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저는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남자는 눈물을 보여선 안된다.
과묵한 남자가 매력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란 종족으로 태어난 이상 이런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본 경험이 없는 분 없을 겁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선배도 그런 얘기를 하던데요.
형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죠?
그냥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느끼는 대로 투명하게 표현하면 되는 거 아녜요?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죠?
형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군요.
그건 바로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지. 두둥.
형의 말대로라면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하나봐요.
비밀이 많아야 하나봐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요.ㅎㅎ
모 암튼 이 세계에서는 남자란 종족은 감정이든 총기든 뭘 함부로 드러내선 안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감정조절의 콘트롤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중에서도 남자의 색채가 강한 느와르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주인공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 옆에서 왜 우니? 물어봅니다.
주인공은 대답하죠.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무슨 달인의 김병만도 아니구 덜덜.
좋아도 좋다고 드러내지 말고, 슬퍼도 울지 말고, 짜증나도 짜증내지 말고, 똑똑해도 똑똑한 척 하지 말고 이렇게 보면 남자들의 세계에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의 문구가 통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을 식상이 관을 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려합니다.
즉 표현 자체가 체면을 상하게 한다라는 거죠.
제게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그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상이 뭔가 근엄한 표정입니다.
언제까지나 말을 아끼겠다는 듯 입술 끝을 아래로 축 내리고 팔짱을 끼고 있죠.
어떨 땐 감정 자체가 없는 사람들처럼 언제까지 무표정합니다.
당황해도 당황하지 않는 모습. 언제나 의연하게.
이 사람들은 식상이 관을 친다는 것을 몸으로 이미 체득하고 있는 걸까요.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예전에 돌아가신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 생전에 너무 표현이 자유로웠죠.
그래서 언론에서 많이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체통을 지켜야지 등등의 기사를 읽은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하시는 분들. 어쩌다 말 한마디 잘못 꺼내면 난리가 아니죠.
관을 식으로 바로바로 다루려는 건 쉽지 않은데요.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에 대해 즉각적으로 맞받아치는 기술이 없으면 어딜 가든 인정 받기 어렵고 똑똑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어려운데요.
그러나 관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대항하는 기운이므로 달갑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식으로 관을 잘 다룬다는 것.
이게 얼마만큼 어려우냐 하면, 직장 생활을 하는데 윗상사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뭔가 좀 조절할 필요를 부하 직원이 느낀다고 합시다.
그래서 김과장님,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말을 꺼내긴 해야 할 텐데요.
한편으로는 김과장의 눈치를 살피면서 김과장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또 한편으로는 김과장의 이상한 주장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절하게 표현을 해야 합니다.
식으로 관을 바로 다룬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저에게는 외줄타기처럼 느껴집니다.
이게 제대로 안되면, 김과장은 생각하겠지요.
이 친구는 안하무인의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하려는 사람이구만. 날 대체 졸로 보는 거야 뭐야!
이 친구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내 말이 맞다는 거야 틀리다는 거야? 다음 승진은 국물도 없으~!
참 어렵습니다.
이거 잘할 자신 없으면 그냥 국회의원처럼 무게 잡고 입 닫고 팔짱 끼고 앉아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말 한 번 잘못했다가 피 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무게만 잡으면 또 욕먹지요.
저 친구는 입이 없나. 무슨 생각을 하긴 하는 거야? 로보트야? 인형이야?
관이 강하면 비겁을 칩니다.
개성이 없는 것 같고 무엇을 할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언제까지나 대세에 편승할 뿐, 그저 속 없이 체면만 차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 가만 있으면 언제나 본전은 차리긴 합니다만,
식이 관을 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인간미를 보이는 역할도 합니다.
자신의 체면을 스스로 깎는 아량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건 더한 폼으로 멋있게 느껴지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장동건이 나는 사실 잘생기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해하죠.
그건 자신의 체면을 깎는 인간미라기보다는 형식적인 겸양에 불과합니다.
사실 나는 잘생기지 않았다라는 번드르르한 말보다는, 최소한 토크쇼 같은 데서 방귀라도 뿡뿡 껴주는 것이 . . . 인간미를 보여주는데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이래서 문제는 또다시 복잡해집니다.
식이 드러나면 관을 치는데, 즉 표현 자체가 체면을 손상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두려워 체면 차리고 폼만 잡고 있으면 인간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관이 기존의 질서라면 식은 질서에 대한 저항의식입니다.
질서를 무조건적으로 쫓으면 그는 한 인간 개인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에 편승하는 아무개 X가 되고,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질서를 치면, 질서로부터 철퇴를 맞습니다.
참으로 인생사 외줄을 타는 묘미가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