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운기에 대하여

교운기에 대하여

G 모니카 2 143 12.17 15:56

교운기라는건 인생에 갑자기 레벨업 아이템이 떨어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잘 쓰던 줄 알았던 운영체제가 강제 초기화 걸리는 구간이다.


초기화 버튼이 조용히 눌리는 게 아니라, 알람 울리고 화면 깜빡이고 저장 안 한 파일 전부 튀어나오면서 진행된다.


이 시기엔 희한하게 과거가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이미 묻어둔 줄 알았던 흑역사, 생각 안 해도 될 인간관계, 굳이 지금 소환 안 해도 되는 기억들이 단체로 회식이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에서 난리 친다. 


멀쩡히 살다가 갑자기 와 내가 그랬었지 하고 현타 맞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미친 게 아니라, 기존 자아가 해체 중이라 임시 파일들이 다 튀어나오는 거다.


그래서 교운기를 겪는 사람들 표정이 다 비슷하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나 지금 인생 망한 거 맞지? 이 생각만 무한 반복 중이다. 


할 일은 많은데 손에 잡히는 건 없고, 반대로 할 게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계속 간다. 

도태된 건지, 도약 직전인지 구분도 안 된다. 게임으로 치면 컷신 존나 긴데 스킵도 안 되는 구간이다.


이때 특히 짜증나는 게, 예전에 만났던 인간들이 갑자기 MVP처럼 떠오른다는 거다. 

지금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을 그대로 끄집어내던 사람들, 그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왜 저딴 취급을 받았나 싶은 관계들. 


그 기억들이 돌아가면서 멘탈을 쓱쓱 문지른다. 

그냥 악몽이면 다행인데, 현실 기반이라 더 더럽다.


원래대로 유지한 채로는 다음 단계로 못 간다. 

안 쓰는 근육을 억지로 늘리는 과정 같아서 아프고, 비틀리고, 쓸데없는 통증만 남는 느낌이 든다. 


다만 이걸 나 지금 성장 중이야 같은 멋있는 말로 포장하면 바로 자폭이다. 

이건 성장이라기보다 정리다. 짐 빼는 과정이다. 


안 쓰는 가구를 밖으로 끌어내는 중인데, 발에 계속 걸리는 상태다.


그래서 교운기를 두고 그냥 버텨라는 말도 반만 맞다. 

살려고 발악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손 놓고 누워 있을 타이밍도 아니다. 


이 시기는 뭔가를 더 얻으려고 애쓰면 더 꼬이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면 그냥 상처만 남는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이미 고장 난게 뭔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운기는 인생을 업그레이드해주는 기간이 아니라, 더 이상 쓰면 안 되는 길을 강제로 폐쇄하는 기간이다.


교운기는 운 좋아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인생이 이 버전 이제 서비스 종료라고 통보하는 구간이다. 

시끄럽고, 불친절하고, 존나 귀찮다.


근데 이상하게도 다 지나고 나면, 왜 그때 그렇게 아팠는지는 나중에야 이해된다. 

그때 안 아팠으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었을 거라서.

Comments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는 중...교운기도 생각보다 길다...정말 힘듬....
명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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