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우울증

(공포) 우울증

21 이가온 0 4,562 2020.08.23 18:59

 


눈을 뜨면 좁은 방의 풍경 그대로이다. 변하는 것은 없다. 오로지 혼자만이 있다. 차라리 이게 낫다.


 


고시원의 1.5평은 나에게 안정을 준다. 그래, 이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방해도 없다. 할 수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은 많으나 상상만은 자유이다. 상상 속에서 난 재벌이며 슈퍼맨이며 한류스타이며 카사노바다. 내 맘이다. 이것에 죄악을 느낄 필요는 없다.이것이 누군가를 해하거나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는다.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나 멸망당할 뿐, 언제나 현실은 그대로다.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환상을 누빈다. 현실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불만이다. 저 문 바깥의 세상, 그저 남들처럼 해라, 중간이라도 누려라, 일해야 먹고 산다, ‘오빠 오늘 뭐해?’ ‘짜식 오랫만이다! 잘 지냈냐?’ ‘김대리, 요즘 힘든 일 있어?’ ‘거점 A 뚫려요! 뭐해요? 발로 컨트롤하냐?’ 따위의 세상은 필요 없다. 그저 혼자 있고 싶다. 아무리 아침이 되고 해가 뜨고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어도 이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공간은 불을 켜지 않는 이상 어두컴컴하다.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한계가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투쟁은 포기로 변형된다. 이제 지쳤다. 15년, 너무 오랜 세월을 내던졌다. 앞에 보이는 것은 끝도 없이 뻗어난 어두운 터널,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동굴 속을 해맬 뿐이다. 한때 꿈꿔왔던 작은 것들조차 망상이라 여기며 피식, 실소만이 나올 뿐이다.


 


어떤 위로도 필요 없다. 위로라는 것은 위의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쯧쯧, 혀를 찰 때나 하는 것이다. 이타심과 이기심은 같다. 어차피 발현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내 자신 속에서 나타난다. 그 속에는 동정, 연민과 같은 계급이 등장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위 아래로 나누려고 애쓴다. 그딴 것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보면 허무하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다. 자신을 이미 갉아먹을대로 갉아먹힌 상태다. 남은 쭉정이가 외쳐댄다. ‘왜 그랬을까.’


 


두 시간을 허리만 일으킨 채로 삐그덕대는 낡은 침대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다. 이제 곧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구걸소리가 들릴 것이다. 꼴에, 내 딴에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이 생존시스템은 여전히 굴러간다. 내 의지가 아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내 의지가 아냐, 내 의지대로라면 난 이미…


 


예정대로 알람이 울리고 그제 서야 몸을 일으킨다. 운동부족으로 인해 두 어깨와 무릎 한 쪽이 시큰하다. 배만 요상하게 거부마냥 뽈록 튀어나와있다.아니다, 이것은 아귀라는 귀신의 뱃가죽이다. 배는 굶주리는데 배만 뽈록 튀어나온다. 이런 배를 화장실의 거울을 통해 바라본다. 그러고는 또 다른 내 자신의 비웃음이 들려온다. 야, 생긴거 봐라, 그딴 얼굴로 바깥을 나가겠다는 거야? 등신새끼, 왜 사니? 넌 대체 하는 일이 뭐야? 응? 왜 살아? 여태 살아오면서 뭘 해낸 거야? 남들은 저리 열심히 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벌레같은 네 새끼는 대체 이제껏 뭘 이뤄내고 사셨습니까?


 


거울을 바라볼 수 없다.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조용히 샤워기를 돌려 물을 뿜어낸다. 고개를 천장으로 향한다. 덕지덕지 검은 곰팡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저 미생물도 살아보겠다고 저렇게 열심히 알을 까는데 넌 대체 뭐니? 뭘 한거니?


 


왜 사니?


 


샤워호스 줄로 목을 칭칭맨 상상이 펼쳐진다. 멈춰야한다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보지만 멈춰지지 않는다. 그곳에는 고통뿐이다. 영원한 어둠이다. 내 죄가 씻겨질때까지 영원한 구걸은 계속된다. 알고 있었다. 난 절대로 천국을 갈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절대 상상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괴롭지 않아? 넌 쉴 때가 됐어. 자, 잠깐이면 돼.


