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역술인의 견해

종교에 대한 역술인의 견해

G 첩첩산중 1 2,133 2024.10.28 14:20

저는 술사이기도 하지만 불도에 귀의한 불자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불교를 종교라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불교도는 종교인이 아니라 수행자입니다. 

 

물론 인간의 나약한 의지처가 필요했기에 부처께서 형상화되고 신앙시되었지만, 그건 부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신앙화한 것입니다.

금강경은 수많은 경전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경전입니다.

 

금강경의 핵심은 '공(空)'을 설파한 것이며, 이 공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법당의 그 불상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또한 금강경에는 “나를 형상화하지 말라”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형상이라는 것이 '상(相)'을 내기 때문인데, 이 '상'은 번뇌의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자라면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생각, 즉 상을 내면 나다 너다, 내 것이다 네 것이다… 이러한 분별이 일어나고, 그 분별은 고통을 깊이 숨기고 있는 녀석이 됩니다. 

 

일상적인 쉬운 예로 어떤 여인이 “내 친구들은 의사와 결혼도 하고, 변호사와도 결혼해서 떵떵거리는데 난 뭐지?”라고 생각할 때, 이게 바로 분별이고 '상'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불교의 우주관은 감옥을 의미합니다. 

넓게는 육도, 즉 여섯 세상이 있는데, 짐승들의 축생계, 죄인들의 지옥, 인간계, 신계 등이 포함됩니다. 

 

불교는 인간보다 상위 개념의 신계, 즉 신들의 세계를 인정하지만, 이를 유일신의 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신들도 수명이 있고 유일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도 중생이라 정의합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저 밤하늘의 별빛도 언젠가는 그 수명(壽命)을 다하듯이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들조차 괴로운 존재로 정의하십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상을 내게 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이나 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겪게 되고, 그 원인은 분별과 번뇌에 있습니다. 

신들이 무슨 중생이냐고요? 그 증거는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 이유는 인간의 손에 의해 수정된 사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바티칸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을 수정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기독교, 특히 가톨릭에서는 절대자로 정의되는 신의 존재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인간계로 보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해 희생하셨고, 이는 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을 희생시킨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감내와 희생, 그리고 고통을 의미합니다. 

절대자로 정의되는 신의 존재조차 완벽하지 못하며, 고민하고 번민하는 것입니다. 

 

번민과 고민은 고통의 씨앗입니다.

불교에서는 신들의 존재조차 인간과는 다른 높은 상위 존재의 중생으로 정의합니다. 

중생이니 우주라는 큰 감옥에 있는 것이고, 인간과 똑같이 괴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 특히 연세 많은 분들의 기도 목적 중 다수가 '천국이나 극락, 유토피아에 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께서는 이에 대해 “만족을 알면 이 자리가 극락이나, 만족을 모르면 극락도 지옥이다”라고 따끔한 일침을 주셨습니다.

잘 나가는 여러분께서도 분명히 올챙이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아, 한 달에 500만 원만 벌어도 행복하겠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500만 원 버는 생활이 길어지면 “한 달에 1,000만 원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 달에 200만 원 벌던 때의 꿈, 그 500만 원 벌이가 현실이 되었을 때가 바로 천국입니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고 다시 욕심이 일어나면, 500만 원의 천국이 만족을 모르는 지옥으로 바뀌게 됩니다.

기독교 사상에서 루시퍼는 악마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보좌하던 대천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악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흔히 기독교인들은 그를 타락천사라 부릅니다. 

타락, 천국에서도 타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의 원인은 욕심, 즉 욕망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천사도 욕망 때문에 타락하는데, 돼지가 목에 진주 목걸이를 차고 교회에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를 외쳐본들 천국 문턱이나 밟을 수 있을까요? 이생에서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여 그렇게 집착하며 사는데, 설령 천국에 간들 타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쉬운 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나 극락 역시 여기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고통이 존재하는 중생계일 뿐입니다. 

그 고통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6.25 사변 즈음, 그 옛 어른들이 꿈꾸던 간절한 천국의 모습은 그저 하루 세 끼 굶지 않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이었습니다. 

 

민초들이 보릿고개를 넘길 때, 그들이 진정으로 꿈꾸던 천국은 겨울에 춥지 않고, 더는 먹을 것이 없어 나뭇가지를 삶아 먹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이 지금 이미 와 있습니다. 

