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비겁이 만들어간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비겁이다.
비겁은 재를 추구한다.
재를 추구해 모인 비겁들이 관이 된다
그래서 비겁이 모여 관을 이루게 된다.
이 비겁을 실상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인성이다.
인성은 일간이 생받는 것이므로 수동적이다.
인성이 수동적이게 되려면 관의 개입이 필요해진다.
재를 쫓아 모인 비겁이 형성된 관이란 이권 단체로부터 어떤 헤택을 잘 받는 인성이라면 수동적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잘 먹고 잘 살 길이 펼쳐져 있는데 뭐하러 기존 사회를 흔들겠는가?
아무 변화없이 지금처럼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다.
그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세상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관과 인성의 관계이니 인성이 관을 지켜준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반면 관이 약한 인성은 결코 사회에 수동적이지 않다.
이유는 인성의 입장에선 관이 엄마가 되는데 자신에게 양분을 제공할 관이 약하거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인성은 편안하고 수동적인 성질이 아니라 불만, 불안, 질투, 소외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자신처럼 생받지 못하는 나약한 자들을 둘러보게 된다.
인성은 혼자 움직이기 보다 여러 사람을 모이게 한다.
인성이 비겁을 생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관으로부터 생받지 못하는 불만 투성이의 인성이 비겁을 생하면 그게 바로 시민혁명단체가 된다.
시민혁명 단체의 선두주자는 다름아닌 인성이 왕하거나 혹은 인성다자인 자들이다.
이들은 기존 사회가 자신을 생해주지 않은 불만이 가득한 자들이니 사회를 마구 흔드려고 한다.
거기에 식상이 개입하면 행동력이 매우 커진다.
실제 리더인 자신을 드러내는 자들이 관 없는 인성다자+식상격이나 식다자들이 실세인 선두주자이고 실은 비겁이 그들을 따르는 것이다.
무관 인성이 식상을 본다면 기존의 관을 전부 뒤엎을 혁명가이다.
이는 서러워서 일으키는 반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