 


질책과 비난은 이제 타협으로 돌아선다. 안 돼, 그만 둬. 한시간동안 계속되던 샤워는 끝내 멈춘다. 몸을 대충 닦아내고는 거친 빗질이 시작된다. 벌거벗은채로 머릿결을 신경질적으로 박박 밀어낸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우수수 떨어지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 한다. 계속되는 질책과 유혹이 머릿속을 맴돈다. 멈출 수가 없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옷을 대충 두르고 밖으로 나선다. 두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다. 내 삶에 유일한 소중한 재산이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괴로운 망상을 막아낸다. 음악에 맞춰 다시 행복한 상상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는 난 재벌이며 슈퍼맨이며 한류스타이며 카사노바다. 이 세상 거칠게 없이 앞으로 나가는 당당한 자다.누구나 부러워하며 누구나 고개를 숙이며 누구나 좋아해주는 그런 인간이다.


 


산책길은 정해져있다. 1년간 항상 같은 길이었다. 제법 녹음진 수풀이 쭉 펼쳐진다. 그 옆에는 좁은 강이 넘실넘실 흐른다. 음악을 들으며 그 길을 걷는다. 내 삶에 유일한 안락이다. 이 순간만큼은 자책도 고문도 실망도 후회도 사라진다. 이때만큼은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다. 이때만큼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잠시나마 희망을 느낀다. 내 딴에 살아보겠다고, 머리는 이렇게 상상을 펼쳐준다.


 


이 앞길에 노란색 테이프가 보인다. 사람들이 몇몇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잠수부로 보이는 몇몇이 강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눈빛이 날카로운 몇몇이 수첩에 뭔가를 적어가며 주위를 살피고 흰 가운을 입은 자들이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댄다. 그 가운데 하얀 천으로 뭔가를 덮어놓은 것이 보인다. 하필이면, 왜 빌어먹을 하필이면! 내 산책길 한 가운데를 막아서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 다시 인생에 이런 일을 맞딱뜨렸다. 왜, 어째서…어째서!


 


나는 피하지 않았다. 허나, 도저히 흰 가운으로 덮인 존재를 쳐다보지 못했다. 남들은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리며 희희덕거리는데 내 자신만이 땅바닥을 쳐다볼 뿐이었다. 다시 그 시간이 다가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과거가 떠올랐다. 저 깊이 박아두고 꽁꽁 싸매뒀던 그림자가 슬금슬금 기어올라왔다.공포가 엄습했다. 어쩔 수 없어. 넌 이렇게 살아가야할 존재야.


 


체념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내 눈에 저 흰가운에 덮인 존재가 슬금슬금 허리를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심장박동은 빨라지지만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는 이제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오래됐는지 누덕누덕 흘러내리는 살점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매스꺼운 냄새가 퍼져나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한쪽 눈알이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는 슬금슬금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알고 있었다. 또 다시 신을 저주하며 내 자신 스스로를 뜯어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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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하다.”


 


박형사는 역한 냄새를 막기 위해 코를 틀어막았다. 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맹맹하게 들려왔다. 한 손으로 들고있던 흰 가운을 다시 내려놓았다.


 


“일주일은 지난 거 같아. 정확한 건 아냐.”


 


부검의로 보이는 남자가 박형사에게 말했다. 박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펼쳤다. 볼펜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다가 주위에 구경꾼이 많다는 것을 인지했다.


 


“야, 사파리 열었어? 통제 안해?”


 


제복경찰들이 손살같이 달려가 인파들을 뒤로 물렸다. 가뜩이나 SNS인지, 카톡인지 뭔지하는 것들 때문에 보안, 보안, 보안! 습관처럼 외쳐대는 반장의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사람죽은게 뭔 구경거리라고.’ 투덜거리며 찾아낸 볼펜으로 몇 자 끼적였다.


 


“뿅뿅? 타살?”


