지구와 충돌할 건지도 알아 낼 수가 있습니다. 음양오행학 중에서도 수리학은 이렇게 심오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수리학의 정상은 태을수(太乙數)라고 하는 천기를 본다는 학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음양오행학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크게 본다면, 1 - 天學 = 수리학에서 발전함, 보통 천기를 본다고 함.

옛날에 관상감-지금의 기상대에 해당-에 종사하던 도사들 이 전공한 과목임.

2 - 地學 = 지리학이 대표적인 부문임. 집터, 묘터, 전쟁터 등, 땅에 관한 모든 것을 논함. 기문둔갑,氣學,등등 수없이 많은 종류의 땅에 관한 학문이 있음.

3 - 人學 = 명리학 혹은 사주학이 대표적인 부문임. 사람의 길흉화복 과 모든 행복을 위해서 발전한 학문임.


우리의 보물 천부경에 보면 일즉삼(一卽三)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에서 셋이 나온다는 말인 모양입니다. 이 말은 날이 갈수록 묘미가 있군요. 모든 의문이 일즉삼에서 해결이 날 것만 같습니다. 우리 나라 국기를 보면서 음양을 생각 하셨겠지만......(이 태극기의 오류는 언제나 고쳐지려나....)

우리 태극은 삼태극입니다. 태극선을 보시면 알 수가 있지요......

이 황홀한(?) 조상님의 한마디에...일즉삼.... 후학이 저절로 머리를 숙이고 맙니다. 하나에서 둘이 나온다는 것은 중국사람의 견해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역수입되어서 지금은 하나에서 둘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걸로 생각합니다. 하나에서 둘이 나온다면 둘에선 넷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상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만......

항상 이것이 말썽을 일어 킵니다. 이 어설픈 학설로 멋진 의학을 만든 동무(東武) 선생님도 모든 것을 넷으로만 나누면서 스스로 모순을 느꼈을 거라는 저의 짐작입니다. 넷은 완전하지가 않거든요......

(이거 한방동에서 까불다가 혼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네...)그런데.... 노자(老子) 만 해도 오염이 덜 되었는지.... 일과 셋이라는 말을 하긴 했습니다.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셋이 나오고 셋에서 만물이 생겼다'이런 말을 했으니 나중에라도 큰 욕은 먹지 않을듯 합니다.

(만약 둘에서 만물이 생겼다고 했다면 욕먹지...)

저는 노자의 이 말을 읽고 무슨 뜻인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습니다마는, 천부경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노인 말씀이 어디서 천부경을 훔쳐보고 왔었군..... 하고서요....

일즉삼은 우리 벗님들도 잘 음미해 두십시요. 흑백의 이론이 판을 치는 요즘에 일즉삼만 알아도 함께 죽는 일은 없습니다. 흑과 백으로 가르기 보다는 '흑 백 그리고 중간' 이라는 말이 우리 적성에 맞습니다. 이 중간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지능이 퇴화(?)해 가니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없애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없앤다고 없어집니까?.... 하긴 요즘엔 겨우 지능이 조금 상승해서 이제는 중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퍼지이론 이란것 말입니다.적당히 알아서 하라는 말을 기계에게 실험한다는....)음전자 양전자 그리고 무엇입니까?... 그렇죠 중성자.

우리 선조님들은 이 정도는 이미 5000년 전에 해결 본 것입니다.(이 당당한 자부심....) 일즉삼을 기록했으니까요.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기토가 그 중성자의 역할을 하는데 가장 적당한 물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토는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것은 기토입니다. 고지식 + 어루만짐(?)이 기토입니다. 사람이 순진해 보입니다. 모진 말을 잘 못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어떻게 모진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이렇게 기토는 남의 심정을 잘 헤아려 줍니다. 그래서 카운셀러가 적성입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리고 답을 찾아서 마음이 편하게 해 주는 기술이 있습니다. 종교인도 적성이 적당합니다.

