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의 생극제화에서 화는 화생토 하고 화극금한다.
그러나 사주는 계절학이기 때문에 계절에 대한 시각 없이 화생토 화극금 만으로 사주를 보는 데에는 분명한 어려움이 따른다.
뿐만 아니라 생극에 대한 오묘한 이해가 빠지게 되면 화극금을 말 그대로 화가 금을 녹이는 것으로만 이해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처음 사주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러한 형태의 의인화가 분명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금극목을 도끼가 나무를 때리는 것으로 이해한다든지, 토극수를 범람하는 물에 대하여 제방을 쌓는 것으로 이해한다든지, 토생금을 흙 속에서 금이 생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든지 불라불라불라.
그러나 화극금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게 되면, 화가 가장 치열한 여름에 금이 태어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리고 화국을 짜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금이 여름에 녹지도 않는다.
아니 화극금이라면서 왜 또 화생금이지? 그러나 여름에 이미 가을의 기운은 오고 있다.
그렇다면 극을 통해 태어나는 금은 수생목으로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목에 비해 뭔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우리는 극이라고 하면 뭔가 피해야 할 것 같은 롤리폴리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름을 거쳐 가을에 생장이 끝난 목은 오히려 금의 극을 기다린다.
그리고 수생목이라고는 하지만 가을의 목은 수생목을 기뻐하지 않는다.
생이 되어야 할 때 생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생이지만, 생이 필요하지 않을 때 생해주는 것은 오히려 극이 될 수 있고, 극이 되어야 할 때 극이 되는 것은 오히려 생이 되는 셈이다.
때문에 때를 이해하는 것이 단순한 오행생극을 언제나 앞서게 된다.
같은 화라도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된다.
같은 화이지만, 봄의 화와 여름의 화가 다르고 가을의 화와 겨울의 화가 다르다.
봄의 화는 목의 생기를 끌어올리는 화이고, 여름의 화는 목의 생기를 가장 아름답게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화이고, 가을의 화는 목을 태우는 화이며, 겨울의 화는 생기를 보존하는 화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봄의 목과 여름의 목이 다르고 가을의 목과 겨울의 목이 다 다르다.
이런 계절적인 느낌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음간과 양간의 차이가 있다.
병화는 목의 때깔을 내거나 한기를 몰아내는 역할을 하고 정화는 결실에 맛을 들이고 살기를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겨울에는 한기가 왕성한 계절이므로 병화가 유리하고, 봄 역시 병화가 유리한데 초봄에는 한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아 한기를 몰아내는 역할을 하고 중추 이후에는 목의 때깔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름에는 본시 화가 치열한 계절이니 병정화가 다르지 않은데, 초여름까지는 아직 목이 살아 있으므로 때깔을 만들어주는 병화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후에는 맛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정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왜 사월에는 사중에 병화가 들어 있고 오월에는 병화와 정화가 들어 있는지 떠올려보라.
오월이란 참 특이한 달인데, 목이 죽어가면서 정화를 필요로 하나 아직은 생목으로서 병화의 때깔 만들기 역시 필요한 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살기가 감도는 계절이니 살기를 제압하고 다 자란 목을 태우는 정화의 역할이 부각된다.
그래서 같은 팔자 안에서 병정화가 떴는데, 봄이라면 일간이 병화가 되는 것이 유리하고, 가을이라면 일간이 정화가 되는 것이 유리한 셈이다.
화는 일반적으로 금을 극하지만, 겨울과 봄에는 금기가 목을 상하게 할까 두려우므로 화기가 말 그대로 금의 살기를 물리쳐주는 역할을 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화기가 금을 제련하여 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극은 극인데, 생을 위한 극도 있는 셈이다.
화생토는 화 입장에서는 반가울 때가 겨울을 제외하고는 없다.
겨울에는 토가 화의 조력을 보아 목을 배양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데, 그 이외의 계절에는 대부분 토가 화의 빛을 빼앗거나 굴절시키는 역할을 한다. 화가 같은 토 식상을 보더라도 겨울에 보는 것이 일단 효용이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게 계절마다 동일한 오행의 느낌 자체가 다 다르게 되니 화생토 화극금만 외워서는 좀체 답이 안나오는 것이 이 학문이 되는 셈이다.
글에서 필력을 느끼게 합니다.
화극금에서 화가 치열한 여름에 태어난다는것은 그만큼 금이라는것은 오랜기간에 걸쳐서 단련을 받고, 숙성이 되어야 금속으로서 보석으로서의 제값어치를 할수있는것으로봅니다.
해서 극이 곧 생의 이치와 일맥상통함을 느께게하는것 같습니다.
장간의 사중경금이 인성이라면 아직 좀더 내공을 길러야 할 시기로 보아서 학문에 더 치중해야한다는 의미로도 볼수있을것같습니다.
화생토의 설명에서 겨울에는 토가 화의 조력으로 목을 배양하는메카니즘으로 작용을 한다고 하셨는데 겨울 목은 이미 생장을 멈추고 있는데 어떻게 목을 배양하지요? 라는 질문에는 해월에 목이라면 잉태하여 성장을하는 상황이라 매우 좋은 에너지를 얻고 있는 상황으로 그 설명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오행의 변화론을 살펴보자면 화가 토를 만나면 자비심이생겨서 土衆生慈로 자비심이 생기는것으로도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불은 자식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 일생 자식을위해 살아가는 어머니 입장이고, 흙이라는 것이 본래 금방 뜨거워지는 것이 불의 기운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으니 불이 토를 만나면 인정이 많아서 뭐든 주고싶어 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해서 화의 본질(心)을 살펴보면 토를 보면 그저 자비심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