 


박형사가 부검의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검의는 어깨를 으쓱할 뿐, 대답은 없었다. 시체를 다시한번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데 문득 낯선 인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를 숙인 채로 고개만 돌린채 그 인물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구경꾼 사이에 있던 한 남자가 이상하게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덥수룩한 머릿결의 남성이었다. 두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다른 구경꾼들과는 시선이 달랐다. 웅성대며 두리번거리는 일반인들과 다르게 꼼짝않고 서있었다. 그의 두 눈엔 생기가 없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 했다.


 


“박형사님?”


 


파트너인 최형사가 박형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한참 낯선 남자에게 시선이 꽂혔던 박형사가 부리나케 허리를 폈다.


 


“아이, 깜짝이야!”


“왜 그러세요?”


 


최형사는 작게 웃으며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넸다. 박형사는 투덜거리며 한 입 홀짝 마셔댔다.


 


“피해자 신분은?”


“조사중입니다. 실종신고를 바탕으로 둘러보고 있습니다.”


 


박형사는 못마땅한듯 다시 한번 혀를 차며 수첩을 펼쳤다. 그러다 이상했던 남성이 떠올라 주위를 살폈다. 허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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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그러기에 이런 나를 구제할 수 있다. 허나 그렇지 않는다. 난 영원한 저주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다. 마치 그의 비웃음이 들려오는 듯 했다. 그는 이런 나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모른척 하는 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간에 이런 삶을 살게 하는 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많은 자들이 항상 바래온다. 이걸 해주세요, 저걸 해주세요, 허나 신은 들어주지 않는다. 지친 자들이 신에게 분노한다. 그들은 무신론자가 아니다. 비신론자이다. 악마는 이렇게 태어난다.


 


어두운 밤. 사건현장에서 대략 3킬로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1205동이라는 커다란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경비실을 바라보았다. <순찰중>이라는 푯말만이 보였다. 저것은 뻥이다.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경비수를 반으로 줄였다. 오늘 이 라인의 경비는 쉬는 날이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경비실 입구로 다가섰다. 바로 위 천장에 CCTV가 보였다. 자신이 찍히던 말던 상관없었다. 어차피 녹화기록이 저장되는 하드디스크를 뜯어낼 생각이었다. 이는 오래전부터 익혀온 지식이었다.


 


경비실 문앞에 채워진 자물쇠를 재빠르게 열었다. 열쇠도 아닌 머리핀 하나로 충분했다. 안에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컴퓨터 본체를 꺼내 전원선을 뽑은 뒤 뒷면의 볼트를 풀었다. 내부가 드러나자마자 바로 하드디스크를 분리했다. 점퍼의 속주머니에 넣고는 남은 부분은 대충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당연히, 장갑을 끼고 있었으며 소비한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이 순간에 지나치지 않았다.


 


이제 당당히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13층으로 올라섰다. 1307호라는 문패의 앞에 멈춰섰다. 앞에는 잠금키패드가 보였다. 번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허나 초인종은 누르지 않았다. 옆에서 그 시체가 속삭여줬다. 6, 4, 7… 삐빅,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집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이 없자 여성은 재차 물으며 고개를 현관으로 내밀었다. 현관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남성이 후드티로 얼굴을 가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양손으로- 긴 끈을 팽팽하도록 붙잡고 있었다.


 


“누구야!”


 


여성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재빠르게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도망치는 여성의 뒷머리채를 붙잡고, 바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여성이 힘이 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이런 공포에 직면한 생물체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이때만큼은 왠만한 힘이 아니면 제압하기가 힘들다. 이 여성 또한 그랬다.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키더니 안방으로 다시 달음질쳤다. 뒤로 내팽겨지듯 넘어진 나는 다시 일어서서 여성을 쫓았다. 안방문을 걷어차고, 화장대 앞에서 핸드폰을 쥐고있는 여성을 냅다 걷어찼다. 여성의 머리는 화장대 문갑에 부딪히고, 정신이 없는지 양손으로 사방을 훑었다. 화장품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대로는 위험해- 얼른 처리해야 했다.