그러나, 눈빛을 번득이면서 머리를 포르쉐같이 회전시키는 직업은 적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맨날 을목에게 골탕을 먹지만, 그래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기를 치려면 기토를 노리십시요. 웬만한 엉터리가 아니라면 속여 넘길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잘 넘어 갑니다.


기토는 어리숙 합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사실 어리숙합니다. 그러나 속은 알 수가 없습니다.

땅 속은 파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지요? 기토가 그렇습니다. 파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를 보십시요. 어리숙 한듯한 어머니들...... (요즘의 신세대 어머니는 그렇지도 않지만...)인간의 대지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 명리학자는 기토를 귀신(鬼神)이라고도 합니다. 알 수가 없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만큼 사람을 어렵게 합니다.

얼마전에 제가 추천한 책에 [우주변화의 원리] 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 책도 토에 대해서 특별히 자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특히 未土(陰土)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했습니다. 물론 地支를 공부할 적에 다시 거론 하겠습니다만...... 그만큼 음토(己土)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초보 벗님들은 한꺼번에 기토를 알 수는 없습니다. 시나브로 두고두고 공부할 요량을 하십시요. 공부를 좀 하신 분은 한결같이 이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마도 아직 무슨 비밀이 남아 있는가 봅니다.

무토는 양적인 중용(中庸)이라면 기토는 음적인 중용입니다. 토는 중앙이니까. 치우치지 않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기토를 응용해서 만든 저울이 천칭(天秤)입니다. 일명 천평칭(天平秤)이라고도 합니다.

양쪽에 똑같은 접시를 두고서 좌우의 무게를 다는 것이죠. 이 놈의 생긴 모양이 꼭 기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혀 자기의 주장이 없습니다. '얼마까지만 달수 있음'이라는 한계가 없습니다. 저울막대가 부서지지 않는 한 얼마든지 큰놈도 가능합니다. 일반 접시저울이나 막대 저울이나 말이나 됫박이나.... 모든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만. 이 천칭만큼은 전혀 기준이 없습니다. 오직 중심점만 있습니다.

철저하게 중심점만을 고집합니다. 그래서 기토를 닮았습니다. 저도 명상실에다가 이 천칭을 한 개 사다 두고서 마음이 치우칠 때마다 응시하면서 다시 중심점을 찾는데 활용을 할까.... 생각중입니다.







초보명리학 - 庚 (설악산의 울산바위)


바위는 단단합니다.

경금이 바로 바위입니다.

열개의 天干 중에서도 가장 단단합니다.

그래서 고집이 불통입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장을 내야 시원합니다.

도중에 오류를 느껴도 그냥 밀고 갑니다.

수정을 잘 모릅니다.

목은 뿌리를 내리다가 돌멩이가 있으면 방향을 바꿉니다. 그러나 경금은 그냥 구멍을 내고 통과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무모해 보입니다. 갑목은 경금을 가장 싫어 합니다. 싫어 한다기 보다 두려워 합니다. 묵직하게 앉아서 미동도 않은 채 노려보고 있는 경금은 갑목을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경금쯤 오니까. 다른 천간과의 비교를 할 수가 있어서 좋군요.

경금은 병화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병화를 두려워 한다고 합니다만 사실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병화의 폭발성도 경금에게는 먹혀 들지가 않습니다. 오직 꼬장꼬장한 강골일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직하기도 합니다. 칼날 앞에서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사간원의 선비체질입니다. 사헌부의 관리 체질입니다. 그들은 강골 중에 왕강골이거든요. 왕도 두려워 않는 것을 보십시요......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이야"

이것은 경금의 말입니다. 소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신은 스스로 옳다고 판단을 한 후에 내린 결정입니다. 그래서 방향의 수정이 잘 없습니다. 그냥 밀고 갑니다. 우리의 스타 '故 박정희' 전대통령을 보십시요. 그의 강인한 결단력으로 가난에 시달리는 우리의 경제 환경을 살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스타입니다. 아마도 영원한 신화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거기에는 바로 경금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경금입니다.

