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녀에게 결혼이라는 건 단순한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생존 전략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집안에서 물려받을 자산이 없고, 부모나 형제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안전망도 부족한 경우, 인생의 안정성을 스스로 구축하기 어려울 땐, 누구와 연결되는가 이것이 삶의 리스크를 줄이는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무관녀가 결혼에 기대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결혼이 단순히 감정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으로 중요한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무관녀들이 흔히 말하는 남편복이라는 건 감성 단어가 아니라생존의 분기점이고 일종의 복권 시스템이다.
근데 이 복권은 생각보다 꽤 더럽게 작동한다.
많은 무관녀들이 직업 좋은 남자를 만나면 인생 풀린다고 믿는다.
전문직, 고연봉, 공무원, 공기업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이게 함정이다.
그 남자의 직업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내면, 책임감, 정서적 건강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걸 간과한다.
직업은 외부적 성취일 뿐 그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고 갈등을 처리하고 삶을 사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직업이 좋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자일수록 자기 쓰레기성을 더 교묘하게 숨긴다.
왜내면 포장이 되거든. 겉으로 멀쩡하고, 말도 잘하고, 사회적 평판도 있으니까 초반엔 다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무관녀 입장에서는 그 조건 자체에 끌려 들어가게 돼 있다.
나보다 가진 게 많고, 안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면 눈에 필터가 씌워지는 거다.
현실은 좋은 직업 가졌어도 도박하는 놈 있고, 바람피는 놈 있고, 돈 안 갖다주는 놈 있고, 감정 폭력 휘두르는 놈도 수두룩하다.
무관녀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이거다.
남자를 고를 때 직업은 체크리스트에 쓰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체크 안 한다.
말로는 성품을 봐야 한다고 하는데 성품은 첫 만남, 몇 달 연애로는 절대 안 보인다.
진짜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자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거기서 그 인간의 정체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돈이 조금 꼬였을 때 도박에 손을 대는가, 감정이 불편할 때 소리 지르고 자리를 피하는가, 아니면 문제를 말로 풀고 대화하려 드는가. 이런 게 성품이다.
대부분 이런 테스트를 안 해보고, 그냥 다정하니까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착각한다.
저란 관계에서 무관녀는 갑이 되기 어렵다.
그럼 선택의 주도권은 상대 남자에게 넘어가고, 거기서부터 불균형이 시작된다.
한쪽은 이 사람 아니면 나 갈 데 없다고 생각하고 한쪽은 이 여자 말고도 다른 사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게임은 끝난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에서 남편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무관녀는 참고 버티는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렇게 수십년 참고 살다가 병 들고 정서 망가지고 나는 왜 이런 삶을 살았을까 자괴감 빠지는 루트가 많다.
결혼은 답이 아니라 나를 지킬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조건보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조건은 필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시스템적 반응력이다.
그거 못 보면, 좋은 직업 가진 인간한테도 인생 망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 너무 많다.
바로 일지로 말야.
일지가 흉신이면 배우자 자리에 극성 요소가 앉게 되어 있다.
일지가 흉신이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파괴적 성향을 가진 상대를 끌어들인다.
그런 상대한테 끌리는 내 욕망도 이미 일지에 각인돼 있다는 거야.
나도 그 구조를 욕망하고 있고 동시에 망하는 걸 반복함.
그래서 상대가 좆같다는 말은 곧 내 안의 욕망이 좆같은 성질을 호출했다는 말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