 


잡고 있던 끈으로 여성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당겨댔다. 여성은 컥컥거리며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여성의 저항이 점점 사그라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뿐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어쩔 수 없다고요, 그러니까, 왜 당신 남편을 죽였어요? 왜? 20년간 사랑한다며 같이 지낸 피붙이와 같은 그를 왜? 그 커피숍이 무너진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커피숍이 당신의 사랑보다 중요했나요? 빚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나요? 다른 사람이 생긴 건가요? 그 알바생?


 


여성은 붉어지는 자신의 머리통을 화장대의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다. 마지막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자신의 목을 조르는 남성이 들어왔다.어두운 후드티 안에는- 자신의 남편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여성의 두 눈은 공포로 잠겼다. 죽음에 대한 공포였을까, 죄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이윽고 여성의 두 손은 축 쳐졌다.


 


한동안 두 손의 힘은 계속되었다. 혹시나 다시 일어서지 않을까, 하는 공포 때문이었다. 잠시간을 끙끙거리다 결국 두 손을 놓았다. 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저지른 또 하나의 죄에 몸서리쳤다. 어쩔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어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잡은 채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바라보았다. 이제 됐지? 이제 된 거지? 그러니까 내 앞에서 꺼져. 꺼지라고!


 


화장대 앞에 무릎을 꿇고 거울에 비춰진 죄인을 바라보았다. 후드티 안의 얼굴은 살인자의 비참한 몰골이었다. 이번이 대체 몇번째인가- 난 미치지 않았어. 난 미친 게 아냐. 맞아, 난 미친 게 아냐. 놈들이 날 괴롭혀. 날 가만두지 않아. 죽은 자들은- 더 이상 이성이라는 게 없어. 그들은- 절대로 자신의 목적이 이뤄질때까지 가만있지 않아. 난 버텨왔어. 처음 그때는- 3년이라는 시간을 버텼어. 그 목매단 여성이 3년간 날 따라다녔다고. 매일 밤 그 축 쳐진 혀로 내 몸을 햛아댔어. 내 골수를 빨아댔어.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나만 보였어. 나만 느낄 수 있었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어. 기도를 해도 제사를 지내도 약을 먹어도 떨어지지 않아. 영원히 내 옆에 붙어서 자신이 하고자하는 것만 읊을 뿐이야. 자신이 얼마나 원통한지 목놓아 울어댈뿐이야. 그것뿐이야, 내가 빼빼마른 해골이 되어가도, 정신이 파괴되어도 놈들은 신경쓰지 않아. 오로지 자신의 목적뿐이야. 결국 첫 살인은 벌어졌어. 그녀가 원하는대로 그녀를 죽인 그 놈팽이를 돌로 내려쳐서 죽였어, 그리고 괴롭힘은 끝났어. 영혼은 자유로워졌지만 내 삶은 망가졌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어. 나는 저 바깥 세상에 적응 할 수 없어. 그렇게 끝나나 했지만 또 다른 존재가 또 다시 다가와. 그들은 또 다시 날 부여잡고 울어대. 날 괴롭히고 내 영혼을 갉아먹어. 그 목놓아 우는 소리가 영원히 멈추지를 않아. 방법은 하나뿐이야. 그래, 하나뿐… 이런 내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방법은 이것뿐이야. 난 지쳤어. 더 이상 그들의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해. 난 할만큼 했어. 난 최선을 다했어…


 


다시 한 번 자신의 죄를 둘러보았다. 무릎꿇은 채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후드티를 걷어내고 두 손으로 머리칼을 부여잡았다. 제발, 신이 계시다면 저를 살려주세요. 이런 불쌍한 저를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멈추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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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동의 입구는 시끌벅적했다. 앰블란스와 경찰차 여러 대가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모여 웅성거리며 각자의 추측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자, 비키세요.”


 


박형사는 인파를 걷어내고는 사건현장으로 올라섰다. 13층으로 올라서는 엘리베이터 내부는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다.


 


“공범이 있는 걸까요?”


 


옆자리를 지키던 최형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박형사가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피해자 강영실. 47세. 자영업자이자 주부. 남편 고승국. 53세. 역시 자영업자이자 가장. 자녀 둘은 현재 유학중. 3개월전 아내인 강영실은 남편 고승국에게 3건의 생명보험을 가입, 납부금액만 1500만원대. 남편이 강변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수령한 보험금만 12억. 강영실이 운영하는 커피숍은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현재 빚만 7억원대. 남편 고승국의 몸 안에서 쥐약성분인 스트리크닌이 검출… 딱 봐도 아내가 범인이 맞는데 말이야.”