한번 옳다고 판단한 일은 절대로 수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도 많이 만듭니다. 결합하고 제휴하고 이런 것이 체질에 맞지를 않습니다. 카터가 미군 철수시킨다고 하니까 벌벌 떨면서 쫓아가서 매달릴 줄 알았을는지 몰라도 '그래 가뿌라 자주국방 할란다 지놈들 아니마 이나라 쓰러질줄 알았더나?' 하는 것이 바로 경금입니다.

정말 경금은 그릇이 큽니다. 국가의 일을 보는 사람의 그릇이 이 정도는 되야 하는데.....


경금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숨어 있습니다.

선물이라도 사주면 그렇게 좋아 합니다. 있는 그대로 사심없이 받아 들입니다. 경금은 원래 사심이 잘 없습니다. 그래서 속기도 잘 합니다. 한번 경금을 심복으로 잡아 두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을 충성합니다. 배반이란 말은 애초에 무슨 뜻인지 조차도 모릅니다. 이런 부하가 한 사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불이나 물이나 가리지 않고 명령에 따르는 용감한 부하....

그래서 경금은 군인체질을 닮았습니다. 뜨뜨미지근한 것은 애초에 성미에 맞지를 않으니까요. 그래서 동료의식도 강합니다. 동료도 바로 내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는 의지를 하고 목숨을 건 전쟁터에서도 서로의 안전을 보살핍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경금의 특성입니다.


의리를 가장 중히 여깁니다.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는 영화 제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이 진리입니다. 의리와 돌쇠(돌과 쇠)는 동격입니다. 경금은 아무래도 세련되지 않은 천연의 암석을 닮았습니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순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사부님이 경금 일주였습니다. 그래서 영업술(?)을 못하시고 고지식하게 학문만 토론하니.... 상담자가 와야지요.....

그래서 항상 철학원 월세 내는 날은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그 꼬장꼬장한 학문파의 고지식함이 세월이 흐를수록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느덧 인기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분 말씀을 모두가 법으로 알고 믿게 된 것입니다. 경금은 결코 얄팍한 몇푼의 돈에 끌려서 자기의 주장을 궆히는 짓은 치욕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경금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면 경금은 무시를 당하기가 쉽습니다. 항상 뒷전으로 밀려 나는 것은 세상물정에 어두운 경금이니까요...... (물론 경금이 다 그렇다고는 믿지 마십시요...)산위에 우뚝하니 솟은 바위에서 경금을 느끼시면 됩니다.

땅속에 깊은곳에 뿌리를 둔 암반에서 경금을 느끼시면 됩니다.

대쪽같은 성품에서 경금을 느끼시면 됩니다.

물소 같은 고집에서 경금을 느끼시면 됩니다.







초보명리학 - 辛 (빛나는 아이아몬드)


庚金이 자연석이라고 한다면, 辛金은 가공석입니다.

경금이 바위라고 했으니, 신금은 보석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가공된 금속은 대개가 신금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런데 신이라고 하는 간지는 둘입니다. 처음엔 이것조차도 혼동이 될 수가 있겠군요. 辛金과 申金입니다. 辛金은 천간의 陰金이고, 申金은 지지의 陽金입니다. 발음은 같더라도 위치가 다르니까 혼동없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庚金이 털털한 시골의 막걸리라고 한다면, 辛金은 깔끔한 양주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같기는 한데 좀 다릅니다. 이것이 음양의 차이점이겠지요.

그러면 辛金의 특성을 살펴 보겠습니다.


신금은 '멋쟁이' 입니다.

그래서 잡초속에 섞여 있는 것을 가장 싫어 합니다.

어디든지 높은 곳 눈에 잘 띄는 곳에 자신이 있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陰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금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내면적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양이요, 숨기는 것은 음이라...할 수 있듯이, 신금은 욕구를 두꺼운 기름종이로 포장해서 장농 깊숙이 감추어 둡니다. 그래서 남이 보기에는 별로 그러한 점을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도 미쳐 모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음성적인 성격이 항상 무섭습니다. 아예 드러내놓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콩이고 팥이고 하면 모두는 편안 합니다. 그런데 그냥 속에다 쌓아 두고 기회만 보고 있다면 이것은 질려버릴 일입니다. 금은 결실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단단한 결정체가 신금입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것입니다.

