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는 모두 구약을 기반으로 한 종교로, 많은 점에서 교리와 배경이 유사해요.
유대교는 구약만을 인정하며, 이슬람교는 꾸란을 경전으로 삼고 예수를 선지자로 여기지만, 무함마드를 마지막 예언자로 두고 그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 AD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의 유대교 제사장들은 권력과 부를 쫓는 이익 중심의 타락에 빠져 있었어요.
성전에서 상인들이 활개 치고 있었던 것도 제사장들이 이를 묵인하고, 오히려 그들의 활동에서 이익을 취했기 때문이죠.
이는 공공의 가치나 신앙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른바 '길신'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이런 타락한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 장사꾼들을 쫓아냈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지닌 보수층의 미움을 사게 되었어요.
심지어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예수에게 죄를 물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은 끝까지 예수를 처형하기를 요구했죠.
흉악 범죄자인 바나바를 석방하더라도 예수는 죽어야 한다고 외친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식신'적이고 '제살'적인, 지극히 자기 방어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벌을 받게 되었고, 그 와중에도 자신을 정죄한 사람들을 용서하며 기도했어요.
이는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사랑과 용서의 핵심이자, 신약 성경의 근간이 된 이야기입니다.
기독교란 바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신앙이라 할 수 있어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교훈 역시 이 맥락에서 기독교의 중심을 이루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종교와 신앙을 진영 논리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개독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사랑과 이웃에 대한 헌신을 실천하는 종교지만, 기득권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고, 자신들만의 논리 속에 갇히게 되는 거죠.
사람들 사이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대립이 있지만, 예수가 보여준 것처럼 그 싸움의 목적은 진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는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에게 칼을 휘두른 베드로를 말리고, 병사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진정한 종교는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이처럼 예수는 진영을 위한 싸움이 아닌, 진정한 사랑과 이해를 보여준 것입니다.
비록 저 역시 교회를 떠났고, 현재는 불가지론에 가깝지만, 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만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종교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자신이 속한 진영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모두의 이익과 공공의 가치를 위해 힘쓰는 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요.
개독교 = 나만 사랑하는 마음
차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