 


수색영장을 발부받는 과정에 일이 터져버렸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강영실이 살해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최형사는 사건을 접수한 때부터 공범설을 계속 주장해왔다. 허나 박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공범이 있다면 분명 돈 때문인데, 수령받은 보험금은 그대로잖아. 그럼 뭐 하러 죽인거야? 말이 안 돼.”


“여튼 뭔가가 틀어지니까 일이 벌어진 거겠죠. 돈을 나누는데 충돌이 났다든지, 협박을 통해 우위를 점하려다가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뻔한 거 아니에요? 일개 주부가, 아무리 사장이라해도 보험금 살인을 혼자서 계획했다고요? 남편 몸무게만 78키로인데, 그런 남자를 큰 가방에 넣고 게다가 안에다 돌을 가득 집어넣고는 강변까지 적어도 60미터를 운반해야 하는 상황을 혼자서 마무리 지었다? 말이 안 되죠.”


“차도에서 강변까지 이르는 길에 45도의 경사진 수풀이 존재해. 가방을 굴린다면 힘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운반이 가눙하다고. 그 가방을 직접 봤어? 외부와 내부, 몇몇 군데군데 크게 훼손된 부분이 발견되었단 말야. 분명 가방을 굴리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 틀림없어.”


 


박형사와 최형사는 사건현장에 들어설때까지 의견충돌을 일으켰다. 박형사는 자신의 감을 믿었고 최형사는 합리적인 결론을 밀어붙였다. 실내로 들어서자 역시나 검시관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증거채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어이, 박형사.”


 


전의 부검의가 다시 한번 등장했다. 그는 간략하게 내용을 전달했다.


 


“교살인데 도구는 끈 종류로 보여. 힘이 무척 가해졌을 거야. 남성으로 추정돼. 등 뒤의 타박상으로 보아 어느 정도 몸싸움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DNA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야. 살해시간은 어제 저녁 10시쯤. 범인은 상당히 용의주도해. 이 일대를 표백제로 모조리 닦아냈어. 지금 계속해서 증거를 찾아보고는 있는데… 털 하나 안 나와.”


 


박형사는 수첩에 끼적이며 화장대 앞에 덮여있는 흰 천을 바라보았다. 들춰보기 위해 다가서는데 부검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조심해, 그러니까… 내 평생 저런 표정의 시신은 처음이야. 기괴하다고나 할까.”


 


박형사는 부검의의 말을 흘려들으며 살며시 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흠칫, 굳은 채로 시신을 바라보았다. 부검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시신의 자세는 화장대에 얼굴을 눕힌채로 양팔을 벌린 채였다. 분명 목이 졸리며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이런 장면까지는 강력계 형사라 자주 접해왔다.헌데 표정이… 두 눈동자가 튀어나올듯 부릅뜬 게 마치 뭔가에 상당히 겁을 먹은 듯 했다. 목이 졸리는 고통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아니었다. 이건…


 


“여기에 뭔가 있습니다.”


 


한 검시관이 바로 옆 침대 밑을 바라보더니 외쳐댔다. 박형사가 몸을 굽혀 바라보니, 소형 녹음기로 보이는 것이 침대 밑 구석에 테이프에 부착되어 봉해져 있었다.


 


“녹음기?”


 


박형사는 분명 남편인 고승국이 설치한 것이리라, 그 또한 아내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남몰래 증거를 모으기 위해 설치한 것이리라- 여겨졌다. 테이프를 조심스레 떼어내고는 녹음기를 살폈다. 여전히 작동되고 있었다. 용량은 24시간으로, 정해진 시간이 다되면 내용을 지우고 다시 녹음이 시작되는 시스템이었다. 현재시간은 오후 8시, 범행은 어제 22시, 그럼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이 남아있다…!


 


재빨리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어제 저녁 9시쯤으로 파일을 돌렸다. 재생을 누르고 귀를 기울였다. 박형사와 최형사, 부검의가 녹음기에 집중했다.