속에다가 쌓아 두지를 않고서는 결정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항상 훨훨 태워버리기만 일삼는 丙火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이 辛金입니다. 마치 코끼리가 생쥐를 무서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천하에 물도 두려워 하지 않는 병화가 일개의 조그만 辛金을 두려워 한다는 이 사실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벗님은 공처가(恐妻家)라는 말을 들어 보셨겠지요? 각시를 무서워 한다는 말인가 본데..... 어째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각시를 두려워 하는 사내.... 보통은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만, 특수한 경우에는 말이 됩니다.

병화는 각시를 辛金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전제를 해 놓고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병화가 남자라면 성격이 어떨런지는 병화를 읽어 보셨으니 아실 일입니다. 밖에 나가면 강력한 선동적 지도자입니다. 물론 화기가 강해야 한다는 것도 전제를 합니다.(약한불은 힘이....) 그는 항상 자신감에 가득차서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이 진두지휘를 해서 영웅이 됩니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 옵니다.(여기서 부터가 문제입니다)우리는 이렇게 어느 정도는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사람이 어째서 공처가가 될 수가 있을까? ? ? ?

남에게 또는 밖에서 하는 양으로 봐서는 그의 아내는 숨도 크게 못 쉬고 주눅이 들어서 숨을 죽이고 살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음양의 절묘한 조화는 이런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들어 보셨을 줄 압니다. '스포츠 선수는 각시에게 고분고분하다' 특히 격투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일수록 심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에게도 50의 공격성과 50의 수비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합을 하면서 이미 50의 공격성을 모두 소모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은 50의 수비성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는 고분고분 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전쟁의 에너지를 다 소모했기 때문에 평화를 원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병화를 여기에다가 집어 넣습니다. 이미 밖에서 폭발의 성분은 모두 탕진해 버렸습니다. 사실 폭발이란 것은 남김없이 터져버림을 의미합니다.

폭발의 반대는 위축입니다. 이렇게 극단은 극단을 낳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남자는 천하를 지배하고 그 남자는 여자가 지배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세상이 진리아닌 말이 없는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무심코 한 말 속에도 진리가 있다고 하니.....

블랙홀 뒤에는 화이트홀이 있다던가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음양의 조화이니까요. 빛이 밝으면 밝을 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습니다. 이것 참 묘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수익이 적고 묘하다고 생각하면은 얻을 것이 많습니다. 의문 -?- 과 묘함 -!- 은 사람을 진화시킵니다. 그저 그럼 -.- 은 별로 이익이 없습니다. 우리 벗님은 계속해서 ?! ?! ?! 으로만 갑시다.

도가 높아지면 마가 더 날뛴다(道高魔盛)고 하던가요? 이 말도 그냥 생각해서는 별로 묘미가 없습니다. 도를 백열등으로 바꾸고, 마를 그림자로 바꾸어 놓고 다시 읽어 보면 그렇게 묘미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도 마지막의 큰 깨달음을 이루기 직전에 가장 큰 마장과 싸웠답니다. 이 마장이 없으면 도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빛과 그림자의 인연입니다. (이야기가 엉뚱한데로 가버렸네.....)

이렇게 집으로 돌아온 병화는 지쳐서 쓰러질 지경입니다. 천하의 병화라도 사람인데야 어쩌겠습니까? 폭발해버린 몸은 이미 알맹이 빼먹은 통조림 깡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힘으로 각시를 지배하겠습니까? 맥이 탁 풀린 병화는 쓰러지고 맙니다. 그래서 정작 남편의 구실을 못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이미 쌓인 것이 폭발해 버렸으니.....조그만 각시(辛金)가 아무리 바가지를 긁어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처가의 씨앗이 됩니다. 다시 폭발시킬 성욕이 없는 까닭입니다. 마음은 있더라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신금은 툴툴 털어 버리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木火의 발산지기(發散之氣)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곡차곡 쌓아 둡니다. 그래서는 결국에 30년 이상을 기다려서 옛날에 자기 몸을 겁탈한 사내를 (이미 늙었거나 말거나...) 죽여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섭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기본적으로 신금을 닮은 데가 있는 것일까요?'옥녀의 한' 이라는 부류의 납량특선이 나올 때도 되어 가는군요...