물질은 차고 넘치고, 길거리에 거지라 불리는 분들도 무료급식 등으로 배고프지 않으며, 쉼터나 센터에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천국이 분명히 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분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단 하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모아둔 재산 때문에 자식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그랜저를 사고 났더니 벤츠를 못 사서 괴로워합니다. 

옛날에는 짚신 신고 다녔는데도 말입니다.

이렇듯 만족을 모르면 천국과 극락은 더는 유토피아가 아니며 지옥이 됩니다. 

제 손님 중에 천국과 지옥에 사시는 두 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건설사 사장님이신데, 지난 코로나 시국에 전화가 오셨습니다. 

 

“선생님, 저 요즘 진짜 죽고 싶습니다. 요새 순수익이 30억도 안 됩니다.” 코로나 전에는 최소 50억 이상, 100억도 됐었다며 정말 죽고 싶다고 하셨죠. 물론 수익이 줄긴 했지만, 30억이면 많이 버는 거 아닌가요? 하고 여쭈었더니 “선생님, 반토막이 났는데요…”라며 한탄하셨습니다.

다른 한 분은 분식집 여사장님인데, “선생님, 저 요즘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작년엔 하루 5만 원, 10만 원도 못 벌었는데 요즘은 하루 30만 원이나 벌어요. 행복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연 30억을 벌며 지옥에 사는 사람과 하루 30만 원을 벌며 극락에 사는 사람, 부처님께서 하신 “만족을 알면 그 자리가 극락이고, 만족을 모르면 극락도 지옥이다”라는 말씀이 진리로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불교도가 타 종교를 수용하는 것은 이단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일신을 믿는 분들께는 불교나 타 종교가 이단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는 불자이지만, 술사로서 신약한 분들에게는 성당에 다니기를 권합니다. 

신약한 사람들은 의존적이고 의타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운이 좋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으나, 운이 불리할 때는 신강보다는 신약이 심리적으로 더욱 빨리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두 분이 과거 동업을 하셨는데, 전 재산에 대출까지 끌어들여 호기롭게 벌인 사업이 망하게 되면서 두 집안 다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그 중 한 분, A는 무신론자였고, 결국 자결을 선택했습니다. 

반면, B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시간이 지난 후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A가 무신론자라 자결하고 B가 하나님을 믿어서 재기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둘 다 처음에는 사업 실패로 죽고 싶고 좌절감에 빠졌지만, 종교인은 무신론자에 비해 극복할 힘이 더 강합니다.

“절대자인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잠시 누르신 걸 거야, 분명 다시 일으켜 주실 거라고 믿어.”라고 B는 생각했습니다. 

제3자가 보기에 미친 것 같아 보일지 모르나, 당사자는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희망을 품고 극복해 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의 힘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자임에도 기독교나 가톨릭이 고통스러운 인생 여정에서 등불과 같은 의지처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작용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다른 종교를 수용하지 못하는 일부 사상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Comments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지금까지
2천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그 분들의 가르침이 후대로 전해오면서
많이 왜곡되어 전해질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1)깨달으신 분의 고차원적 정신적 견해에 대한 말씀들을 그만큼 이해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후대의 제자분들이 본연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자신의 이해범위만큼 해석하여 전달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상일 것이고 그걸 토대로 공부한 후대의 사람들역시 상에 상을 더해서 전승될 수도 있구요.
2)각 나라의 사회 문화적 환경이나 관습의 차이에 의해서
같은 가르침이 다르게 전달되고 전승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예를들어서 중국인의 경우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자기 나라 문화와 유사한 것만 받아 들이는
특성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노장사상의 범위 안에서 재해석해서 전승한 부분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선불교 역시 중국에서 융성했구요.
3)그 당시 지배세력의 영향력도 작용할 수 있고
...................등등

그러니까 지금 전해지는 각 종교의 방대한 가르침들이 모두 창시하신 분의 뜻에
부합하는 참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려우니
현재 보여지는 것들이 그 종교의 전부 또는 진짜 일부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현대 사회의 우리들은 지성인이므로 인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
무조건 그 종교 자체를 싸잡아서 욕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를 한 번 생각해보고 공부해 보면
살아가면서 좀 더 정신적 성숙이나 발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족을 덧붙여 봅니다.

그냥 이 글을 읽고 느낀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ㅎㅎ
그리고 한편으로
명리학이나 사주도 너무 신봉하고 얽매이면
스스로에게 종교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요런 잡상도 올라오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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