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적인 모든 것들은 사유의 힘이 견고해야 하며, 끊임없는 물음표와 씨름해야 합니다.

명리는 형이상학입니다.
수학과 같은 형이하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암기에 특화된 주입식 두뇌보다 상상력과 고찰이 뛰어난 분들이 명리를 더 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서울대 갈 머리보다 시장에서 야채 파는 아주머니가 명리를 더 잘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역대 선승들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강조하셨습니다.
불도가 명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같은 형이상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의상과 원효는 본래 둘 다 학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원효는 문자를 뛰어넘는 자유로움에 이르렀고, 의상은 평생토록 경전이라는 껍데기에 빠져 유명무실의 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가장 머리가 좋다는 천재 아난존자도 깨달음을 가장 늦게 얻었습니다.
선불교의 거두인 육조혜능은 일자무식으로 수많은 학식 좋은 경쟁자를 따돌리고 오조에게 법을 이어받았습니다.

명리도 비슷합니다.
불립문자라는 난제가 비슷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도 이론 만랩인 동국대 교수보다 산중 수행자에게서 견성이 나옵니다.
명리에서도 강단의 이론쟁이보다는 재야의 술사에게서 고수가 나옵니다.

이는 강단이 나쁘고 실생활의 재야가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문자의 목적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리 여덟 글자의 목적은 해독이지 알음알이가 아닙니다.

명리 공부를 하시는 분들 중엔 두 부류가 있습니다.

- 주입식과 암기로 사주를 수학처럼 생각하는 분들.

-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유하며 의심하는 분들.

주입식 공부를 하는 분의 질문:
"선생님, 이번 년도 삼살방인 줄 모르고 북쪽으로 이사해버렸어요. 인터넷 보니까 죽을 수도 있대요..."

생각하며 질문하는 분의 질문: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자꾸 의심이 들어요. 삼살방이나 대장군으로 이사가면 매우 흉하다고 하는데, 분명 이번 년도 북쪽으로 가신 분이 대한민국 전체에 수도 없을 텐데, 그분들이 다 안 좋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명리 공부는 후자처럼 해야 합니다.
암기가 아닌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주입식이 아닌 사유의 힘을 기른 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삼살방이나 대장군방 같은 확률 낮은 이론에 현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월지 도화나 망신살은 엄마가 재취거나 첩이다."
이 문장은 권위 있는 삼대도사 자강, 이석영 선생의 사주첩경에 기재된 문장입니다.

그럼 월지 도화거나 망신살이 있으면 어머니가 첩일까요? 아닙니다.
이 내용은 말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이유는 시대에 답이 있습니다.

이석영 선생이 임상을 주로 했던 세대가 육이오 전후입니다.
당시 남자는 전쟁으로 씨가 마르고, 여성은 한 집에 두세 명씩 시집가는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전혀 다릅니다.
사주첩경엔 이런 시대적 변화로 인한 통변의 자율성이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입식으로 공부하는 분은 저런 글을 읽고 바로 현장에서 "술사, 너희 엄마 첩이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손님은 "이런 미친, 뭔 개소리야…"라고 반응할 겁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하길, "아놔 삼대도사는 개뿔, 다 틀리고만." 그러나 이건 자강 선생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이 술사의 생각이 많이 모자라거나 주입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둔함일 것입니다.