보석은 뽐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진열장에 놓아두고 광선으로 빛을 주면 그렇게 영롱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여자들은 그 진열장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 지지를 않습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신금(보석)은 그렇게 여자를 닮았나 봅니다. 돈을 보고서 따라가는 심순애를 탓하는 사람은 음양의 조화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원망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여자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누구던지 자신을 진열장에 놓아 두어준다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여자의 욕망'을 알기 때문에 돈으로 여자를 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여자는 정절' 이라고 백천만번 강조를 하고 또 했습니다. 이렇게 강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롱한 보석은 사람의 탐심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신금은 사람의 관심을 모읍니다. 신금은 이 맛에 살아갑니다.

남이 몰라주고 무시하면 속상해서 잠을 못 이룹니다. 그 자리에서는 그냥 참고 왔는데...... 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생각할수록 분해서 혼자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벼릅니다. 이놈 두고보자.... (으흐... 무시라~~~) 이 결심이 큰 성취를 가져 옵니다. 결심이 있으면 성취를 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장관도 되고 총장도 되어서 복수를 합니다. 이것이 신금의 파워입니다.

그래서 옛날의 우리 스승님들도 제자를 싸악 살펴봐서 만약 신금이면 '요놈은 자극요법을 써야 될놈'으로 판단 합니다. 그러면 이를 갈고 눈을 부릅뜨고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스승을 죽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중에야 스승의 공덕을 알고 후회하겠지요.....

반대로 신금을 매장시키려면 자꾸 추켜주면 됩니다. 그러면 자아도취에 빠져서 꿈같이 솜사탕 같이 녹아 듭니다.

(남자 벗님만 보세요... 뽐내고 싶어하는 아가씨를 애인으로 두었다면 마구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요. 그러면 소득이 많을 겁니다...얼마간은 속이 매슥거리더라도 참으셔야만 합니다. 참는자의 최후 승리는 화려한 법입니다....후후)


(여자 벗님만 보십시요... 남자친구가(남편이라도 좋고) 열등감이 있는 듯 하면 자꾸 추켜 주십시요. 남자가 열등감을 갖는 것은 그만큼 성취욕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속이 좀 불편(?) 하시더라도 참으시면 좋습니다. 그런 후에 기가 펄펄 살아서 큰 소리 꽝꽝 치는 남자친구를 보게 될 때.... 그때의 환희심은 인내를 하신 여자분의 몫입니다.)


이런 소리가 신금하고 무슨 연관이 있다고 눈어지럽게 늘어 놓는가 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신 벗님은 군소리가 전혀 없는 사전만 읽으시고 소설은 읽지 마십시요. 사전은 두 페이지를 읽기가 힘듭니다. 읽기만 하면 모두가 보약이 될만한 이야기만 늘어 놓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책은 소설을 읽듯이 ......후후)


이런 모양들이 辛金을 닮았습니다. 전부 다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신금은 여간해서 두려움이 없습니다. 병화가 앞에서 큰소리 치고 뒤에서 겁을 낸다면, 신금은 속으로 '그래? 한번 해볼까...?' 합니다.

피가 뚝뚝 떨어 지는 얼굴을 상대방에게 바짝 들이대는 사람은 신금입니다. 그러니 병화가 두려워 하지요......칠전팔기는 신금의 소유입니다. 지독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경금은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때만 지나면 잊어버리기도 잘 합니다만. 신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아마도 陰金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초보명리학 - 壬 (낙동강 칠백리)


바다...