 


9시 32분부터 : (작은 소리로) 삑삑삑-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 같다.)


 


잠시 뒤 여성의 목소리 : 누구세요?


 


곧바로 삐빅- 하며 문이 열리고 곧바로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여성의 목소리 : 누구야?


 


침묵 (옅은 TV소리가 들려온다.)


 


현관으로 나가는 여성의 발자국 소리.


 


침묵


 


여성의 목소리 : 여보?


 


곧 바로 비명소리. 우당탕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소리. 방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


 


여성의 목소리 :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계속 중얼거림)


 


방문을 걷어차는 소리. 다시 몸싸움을 벌이는 소리. 화장품이 깨져가는 소리. 켁켁대는 신음소리.


 


남성의 목소리 : 나를 죽였어, 나를 죽였어, 나를 죽였어, 나를 죽였어. 나를 죽였어. 나를 죽였어, 나를 죽였어, 나를 죽였어- (이하 계속 반복)


 


침묵.


 


흐느끼는 소리.


 


빗질하며 걸레질 하는 소리.(한참을 이어진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이후 계속되는 정적.


 


 


“이게… 뭡니까?”


 


최형사가 박형사를 바라보았다. 박형사도 마주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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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사는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자신의 책상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옆에는 증거물이라 적힌 비닐봉투 안의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듣고 또 듣고, 반복만 한지 서른번째였다.


 


문득 지난 번의 넋이 나간 남성이 떠올랐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신경이 쓰였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 남성- 그를 생각하니 갑작스레 비슷한 사건이 있을까, 궁금증이 솟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청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했다.


 


몇몇 검색어로 검색해봤지만 공통점은 없었다. 역시나 하는 마음에 접으려했지만 마지막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용의자 살해 미결


 


엔터를 누르자 주르륵, 32건의 사건첩이 떠올랐다. 처음 두 건은 조직폭력과 관련된 보복 범죄로 추정되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며 세번째 사건을 클릭하자 피해자 사진이 등장했다. 박형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강영실의 그 끔찍한 표정- 그것이 다른 피해자에게도 보였다. 12년전, 한 남성이 후두부에 정체모를 둔기로 공격당해 숨진 사건이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현재 미해결이었다. 뭔가 좋지 않은 감이 뻗쳐나가자 모든 파일을 하나하나 열어보기 시작했다.


 


비슷한 범죄가 17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지역은 각각 달랐다. 유일한 공통점이라고는 피해자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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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좁은 방의 풍경 그대로이다. 변하는 것은 없다. 오로지 혼자만이 있다. 차라리 이게 낫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외로움은 이제 면역이다. 오히려 이게 낫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무게를 쥐어준다. 나 하나도 벅차다. 혼자가 낫다. 외롭지만 혼자가 낫다.


 


벌레처럼 꾸물꾸물 다시 기어나온다. 오늘도 이어폰을 꽂은 채 환상속에 빠져든다. 산책길을 걸으며 탈출을 꿈꾼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만이 내 유일한 탈출구이다.


 


산책길을 막아서던 테이프는 사라졌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본다. 죄에 물들어가는 끔찍한 두 손이 보인다. 이래서 내가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 난 지옥에 갈 것이다. 틀림없다. 지옥에 가면 내가 저지른 것들이 내 몸을 갉아먹을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잘못했다 빌어도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미 겪었다.


 


이 산책길은 오늘로 마지막이다- 나름대로 철저한 룰을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이 빌어먹을 내가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법칙 중 하나였다. 오늘 안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 두 시간 뒤에 이삿짐을 날라줄 작은 트럭 한 대가 올 것이다. 이제 저 멀리, 떠나가야 할 때였다.


 


매일같이 스스로를 좀먹는 것이 괴롭다.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체가 힘들다. 허나 어쩔 수 없다. 난 지옥에 가고 싶지 않다. 무섭다. 너무 두렵다. 사후의 세계, 그 존재들을 겪는다는 것은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내 죄는 절대 씻길 수 없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 댓가를 받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야 한다.


 


바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다음에 가는 곳은 오로지 나 혼자이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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