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해짐.
온갖 억울하고 분하고, 왜 나만 이러냐 싶은 일을 무한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격렬했던 감정이 모조리 삭제됨.
기신대운은 애초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 시기라 애써 발버둥 쳐도 안 됨.
나중엔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도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어차피 겪어봤던 거고, 심지어 더한 것도 겪어봤으니까.
그리고 신비한 촉이 생긴다.
극심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 터지기 전에 촉이 온다.
"아, 뭔가 또 좆같은 일이 생길 것 같다."
그 촉은 대부분 사실이라 현실에서 맞아떨어진다.
우연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무의식이 학습된 것임.
욕심도 사라진다.
욕심을 가져봐야 다 박살 나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아예 욕망 자체가 사라짐.
옛날엔 이거 갖고 싶다, 뭔가 이루고 싶다며 열정이 대단했는데 모두 불타버린지 오래.
선과 악의 기준도 흐려진다.
예전엔 "이건 나쁜 거야! 이건 옳아!" 이렇게 확실하게 구분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런 생각이 없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과 악 같은 건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거든.
어떤 일이든 다 이유가 있고, 사람도 다 나름의 사정이 있더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고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좆같은 일을 겪다보니 세상의 정의라는 게 얼마나 허상인지 알게 됨.
모든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합리화를 한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더 이상 천진난만한 이상주의자가 아닌 극한의 현실주의자가 되어 감정적 정의감 같은건 사라지고 실질적인 이득과 생존 논리를 우선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