하염없이 수평선만 보이는 넓은 바다

그 바다 한쪽 편에서

나는 어린 아이처럼

조개껍질과 예쁜 돌을 주우면서 즐거워 하고 있다.

미지의 바다는 저렇게

누워 있는데.....


뉴우튼의 이야기든 가요?......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 보았습니다. 정말 미지의 바다는 저렇게 누워 있는데, 우리는 이 조그만 진리의 조개껍질을 주우면서 즐거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지루한 가운데.... 드디어 물이 비치기 시작했나 봅니다.

마침 장마도 진다고 하니까, 물 이야기 하기에 적당하군요.


임수는 넓습니다. 그래서 상징으로는 바다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과 호수도 같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크게 나오는 것은 양의 물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범위가 넓은 형상을 갖습니다.

한방울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이렇게 큰 대하를 이뤘습니다. 이 임수는 고요할 때는 거울의 면과 같고, 충동을 하면 온 천하를 집어 삼킬듯이 난리를 칩니다. 얼핏 생각하면 바다는 항상 같은 모양인 듯 합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한나절만 바라다 보십시요. 그러면 큰 발견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바다는 잠시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발견하시게 될겁니다.

저는 복(?)이 많아서 동해에서 2년 서해에서 7년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사정을 조금은 이해를 합니다. 바다가 잔잔하면 반드시 걱정이 됩니다. 필시 12시간 내로 바다가 거칠어 진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출렁일 때는 아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바다의 양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를 바라다보면서 임수를 생각합니다. 임수는 무엇일까........


첫째로 바다에서 쉬임 없이 움직이는 형상을 발견합니다.

둘째로 항상 고요한 가운데에 활발한 움직임을 발견합니다.

셋째로 너무나 깊어서 그 시퍼런 바닷속을 들여다 보기가 두렵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명상을 합니다.

임수로 태어난 사람은 항상(쉬임없이) 생각을 하고 살겠구나.....

임수로 태어난 사람은 변덕이 있는듯 해도 그 마음속은 항상 한가지로 침착하다는 것을 앝겠구나...

임수로 태어난 사람은 그 속의 마음을 여간해서 알 수가 없겠구나...


임수는 침착합니다. 경거망동을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한가지의 얼굴입니다. 느긋해 보입니다. 도량이 바다같이 넓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궁리를 하는 임수는 섣불리 덤벼 들기에 부담을 줍니다. 그래서 오해도 받습니다.

"임수는 음흉하다"

얼마 전에 대화실에서 어느 벗님이 이렇게 질문을 하시더군요.

'임수는 음흉하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 말은 일부입니다'

사실 임수는 의외로 솔직합니다. 제가 아는 몇몇 임수일주는 모두가 솔직합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음흉하다는 말이 나왔을까.....? 하고 궁리를 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음흉한 임수란 말은 오행을 이야기 할 적에 물은 사기꾼이다. 물은 음흉하다. 물은 도적이다.....

이런 말에서 연상작용으로 임수도 물이니까 임수는 음흉하다고 유추가 된 듯 합니다. 저도 오행종합에서 음모 술수라고 말을 했으니 책임이 없다고도 못하겠군요...... 이 말은 현무라는 물의 상징에서 왔습니다. 점술에서 현무라는 괘가 움직이면 도둑의 문제라고 보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물을 이야기 할 적의 말입니다.

이렇게 임수를 이야기 할 때는 그렇게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임수는 궁리를 많이 합니다. 이렇게 궁리를 많이 하면 남이 볼 때 꿍꿍이 속이 있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한번 생각하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씹고 또 씹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별 희한한 궁리까지도 등장합니다. 임수는 기발한 생각을 잘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속모르는 사람이 임수를 음흉하다고 말한듯 합니다. 제가 볼 적에 임수는 발명가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에디슨은 임수였을 것입니다. 그의 부단한 연구열에서 임수가 느껴집니다. 설령 임수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데서 임수의 특징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생각이 많다 보면 정신의 세계가 자꾸만 넓어 집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혜를 자꾸만 높여 줍니다. 그래서 물의 상징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와 쉬임 없이 생각하는 것은 닮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이 말도 우리 명리학도가 생각해 보면 바로 오행의 소식입니다. 목은 동방의 仁을 나타내고 수는 북방의 智를 나타낸다고 했으니까요.

