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목이라 부르는 이 존재는 정교하고, 섬세하고, 감각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런 을목이 고요하고 무거운 흙인 기토를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침범과 그 침범이 남기는 흔적이 시간이 갈수록 무겁게 작용합니다.

을목은 기토의 칠살입니다.
단순히 강한 관계가 아니라, 을목이 기토의 삶을 직접 흔들 수 있는 작용점이란 뜻입니다.

기토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땅은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무겁고, 고요하며,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을목은 그 자리를 파고들어 마구 헤집습니다.
고운 뿌리처럼 보였지만 실은 흙을 갉고 파내는 뿌리인 거죠.

기토 입장에서는 방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받아내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을목은 순간적으로 강합니다.
특히 식신의 구조를 타고 갈 때는 말도 잘하고, 자신이 왜 그러는지 당당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을목이 더 명확하고, 논리적이며, 정당해 보입니다.
기토는 말을 아끼고, 상황을 참아내기 때문에 더더욱 을목이 옳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간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땅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결국 사람들이 발을 디딜 수밖에 없는 건 흙이지 나무가 아닙니다.

을목이 기토를 건드릴 때 가장 무서운 건 그 상황 자체가 수면 위로 다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흙은 가려지지 않습니다. 을목이 들어와 헤집은 자리는 그대로 남고, 주변에서 본 사람들이 다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을목이 잘한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왜 그랬을까란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금이 등장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신금은 을목을 가르기 위한 존재입니다.
말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자릅니다.

그때 을목은 진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자기가 저지른 행동을 그대로 알고 있는 눈앞의 존재가, 침묵 속에서 무섭게 다가오니까요.

기토는 쓰러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땅은 다시 복원됩니다. 스스로 회복합니다.
뿌리 다 뽑힌 자리에 다시 작물이 자라고, 사람들은 기토를 다시 찾습니다.

그때 을목은 점점 외로워집니다. 사람들이 더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겉보기엔 예뻐 보여도, 가까이하기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했던 행동을 너무 많은 사람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을목 스스로도 그때 자기가 왜 그렇게 했는지 후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순간적인 승리가, 평생 짊어져야 할 멍에가 되어버린 것이죠.

기토는 가만히 있으면서 이깁니다. 을목은 순간적으로 이긴 것 같지만 결국 혼자 남습니다.
그래서 을목이 기토에게 칠살로 작용하면, 그건 단순한 상극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업보가 됩니다.

한 번 흙을 밟고 지나간 나무는 다시는 그 땅에 뿌리내릴 수 없으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