우리는 더 많은 말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예의가 밝은 사람은 불을 좋아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은 바위를 좋아하며,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흙을 좋아한다'

란 말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임수가 지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 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은 어떨까요?

'전국 아이큐 검사를 해서 150 이상인 사람들의 사주를 적어보자. 그러면 그중에 임수가 몇 %나 되는지 시험을 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아마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많은 임수가 그 중에 끼어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런 실험도 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수는 연구하고 실험하는 학자의 심성입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유연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학설을 보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실험하고 증명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온갖 종류의 약초를 씹어보고 실험해본 후에 한의학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의술을 남기신(한방동에 세들어 살고 있으니 아부좀 팍팍 하자....하하) 신농씨는 아마도 임수의 일주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진지하게 자신의 몸을 실험의 대상을 삼아서 모험을 할 사람은 임수만이 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면 학자마다 연구하는 스타일이 다 각각이지요?이제 이 정도(임수까지) 왔으니 각자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갑목 부터 임수까지의 갖가지 직업에 대한 자세를 말입니다.


가령 운전사가 있다.

그가 갑목이라면 어떤 스타일로 운전을 할까?

그가 을목이라면 어떤 스타일로 운전을 할까?

그가 병화 내지는 임수라면 어떤 스타일로 운전을 할까?

이런 궁리를 많이 하시면 눈이 굉장히 좋아집니다. 그 사람의 성격을 판단 하는데 큰 힘을 얻습니다. 우리 벗님들, 이렇게 계수까지 한 다음에 시험을 한번 볼까요?


'북한의 핵에 대해서 십간의 생각을 논하라'


재미 있을 것 같지요? 아무거라도 좋습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 십간의 성격은 차이를 보입니다. 분명히 견해가 다릅니다. 흔히 하는 말로 학자간의 견해라고 하지요? 전 十干간의 견해라고 하고 싶군요.

오늘 이후로 우리 초보 벗님들은 무슨 일이든지 이렇게 열가지의 견해를 생각해 보시는 겁니다. 아직 계수가 남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여태까지 낭월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까, 계수는 틀림없이 이렇겠구나..... ' 이 정도는 추리를 하셔야지요?









초보명리학 - 癸 (졸졸졸 흐르는 옹달샘)


졸졸졸

맑은 옹달샘입니다

누구던지 오세요

목마른이 모두 와서

갈증을 달래세요


오실 때엔

표주박을 하나씩 가져오세요

가실 적에

밝은 달을 하나씩

건져가게요


토끼도 먹고 노루도 먹고. 나물 캐던 아가씨도 먹습니다.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옹달샘, 이것에서 계수를 생각합니다.


참으로 약하다고 말을 합니다.

계수는 약합니다. 아무도 계수를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수의 존재조차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빗물은 계수의 모습입니다.

가뭄에 시달린 산천 초목이 단비를 맞고서 생기를 되찾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것이 계수입니다.

그래서 癸水의 영상은


옹달샘. 빗물. 안개. 아이스크림. 쭈쭈바. 등입니다.


이 계수는 우리 인간에게도 진정 생명의 젖줄입니다.

목마른이에게 한 바가지의 감로수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합니다. 보통은 잘 모르지만.......

목말라 본 사람은 압니다. 계수가 얼마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지를 말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중에 단식(斷食)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체의 곡기를 먹지 않고 굶는 방법입니다.

이 단식은 원래는 수행자들이 도를 닦다가 무엇인가 집중을 할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사용하는 비상 수련법이었습니다. 사실 밥을 하루 세번 챙겨 먹으면서 도를 닦는다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공부를 해 보신 분은 아실 일입니다. 그래서 단식이라는 비상 수단을 동원해서 밥하는 시간과 먹는 시간. 그리고 설거지 하는 시간을 단축해서 수행에 보태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단식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단식을 하시는 분도 계시긴 하지만, 대개는 건강을 위해서 단식을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모든 것들.... 즉 인삼 녹용 지렁이 등등 을 먹어야 되는 줄만 아는가 했더니 굶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나 봅니다. 사실은 마냥 주워 먹고는 (건강을 위해서) 또 마냥 굶은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적당히 먹고 살면 아무 탈이 없는 일이련만......


어쨌거나, 단식투쟁이라는 치사한 방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엇인가 쟁취를 하겠다는 말인가 본데...... 이런 짓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병들어 죽습니다. 천수를 누리지 못합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단식을 해야지 이렇게 적개심으로 단식을 해서는 건강에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행여 우리 벗님들의 이웃이 이러걸랑 발벗고 말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갑자기 계수를 이야기하다 말고 단식이야기가 나와서 의아해 하시겠습니다만...... 결국은 계수의 이야기입니다.

계수는 생명의 精이거든요....

왜냐면 단식을 하더라도 꼭 한가지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먹지 않으면 남자는 7일 여자는 9일만에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이것은 옛날에 근기들이 좋은 적에 이야기라면 지금의 오염도를 감안 한다면...... 남자는 5일 여자는 7일을 굶으면 죽는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먹으면 한 달을 굶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물론 평온한 마음으로요..... 이것이 바로 계수입니다.


이 계수는 생명의 정입니다.


그만큼 계수는 소중합니다.

임수(낙동강)의 오염으로 계수(수돗물)가 먹기에 곤란하게 되었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소란은 당연합니다. 그보다 시급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 계수(수돗물)는 진정한 의미에서 계수라고 보기가 싫습니다. 임수를 계수化 시킨 것일 뿐입니다. 다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 빼고는 임수일 뿐입니다.

이른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모두가 손에는 하얀 물통을 하나씩 들고서 주-욱 줄을 서 있습니다.

벌써 아시는군요..... 바로 약수터라는 곳입니다.

집에는 물 꼭지만 틀면 맑은 물이 쏴아- 나오건만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생스럽게 기를 쓰고 물을 받으러 오리 십리를 멀다고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리겠습니까? 오직 옹달샘 만이 계수라고 생각해서이지요.


우리 나라의 계수는 참으로 좋습니다.

어디든지 졸졸 흐르는 물은 두 손으로 떠서 먹을 수가 있습니다. 달고 시원한 물은 목마를 때 한 모금 마시면 해탈이라도 한 듯 합니다.

독소가 없습니다. 금수강산이기 때문입니다. 바위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까 물이 이렇게도 좋습니다. 金生水의 소식이겠지요.....

이렇게 좋은 물을 먹고 자랐으니 우리 민족은 지혜가 세계제일입니다. 물은 지혜를 나타 내니까요.

이제는 이 물에서 계수의 소식느끼시면서 드시기 바랍니다.

이 물은 마법사입니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변환이 자유자재입니다. 그래서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듭니다.

사람이 마시면 지혜를 만듭니다. 모쪼록 좋은 계수 많이 마시고 빨리 지혜를 얻어 셔서 이 도리(음양오행)를 깨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변화가 자유자재이기 때문인지 계수로 태어난 사람은 변화가 많습니다. 때로는 예측불허일 경우도 있습니다. 항상 생기가 있습니다.(옹달샘) 활발합니다.(시냇물) 때로는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흡사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습니다.(안개) 때로는 촉촉하다가도(이슬비) 때로는 광풍노도(집중호우) 처럼 변합니다.

낭월이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초보님들 혼동 되실까요?

한가지만 말하지, 이랬다 저랬다 종잡을 수가 없어서요....?그러나 그렇게 말씀드릴수가 없는 저 자신이 고통스럽습니다.

계수는 어차피 그런 성질을 갖고 있으니 전들 어쩌겠습니까. 다만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서 명상을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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